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코어는 유행이 아닌 흐름… 싸고 빠르게 개발할 수 있어야
Arm 독점 위기감 느낀 기업들 전략적 선택… 수 주 만에 개발 완료

사이파이브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웹(클라우드) 기반 반도체 설계 페이지로 넘어가는 버튼이 있다. 저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칩을 고르거나 새로운 칩을 요구할 수 있다.
사이파이브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웹(클라우드) 기반 반도체 설계 페이지로 넘어가는 버튼이 있다. 저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칩을 고르거나 새로운 칩을 요구할 수 있다.

사이파이브(SiFive)는 오픈소스 하드웨어 명령어 세트 아키텍처(ISA) ‘RISC-V’ 생태계를 이끌고 있는 회사다.

RISC-V 아키텍처를 개발한 크르스테 아사노빅(Krste Asanovic) UC 버클리대 교수와 앤드류 워터맨(Andrew Waterman) 박사, 이윤섭 박사가 2015년 설립했다. RISC-V 아키텍처를 한땀한땀 개발한 만큼 누구보다 RISC-V 아키텍처, 그리고 이를 활용하려는 업체들이 원하는 바를 잘 안다.

이들은 오픈소스 ISA 열풍을 어떻게 해석할까. 이들이 바라보는 반도체의 미래는 무엇일까. 이윤섭 사이파이브 최고기술책임자(CTO)에게 물었다.

 

Q1. 이전에도 코어 아키텍처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RISC-V 아키텍처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시기를 잘 만났다. RISC-V 아키텍처를 개발하기 시작한 게 2010년이다. 당시부터 공정 기술로 트랜지스터의 성능·전력효율·크기(PPA)를 2년마다 2배씩 개선할 수 있다는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말이 나왔다. 공정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답은 설계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우리만은 아니었다. 차이점은 오픈소스였다는 것이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SW)인 리눅스(Linux)가 성공하면서 ‘오픈소스’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라이선스·로열티 비용이 안드니 학생들과 스타트업은 RISC-V 아키텍처를 가장 선호한다.

실제 RISC-V 아키텍처를 개발하면서 2013년쯤 인터넷에 이를 무료로 올려놓고 계속 업데이트를 했다. ‘설마 누가 다운로드를 받겠어’라고 생각했는데 “RISC-V 아키텍처를 쓰고 있으니 수정을 하지 말아달라”는 답글이 달리더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코어 아키텍처를 Arm이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Arm 코어텍스(Cortex)를 쓰는 업체들이 ‘종속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도 있다. 우리와 협력 중인 기업들은 전략적으로 RISC-V 아키텍처를 택했다.

UC 버클리에서 개발했다는 점도 주효했다. ‘RISC’라는 단어를 만든, 코어 설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데이비드 패터슨(David patterson) UC 버클리 교수가 개발에 참여해 어느 정도 신뢰성을 얻을 수 있었다.

 

Q2. 인텔의 x86 아키텍처는 고성능, Arm의 코어텍스(Cortex)는 저전력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다. RISC-V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맞춤(Customize)’이다. RISC-V는 원하는 특정한 성능을 구현하는 반도체를 만들 때 특히 유용하다.

Arm 등 기존 업체들은 기본적으로 범용 반도체(ASSP)를 지원한다. 원하는 특정한 성능을 만족하는 반도체를 기존 업체들의 아키텍처로 개발하는 건 불가능하다. ISA 자체를 라이선스할 수도 있지만, 어마어마한 라이선스·비용을 지불해야한다.

그리고 x86 아키텍처가 고성능이고 코어텍스가 저전력이라는 건 각 아키텍처가 주로 적용되는 기기가 달라서다. 설계 측면에서 보자면, x86 아키텍처를 쓰면서도 코어텍스만큼 저전력으로 만들 수 있고, 코어텍스로도 x86에 버금가는 성능을 가진 칩을 구현할 수 있다. RISC-V도 마찬가지다.

 

Q3. ‘맞춤화’는 양면성이 있다. 그만큼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얘긴데.

맞다. 사이파이브는 이런 점을 겨냥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애초에 맞춤형 프로세서를 겨냥하고 코어 설계자산(IP)을 만들었다. 전부 ‘템플릿(Template)’ 형태로, 서식만 주고 내용은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기존 코어 아키텍처 업체가 제공하는 아키텍처를 쓰면 어떤 코어를 라이선스할 건지부터 계약까지 라이선스에만 1년이 걸린다. 제품 개발 기간을 그만큼 낭비한다는 얘기다.

사이파이브의 경우 고객이 원하는 사양을 홈페이지에 올리면, 이에 맞춰 원하는 사양에 맞춰 수 주 만에 설계를 끝내고 시제품(prototype) 개발부터 샘플 칩 공급까지 하고 있다.

이윤섭 사이파이브 CTO가 18일 '2019 SiFive 기술 심포지엄'에서 강연하고 있다./KIPOST
이윤섭 사이파이브 CTO가 18일 '2019 SiFive 기술 심포지엄'에서 강연하고 있다./KIPOST

Q4. 맞춤형 반도체는 범용 반도체보다 유연성이 떨어진다. 여러 종류의 기기를 개발하는 제조사들은 Arm처럼 하나의 범용 반도체 아키텍처 플랫폼을 지원하는 업체를 선호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 문제는 비용이다. 애초에 범용 반도체는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을 일일이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다. 여러 종류의 기기를 개발하는 제조사도, 각 기기에 최적화된 맞춤형 반도체를 원한다. 지금까지는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예를 들어서 임베디드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업체가 Cortex-M 시리즈를 쓰다가 더 좋은 성능이 필요해졌다고 가정하자. Cortex-M 시리즈는 32비트까지밖에 지원을 하지 않는데, 64비트를 사용하려면 값비싼 비용을 또다시 지불하면서 Cortex-A 시리즈를 라이선스하면서 임베디드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을 낮춰야한다. 원하는 사이즈보다 한참 큰 옷을 사서 이를 굳이 또 줄여입어야하는 셈이다.

RISC-V 아키텍처는 이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면서도 저렴하게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한다. 전력을 낭비하는 군더더기를 없애 전력소모량을 줄이면서도 원하는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

일례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컨트롤러를 개발하는 파두(FADU)는 우리의 코어 프로세서를 라이선스해 다른 코어 아키텍처를 썼을 때보다 전력소모량과 면적을 각각 3분의1로 줄였다.

 

Q5.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맞춤형 반도체가 대세로 떠오른 시장도 있다. 사이파이브에서 가장 먼저 겨냥하는 시장은?

임베디드 사물인터넷(Embedded IoT)이다. IoT는 특정 디바이스에 한정돼있지 않다. 어느 기기에나 IoT는 들어갈 수 있다. 기기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범용 반도체로는 이들 각각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킬 수 없다.

임베디드 IoT 시장에는 기본적으로 반도체를 빠르고, 싸게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사이파이브는 이같은 플랫폼을 제공한다.

 

Q6. 사이파이브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의 목표는 누구나 원하는 사양의 반도체를 빠르고 저렴하게 설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다.

반도체 설계를 하려면 설계를 하기 위한 환경이 갖춰져야하고, 뼈대인 아키텍처와 재료인 IP, 도구인 설계 툴이 필요하다. 코어 설계의 자유도 있어야 한다. 현재 반도체 업계는 아키텍처, IP, 설계자동화(EDA) 툴, 설계 등 각 분야를 각 업체들이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고, 별도의 비용을 청구한다.

우리는 이 선을 넘나든다. RISC-V 아키텍처는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도구다. IP는 파트너 업체와 함께 디자인 쉐어(Design Share) 프로그램에서 제공하고 있고, 설계 도구는 직접 만들어 지원한다.

설계 환경은 기본적으로 클라우드다. 반도체 설계를 할 때 각 회사마다 서버를 구축하던 건 옛날 얘기다.

우리의 수익원은 개발비(NRE)와 고객사들이 반도체를 상용화했을 때 받는 로열티다. 정확한 금액은 이야기할 수 없지만, 다른 코어 아키텍처 업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Q7. 설계 툴까지 제공한다면 EDA 업계의 라이벌이 될 수도 있겠다. 모든 툴을 직접 제공할 수 없을텐데.

맞다. 처음 우리가 클라우드 기반 설계 환경에서 IP와 툴을 지원한다고 했을 때 기존 생태계 내 업체들은 이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정해진 설계 툴과 IP로 개발을 해야 파운드리 업체에서 생산을 할 수가 있는데, 파운드리 업체가 클라우드를 지원하지 않으니 ‘될 리가 없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었다. TSMC는 지난해부터 클라우드 기반 설계 환경인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가상 설계 환경(OIP VDE)’을 제공하고 있고, 우리가 TSMC의 첫 테이프아웃(Tape out) 고객이었다.

현재는 EDA 툴 업체들과 우리가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 지 모색하고 있다.

 

Q8. 끝으로 반도체의 미래에 대해 묻고 싶다

너무나도 다양한 기기에 반도체가 속속 들어가고 있고, 기기 내에서 하는 일 자체도 고도화되고 있다. 범용 반도체로 이를 해결하기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각 기기마다 최적화된 맞춤형 반도체를 설계하려면 그만큼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게다가 이를 만들 하드웨어 엔지니어 자체도 적다. 미국에서도 해마다 배출되는 CPU 아키텍처 설계 인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오픈소스 ISA가 필수다. 값비싼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학생들도 오픈소스 ISA를 활용하면서 설계 실력을 키울 수 있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서로 의견을 공유하면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도 있다.

이미 데이비드 패터슨 UC 버클리 교수는 교재를 RISC-V 아키텍처 기반으로 전부 수정했다. 사이파이브에는 교육 전담 부서가 있다.

오픈소스 ISA는 반짝하다 말 유행이 아니라 큰 흐름이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