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연, '자동차 반도체 및 SW 연구회' 만들어… 첫 워크숍 성료

자율주행 기술이 2단계를 넘어 3단계로 향하고 있다. 업계는 오는 2030년 자율주행 4~5단계 자동차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자율주행차를 움직이는 건 수백개의 반도체와 소프트웨어(SW)다.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 및 SW 시장에서 국내 업체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은 자동차 껍데기만 만드는 나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학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댄다.

 

자율주행 시대의 경쟁력, 반도체·SW… 한국은 몇점?

엔진 시대, 소비자들은 주로 연비와 디자인, 가격을 보고 자동차를 구매했다. 아무도 운전대를 잡을 필요가 없는 자율주행 시대에는 여기에 사용자경험(UX), 자율주행 기능의 성능, 차량에서 즐길 수 있는 서비스 등이 추가된다.

배터리의 효율을 높이는 것도, 화려한 그래픽을 구현하는 것도, 다채로운 서비스를 실행하는 것도, 차량 주변의 상황을 파악해 주행을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게 반도체와 SW다.

 

▲자율주행 단계별 반도체 원가. 안전(Safety) 기능과 인포테인먼트 영역을 합치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단위: 달러)/Strategy Analytics
▲자율주행 단계별 반도체 원가. 안전(Safety) 기능과 인포테인먼트 영역을 합치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단위: 달러)/Strategy Analytics

이미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에는 200개 이상의 엔진제어장치(ECU)와 이를 각 부품과 연결하는 4000m 길이의 전선, 12개 이상의 통신 기술, 180여개의 전자 퓨즈(Fuse)가 적용된다. 불과 25년 전인 1995년 출시된 차량에는 ECU 40개, 1600m의 전선, 통신 기술 3개, 퓨즈 70개가 들어있었다.

시장 조사 기관 가트너는 자동차 전장화율이 2000년 22%, 2010년 35%로 서서히 증가하다 2030년 50%를 상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 및 SW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비중은 극히 적다. 시장 후발주자인데다, 장벽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반도체 및 SW는 개발에서 양산까지 최소한 5년이 걸린다. 완성차(OEM) 업체, 1차 부품사 대부분 원하는 사양을 특정해주지 않아 성능 목표치를 정할 수 없어 연구개발(R&D) 과제를 뒤엎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뢰성·안정성 기준도 만족해야 하고, 충분한 납품실적(Reference)도 쌓아야한다.

대기업인 삼성전자조차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는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단계다. 현대차그룹 산하 소프트웨어·반도체 설계 업체 현대오트론은 연매출 6000억원 규모로 르네사스의 10분의1도 안된다.

중소기업에서는 그나마 텔레칩스가 인포테인먼트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로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을 올리고 있고, 김동진 전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아이에이는 연매출 600억원을 갓 넘긴 수준이다.

 

“발등에 불떨어졌다”… 머리 맞댄 산·학·연

손을 내민 건 자동차 업계다.

올해 1월 1일 한국자동차공학회(KSAE) 산하 자동차 반도체 및 SW 연구회가 출범했다. 자동차공학 분야의 유일한 학회인 KSAE는 학계와 업계가 번갈아 회장직을 맡아 운영한다. 단순 학회가 아닌, 산·학·연이 미래 기술을 공유하는 자리다.

문대흥 현대오트론 대표는 5일 열린 ‘자동차 반도체 및 SW 연구회 창립 워크숍’에서 “대한민국은 반도체 강국이지만 자동차 반도체는 외산 업체들에게 밀리는 게 사실”이라며 “지난해 공학회장을 하면서 전자 R&D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홍성수 자동차 반도체 및 SW 연구회 위원장이 5일 개최된 창립 워크숍에서 연구회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KIPOST
▲홍성수 자동차 반도체 및 SW 연구회 위원장이 5일 개최된 창립 워크숍에서 연구회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KIPOST

자동차 반도체 및 SW 연구회는 국내 차량용 반도체 및 SW 역량을 길러 미래 자율주행 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됐다. 초대 위원장을 맡은 홍성수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KSAE 부회장이기도 하다.

홍 교수는 “자율주행차는 반도체와 SW의 힘으로 움직이는데 KSAE 내 IT 전문가들은 극소수였다”며 “IT 전문가들을 자동차 기술로 초대하지 않으면 국내 자동차 산업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회는 앞으로 자동차 업계에 반도체와 SW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업계의 오랜 숙원인 연구인력 육성 전략은 물론, 스타트업 육성 전략을 수립하는 데도 앞장설 계획이다.

뿐만 아니다. 이날 행사에는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물론 텔레칩스, 퀄컴, 넥스트칩 등 팹리스 업체와 퓨리오사AI, 스트라드비전 등 SW 업체 관계자도 다수 참여했다.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던 업체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거나 협력을 도모하는 장이 마련된 셈이다.

이장규 텔레칩스 대표는 “여러 종류의 반도체와 SW가 서로 통합되는 추세에 따라 업계가 서로의 지적재산(IP)을 살펴보고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며 “학회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무엇을 문제로 지적했나

 

▲5일 자동차 반도체 및 SW 연구회 창립 워크숍에서는 홍성수 서울대 교수(맨 오른쪽)의 주재로 업계와 학계의 패널토론이 진행됐다./KIPOST 

이날 행사에서 업계, 학계 관계자들은 연구개발(R&D), 또는 사업화 과정에서 있었던 문제들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았던 건 꽉 막힌 운영체제(OS)다. 현재 대부분의 자동차는 클로즈드 소스 기반의 OS를 쓴다. 라이선스를 받은 업체들만 소스 코드를 따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어 진입 장벽이 높아진다.

오픈소스 OS의 문제였던 보안 문제도 해결됐다. 오픈소스 OS는 생태계가 커질수록 자정능력이 강해진다. 생태계 내 개발자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이를 막을 방안을 더해가기 때문이다. 이미 리눅스 커널이 자동차 부품에 적용되고 있다.

SW 생태계를 빠르게 넓히려면 제동 등 일부 미션 크리티컬한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를 오픈소스로 공개해야한다고 업계는 입을 모았다. 실제 텔레칩스는 자사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한 리눅스 기반 SW를 만들 수 있도록 ‘오픈 포럼’을 열 계획이다.

김진철 SKT 매니저는 "PC산업이 발전한건 IBM에서 PC용 오픈소스 아키텍처를 내놓으면서다"면서 일렉트로비트(ElekroBit) 같은 글로벌 자동차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오픈소스 전략을 택하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전략적으로 이를 추진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진입장벽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차량용 반도체는 상위 시스템의 이해 없이 설계할 수 없다. 문제는 시스템도, 사양도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1년 자동차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넥스트칩이 올해서야 비포(Before)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회인 넥스트칩 상무는 “사양도 특정할 수 없고, 상위 시스템도 몰라 수도 없이 프로젝트를 뒤집었다”며 “스마트폰이야 사서 분해해보면 되지만, 신차를 매번 사서 분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국내 최대 완성차 업체 현대차가 맏형 노릇을 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아우디는 라이다, 레이더, 카메라, 초음파센서 등 4개의 센서가 달린 자동차를 미국 샌디에이고대학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빌려준다. 그 위에 올라갈 SW를 개발하는 조건이다.

현대차는 업체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부품 사양을 공개하고 데이터 일부를 제공하는 등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수많은 요청에 다 답할 수는 없다는 게 현대차의 입장이다.

행사에 참여한 현대차 관계자는 “데이터 공유부터 표준, 인터페이스까지 전부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일”이라며 “정부로 창구를 일원화해서 R&D용 자율주행차 수 대를 마련, 업체들이 쓸 수 있게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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