한스레이저·레이커스·맥스포토닉스 등 中 레이저 업계 급성장 여파
저가형 파이버레이저 시장 잠식한데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요 감소

산업용 레이저 업계가 가격 경쟁 심화와 미-중 무역 분쟁이라는 풍랑을 만났다. 

중국 업체들의 시장 진입으로 가격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면서 주 수요 시장인 중국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모양새다.

IPG포토닉스는 저출력 레이저 시장 점유율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고 코히어런트는 저가형 파이버 레이저(Fiber laser)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트럼프 또한 극자외선(EUV) 레이저 외 시장에선 좀처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빠르게 잠식해오는 中 레이저 업체들

산업용 레이저 산업은 기술에 따라 파이버 레이저, 이산화탄소(CO2) 레이저, 엑시머 레이저 등으로 나뉜다. 이 레이저들은 시스템 속에 장착돼 재료를 가공하거나 붙이고(용접), 자르고, 글씨를 새기는 데 활용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제조 공정에서 레이저결정화(ELA) 장비에 들어가 비정질 실리콘(a-Si) 기판을 저온폴리실리콘(LTPS)으로 바꾸는 것도, 반도체 노광기에 들어가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새기는 것도 레이저다.

불과 5년전만 해도 산업용 레이저 시장은 코히어런트와 독일 트럼프(Trupmf), IPG포토닉스, 비아비(viavi, 당시 JDSU), 로핀시나(Rofin-Sinar), 비스트로닉(Bystronic) 등이 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스 레이저(Han`s Laser), 레이커스(Raycus), 맥스포토닉스 등 레이저 시스템을 만들던 중국 업체들이 하나 둘 광원으로 발을 넓히면서 가격 경쟁이 시작됐다. 

우선 타깃은 파이버 레이저였다. CO2 레이저는 복잡한 구조인데다 시장 성장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파이버 레이저는 다용도 고체 에너지를 활용, 신뢰성과 편리성이 높다. 유지보수가 편하고 크기도 작은데다 환경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아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20~30% 낮은 가격을 무기로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다. 불과 2년 반만에 중국 내 파이버 레이저 시장 점유율을 두배 이상으로 늘렸다.

가장 빨랐던 건 한스레이저다. 지난해 한스레이저는 3년 전인 2015년 매출(55억8700만위안)의 2배에 달하는 110억2900만위안(1조870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레이커스·맥스포토닉스 역시 고속 성장했다.

 

중국 레이저 업계 3사 매출 추이./cninfo, KIPOST 정리
중국 레이저 업계 3사 매출 추이./cninfo, KIPOST 정리

업계 관계자는 “100W 미만 저출력 레이저는 이미 중국 업체들이 내재화했고, 5년 전부터 100W에서 1.5kW 사이 중출력 레이저 시장에도 진입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며 “고출력 레이저 시장에도 하나 둘 중국 업체들이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미-중 무역분쟁까지

이같은 와중에 미-중 무역분쟁이 불거지면서 레이저 업계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산업용 레이저의 전방 시장은 모바일·가전·자동차·배터리 등을 만드는 로봇 및 공작 기계, 산업 설비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제조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얼어붙었고, 레이저 업계의 매출은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이들 전방 시장의 주 수요처는 중국이다. 

국제로봇공학연맹(IFR)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산업용 로봇의 최대 수요국이다. 지난 2015년 이후 중국 산업용 로봇 시장의 출하액 규모는 매년 두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전 세계 산업용 로봇의 30% 이상을 중국이 사갔다.

공작기계 또한 중국이 생산액·소비액 기준 1위다. 지난해 중국은 생산액 기준 세계 공작기계 시장의 24.8%를 차지했다. 소비액으로는 세계 시장의 31.4%를 쥐고 있다. 

레이저 업계 관계자는 “‘중국제조2025’에 레이저 장비가 들어가면서 이전에도 중국 정부의 압박은 있었다”며 “무역분쟁이 불거지고 난 뒤 중국 수요 기업들이 미국 업체인 코히어런트와 IPG포토닉스의 제품 대신 현지 업체의 제품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미국 레이저 업체들만 타격을 입은 건 아니다. 미국은 중국 레이저 업체가 자국에 레이저 장비를 수출할 때 25%의 관세를 내도록 규정했다. 현지 업체와 비슷한 성능의 장비를 20~30% 싸게 팔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 경쟁력을 잃은 셈이다.

하지만 중국 레이저 업체들은 매출의 대부분을 내수에서 벌어들이는만큼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다.

 

휘청이는 기존 레이저 업계

결국 코히어런트는 이달 초 3분기 실적 발표에서 2020년 회계연도 안에 고출력 파이버레이저(HPFL) 사업 일부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술 경쟁에서 가격 경쟁으로 넘어간 저가형 파이버레이저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이다.

존 앰브로세오(John Ambroseo) 코히어런트 최고경영자(CEO)는 “거시 수요 약화로 강세를 보이던 재료 가공 시장이 역풍을 맞았고, 관세 압박과 중국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 심화도 지속되고 있다”며 “보다 현실적인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매출 비중이 높은 IPG포토닉스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출이 하락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중국 시장에서의 매출액이 9% 감소한 데 이어 4분기에는 19% 더 줄었다. 지난 1분기에는 24%, 2분기에는 19% 역성장했다. 

 

IPG포토닉스 분기별 매출 및 중국 매출 성장률 추이./IPG포토닉스, KIPOST 정리
IPG포토닉스 분기별 매출 및 중국 매출 성장률 추이./IPG포토닉스, KIPOST 정리

장비 업계 관계자는 “레이저 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초고출력 레이저 등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가격이 전반적으로 내려가는 추세”라면서 “레이저를 사다 쓰는 장비 업체들은 가격 협상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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