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ED 라인 가동 바로 멈출 수 있는 섀도마스크 대신
매출에 영향 없는 플루오린 PI 택한 일본의 속내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제한 조치를 맞닥뜨리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품목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PI)’다. 플루오린 PI는 최근 삼성전자⋅화웨이가 선보인 폴더블 스마트폰용 커버윈도 소재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반복된 굽힘에 대한 내구성이 강하다. 

플루오린 PI 수출 제한 탓에 삼성전자가 입게될 실질적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될까. 시장조사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올해 폴더블 스마트폰, 혹은 폴더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예상 출하량은 140만대 정도다. 내년에는 500만대, 내후년에는 1700만대 정도가 출하될 것으로 예상된다. 

폴더블 스마트폰용 플루오린 PI, 일명 투명 PI. /사진=SK이노베이션
폴더블 스마트폰용 플루오린 PI, 일명 투명 PI. /사진=SK이노베이션

한 해 삼성전자가 판매하는 스마트폰은 약 3억대, 세계적으로는 15억~16억대의 스마트폰이 팔린다. 이에 비하면 폴더블 스마트폰, 혹은 폴더블 OLED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플루오린 PI를 구매하지 못한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가 매출에 결정적인 충격을 받을 가능성은 무시해도 된다. 

만약 일본이 플루오린 PI가 아닌 OLED용 섀도마스크를 규제 대상에 올렸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섀도마스크는 OLED 화소를 형성하기 위해 공정 중에 사용하는 소모품이다. 국내서 사용되는 섀도마스크는 100% 일본 회사가 공급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다이니폰프린팅(DNP), LG디스플레이는 DNP와 도판프린팅에서 섀도마스크를 받아 온다. 

삼성⋅LG디스플레이가 일본에서 섀도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하면 길어야 한두달 안에 OLED 라인 전체를 멈춰야 한다. 섀도마스크 없는 OLED 공장은 잉크 없는 복사기다. 플루오린 PI가 삼성이 생산하는 극히 일부 품목에 충격을 가한다면, 섀도마스크는 아예 OLED 라인 운용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

상상하기 싫지만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 존립을, 삼성디스플레이는 회사 명운을 걸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삼성⋅LG디스플레이의 섀도마스크 의존도를 잘 몰라서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치밀하게 수출 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본이 섀도마스크 대신 플루오린 PI를 선택한 것은 삼성⋅LG의 기술 리더십에 큰 타격을 가하면서 자국 업체 피해는 최소화 할 수 있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비록 폴더블 OLED가 스마트폰⋅디스플레이 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해도, 이는 중장기 전략을 위해 반드시 리더십을 유지해야 하는 분야다. 접히지 않는 딱딱한 스마트폰과 OLED는 이제 중국 업체들도 엇비슷하게 따라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플루오린 PI 수출 규제가 당장 매출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고 해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반대로 플루오린 PI를 공급하는 일본 업체 입장에서 받는 매출 타격은 크지 않다. 삼성디스플레이에 플루오린 PI를 공급하는 일본 스미토모화학은 연매출 20조원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다. 이 회사가 플루오린 PI를 공급해서 벌어들일 돈은 기껏해야 수십억원이 안 된다.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일본의 이 같은 기조는 감광액 규제 움직임에서도 읽힌다. 일본 정부는 감광액 중에서도 아주 일부인 극자외선(EUV) 공정용 감광액을 규제 대상에 올렸다. EUV 공정은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 중에서도 파운드리 사업부, 그 중에서도 특정 품목(7나노미터 제품)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이 역시 아직은 삼성전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그러나 EUV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서 대만 TSMC를 넘기 위해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할 비기(祕技)다. 일본이 EUV 감광액 수출을 앞으로 6개월, 혹은 그 이상 지연시킨 뒤 TSMC에만 공급한다고 가정해보자.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서 TSMC를 넘어설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역시 일본 업체가 입게 되는 피해는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삼성전자에 EUV용 감광액을 공급하는 일본 JSR의 연간 매출은 4조원을 약간 넘는다. 이 중에 반도체용 감광액을 공급하는 디지털솔루션 사업부 매출은 약 40%다. 그러나 여기서 EUV용 감광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적다. 일본이 감광액 전체를 수출 규제 대상에 올렸다면 JSR의 비즈니스도 피해를 보겠지만, EUV만 규제하면 당장의 손실은 크지 않다.

일각에서는 수출 제한 조치가 일본 기업에 부메랑이 될 것이란 이유로 일본 정부가 실제로 수출 제한 조치를 발효하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삼성⋅LG⋅SK의 매출 감소가 아닌 기술 리더십 박탈을 목표로 하는 이상, 일본 업체가 부메랑을 맞을 일은 없다. 있다 해도 우리 기업이 입게 될 장기적 피해에 비하면 무시해도 될 수준이다. 

반쪽짜리 반도체⋅디스플레이 강국의 서글픈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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