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투자 불가피… 삼성전자 패키지 역량 강화

삼성전기가 패널레벨패키지(PLP) 사업을 삼성전자에 양도하기로 했다. PLP 사업에 뛰어든 지 4년, 양산에 들어간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이를 통해 삼성전기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에 투자할 자금을 확보하는 한편 사업 수익성도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도 패키지 역량을 집결, 차세대 패키지 연구개발(R&D)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기, “선택과 집중 차원… PLP는 대규모 투자 불가피”

삼성전기는 30일 이사회를 열고 PLP 사업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사업부에 양도하기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양도대금은 7850억원으로, 법적인 절차 등을 거쳐 오는 6월 1일 이관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천안 PLP 양산라인도 삼성전자 DS 사업부로 넘어간다. 삼성전기 PLP 사업팀 인력에는 삼성전기에 남을지 삼성전자로 갈지 선택권을 줄 계획이다.

삼성전기는 지난 2015년 PLP 사업에 도전장을 낸 뒤 지난해 처음으로 스마트워치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양산하면서 이 시장에 진입했다.

PLP는 인쇄회로기판(PCB) 등의 패널에 전공정을 마친 반도체 다이(Die)를 한꺼번에 올려 패키징하는 기술이다. 웨이퍼(Wafer) 단위, 칩(Chip) 단위로 패키징을 했을 때보다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현재 세계에서 PLP를 양산하는 곳은 한 손에 꼽는다. 특히 삼성전기는 유일하게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입출력(I/O) 개수가 많은 고부가 반도체를 겨냥했다.

하지만 PCB에는 수 마이크로미터(㎛)의 얇은 배선 회로를 그리기가 어렵고, 공정 과정 중 기판이 휘거나(Warpage) 기판 위에 올려둔 칩이 틀어지는(die-shifting) 현상 등이 발생해 성능 개선은 물론 공정 수율을 높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삼성전기는 수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회로 미세화에서는 성과 개선이 더뎠다. 모바일 AP 패키지 배선 회로는 L/S(Line/Space) 2㎛/2㎛ 이하를 요구하지만, 삼성전기 PLP는 10㎛/10㎛로 알려져있다.

 

▲삼성전자 갤럭시워치에 들어간 ‘엑시노스 9110’ AP에는 삼성전기의 PLP 기술이 적용됐다./시스템플러스컨설팅
▲삼성전자 갤럭시워치에 들어간 ‘엑시노스 9110’ AP에는 삼성전기의 PLP 기술이 적용됐다./시스템플러스컨설팅

또 PLP는 생산성이 높은만큼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제품을 연속으로 수주하지 못하면 생산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

삼성전기의 첫 양산품인 갤럭시워치용 AP는 크기가 80㎟ 미만이다. 삼성전기의 PLP 패널은 가로, 세로 500㎜, 400㎜로, 단순 계산하면 한 장에 2500개의 패키지를 만들 수 있다. 삼성전기의 PLP 기술이 들어간 갤럭시워치를 50만대로 놓으면 PLP 200장이면 전체 물량을 충족시킬 수 있는 셈이다.

PLP 사업을 키우기 위해선 조 단위의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것도 삼성전기의 발목을 잡았다. 소재, 장비 공급망(SCM)부터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PLP는 각 업체가 다루는 패널 크기가 달라 대부분 장비를 맞춤형으로 제작해야한다.

현재까지 삼성전기는 PLP에 5000억여원을 투자했고 감가상각을 포함, 매 분기 3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기 측은 “PLP 사업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데, 전장용 MLCC 및 5세대(5G) 통신모듈 등 새로운 성장 사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해야하는 상황”이라며 “'선택과 집중'의 전략적 관점에서 다각도로 검토한 결과 PLP사업을 삼성전자에 양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패키지 역량 헤쳐 모여… 경쟁력 강화”

PLP 사업 이관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삼성전자 DS 사업부다. 이관된 PLP 사업팀은 삼성전자 테스트&패키지센터(TP센터) 산하로 가게 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TSMC가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 기술로 애플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물량을 싹쓸이해간 뒤부터 패키지 기술 개발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 등 차세대 패키지 개발을 주도해오던 강사윤 부사장, 조태제 마스터(전무) 등을 포함한 연구개발 핵심 인력들이 삼성전기로 건너가면서 애를 먹었다.

업계 관계자는 “‘김기남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3차원(3D) 적층 반도체 패키지 개발 등의 과제가 나올 정도로 패키지 기술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핵심 인물들이 죄다 흩어져 있었다”며 “이번 역량 집결로 PLP 성능 개선 등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온양 사업장./삼성전자
▲삼성전자 온양 사업장./삼성전자

이와 함께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전·후공정 턴키 수주는 물론, 제공할 수 있는 후공정 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고부가 AP는 FoWLP로, 전력관리반도체(PMIC)처럼 입출력(I/O) 숫자가 적은 여러 부품을 한 데 패키지할 때 PLP를 활용하는 식이다.

FoWLP 도입 초기 TSMC는 전공정에서 목표 물량보다 많은 양의 반도체를 만들고 후공정을 진행하는 식으로 FoWLP 공정의 수율과 성능을 높였다. 삼성전자도 같은 방식으로 PLP 공정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에서 전공정을 끝낸 반도체를 삼성전기에서 PLP를 진행한 뒤 다시 삼성전자가 이를 테스트하는 번거로움도 없앨 수 있다. 삼성전자 테스트&패키지 센터는 천안 삼성전기 PLP 생산 라인(삼성디스플레이 L3, L4) 옆 L5, L6 건물을 임대해 FoWLP 라인 등을 구축한 상태다.

외주후공정테스트(OSAT) 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PLP는 전공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OSAT 업체가 진행하기엔 버거운 기술”이라며 “삼성전자는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유도 충분하고, 수익성도 확보할 수 있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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