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수요 後투자 전략 고수… 전기차·서버 덕에 2020년 또다시 공급 부족 전망

지난해까지 극심했던 실리콘 웨이퍼 공급 부족 현상이 해소되고 있다. 전방 시장 성장세가 주춤하고, 웨이퍼 업계가 생산 능력(capacity)을 늘리면서다. 다만 실제 거래 가격은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실리콘 웨이퍼, 공급 부족 끝났다

세계 2위 실리콘 웨이퍼 공급 업체 섬코(SUMCO)는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300㎜ 웨이퍼 공급 대비 수요량이 지난해 100%에서 올해 88%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전분기 전망치보다 7%P 낮아졌다.

 

▲실리콘 웨이퍼 수요 및 공급량 추이 및 예측./SUMCO
▲실리콘 웨이퍼 수요 및 공급량 추이 및 예측./SUMCO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실리콘 웨이퍼 출하량은 작년 4분기보다 5.6% 줄어든 30억5100만 제곱인치를 기록했다. 2017년 4분기 이래 최저치다.

반대로 업계의 웨이퍼 생산 능력은 늘어나고 있다. 맥쿼리증권에 따르면 반도체 웨이퍼 업계는 연간 생산 능력을 5%씩 늘려왔다. 올해는 9% 정도 생산 능력이 늘어날 것으로 디지타임스는 추정했다.

SK실트론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하고, 글로벌웨이퍼즈(Globalwafers)도 내년까지 4800억원을 투입해 한국 천안 공장의 생산 능력을 늘리고 있다. 실트로닉은 올해 지난해(2억5700만 유로)보다 큰 3억5000만유로(약 4621억원)의 설비투자를 계획했다.

중국 웨이퍼 업계도 시장 진입을 서두르고 있다. 현지 웨이퍼 업계는 한 달 35만장의 300㎜ 웨이퍼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 세계 300㎜ 웨이퍼 한 달 총 공급량의 5%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태양광 웨이퍼 시장에 진입한 중국 업체들이 단가 인하를 주도해 업계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위협적이다.

 

단가 인하 압력에도… 가격은 여전

이같은 상황에도 실리콘 웨이퍼 가격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섬코는 지난 1분기 300㎜ 웨이퍼 현물 가격(Spot price)이 다소 하락했지만 장기 계약에는 변동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웨이퍼 업계가 수량보다 가격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 2분기 가격 하락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단가 인하 압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방 시장의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한 올 초 반도체 제조사들은 웨이퍼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웨이퍼 가격은 지난 2016년 대비 40% 급등한 상태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웨이퍼 가격은 지난해에만 약 30% 올랐다.

하지만 일부 300㎜ 웨이퍼 가격만 수% 줄어드는 데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1분기 수요 감소는 반도체 제조사의 재고 조정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장기계약 가격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300㎜ 웨이퍼도 품질 요구 사항이 커지고 있어 가격 하락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웨이퍼 가격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

실리콘 웨이퍼 시장의 가격 협상력은 반도체 제조사가 쥐고 있다. 아무리 장기 계약이라도 고객사가 주문을 취소하면 그만이다. 대형 고객사가 손에 꼽힐 정도로 적고, 이들의 영향력이 커 웨이퍼 업체가 이들을 고소하기도, 납품을 중단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대형 반도체 제조사만큼 웨이퍼 공급 업체도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실리콘 웨이퍼는 폴리실리콘을 고열로 도가니에 녹여서 잉곳을 만들고, 이를 잡아당겨 얇게 썰어서 만든다. 막대한 투자는 물론 생산 노하우도 필요하고 특히 첨단 공정으로 갈수록 두께, 표면, 순도 등에 대한 품질 요구가 높아 시장 주자가 몇 없다.

세계 실리콘 웨이퍼 시장은 신에츠화학(신에츠한도타이), 섬코, 글로벌웨이퍼즈, 실트로닉, SK실트론 등 5개사가 전체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5개사만 놓고 보면 순서대로 30%, 27%, 17%, 15%, 11%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지난 2016년 6위였던 글로벌웨이퍼즈가 3위였던 선에디슨을 인수, 3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수년간 순위에는 큰변동이 없었다. 중국 웨이퍼 업계가 양산을 앞두고 있음에도 웨이퍼 업계가 긴장하지 않는 이유다.

소자 업체 관계자는 “웨이퍼는 반도체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로, 첨단 공정으로 갈수록 두께, 표면, 순도 등에 대한 품질 요구가 높다”며 “같은 300㎜ 웨이퍼라도 첨단 공정용 웨이퍼와 구공정 웨이퍼는 가격 차이가 최대 1.5배 난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전략도 바뀌었다. 이번 호황기 이전까지 실리콘 웨이퍼 업계는 설비투자로 생산 능력을 늘린 다음 가격 경쟁을 벌였다. 공급량이 수요보다 많아지면서 실리콘 웨이퍼 업계의 수익성은 급격히 나빠졌고, 10년 전인 2009년 최저점을 찍었다. 당시 업계는 공장 부지를 확보해놓고 장비를 들이지 않는 ‘브라운 필드 시설(brownfield facility)’을 세워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았다.

이번엔 달랐다. 업계는 반도체 제조사와 장기 공급 계약을 맺는 조건으로 생산 능력을 늘렸다. 선 투자, 후 수요였던 전략이 선 수요, 후 투자로 바뀐 셈이다. 이 전략은 현재도 유효하다. 웨이퍼 업계는 계약을 갱신할 때 거꾸로 가격 인상을 요구한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생산 능력 확대도 브라운 필드 시설에 장비를 채워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린스컨설팅(Linx consulting)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300㎜ 웨이퍼 생산 라인 총 용량은 117억제곱인치 정도로, 이 중 브라운필드 시설 용량은 10%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7년 웨이퍼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반도체 제조사와 실리콘 웨이퍼 업계가 수년 단위의 장기 계약을 맺었고, 이를 조건으로 실리콘 웨이퍼 업계가 투자를 했다”며 “설비투자를 보수적으로 하는 바람에 투자가 시작된 작년까지도 웨이퍼 공급 부족 현상이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리콘 웨이퍼 업계 매출 및 투자 추이./각 사, KIPOST 정리
▲실리콘 웨이퍼 업계 매출 및 투자 추이./각 사, KIPOST 정리

내년 이후 수요가 또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것도 웨이퍼 가격을 유지하는 이유다. 업계는 서버와 전기차(EV/HEV)를 중심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내다본다. 올해 생산 능력을 예년보다 많이 늘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증설 중인 물량을 공급량에 포함시켜도 내년 이후 수요 증가량에 대응할 수 없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재료 업계 관계자는 “상위 웨이퍼 업체 5개사 모두 올해 이전보다 더 많이 생산 능력을 늘리고, 내년에는 다시 설비투자 규모를 줄일 계획”이라며 “향후 수요를 반영해 이번처럼 생산 능력을 조금씩 늘리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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