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확보보다 더 큰 난제는 TV 시장의 정체

한국야구위원회 로고. /자료=한국야구위원회
한국야구위원회 로고. /자료=한국야구위원회

지난달 25일 한국프로야구 중계사에 ‘변곡점’이라 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KBO리그 유무선(뉴미디어) 중계권 사업자 선정 입찰에서 통신·포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네이버·카카오·KT·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가 참여한 ‘통신·포털 컨소시엄’이 써낸 입찰가는 5년간 1100억원. 연평균 220억원으로 지상파 3사가 속한 ‘방송사 컨소시엄’을 여유롭게 따돌렸다.

이는 현재 스포츠 중계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와 통신·포털 간 경쟁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마트폰 산업 태동 이후 동영상 콘텐츠 소비의 중심은 거실(TV)에서 손 안(모바일)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디스플레이 크기가 유일한 장점인 TV는 스포츠 중계 시청때만 잠깐씩 선호되는 매체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번 KBO리그 뉴미디어 중계권 사업자 선정 결과는 분명하게 말한다. 향후 스포츠 중계 무게 중심 역시 TV에서 통신·포털을 등에 업은 뉴미디어 매체로 이동할 것이라는 점을.

안석현 콘텐츠팀장/기자.
안석현 콘텐츠팀장/기자.

최근 신개념 디스플레이인 퀀텀닷-유기발광다이오드(QD-OLED) 라인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삼성의 고민도 이 지점에 멈춰있다. QD-OLED 생산에는 조단위 투자가 필요한데, 타깃인 TV 시장은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기술 확보도 난제지만, 진짜 고민은 시장에 있다는 뜻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간한 ‘2018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를 보자. 조사대상의 57.2%는 일상생활에서의 필수 매체로 스마트폰을 꼽았다. TV라고 답한 비율은 37.3%에 그쳤다.

연령대별 응답 결과는 TV 산업의 위기 상황을 더욱 극명하게 대변한다. 10대 응답자 중 TV를 필수 매체로 꼽은 비율은 불과 7.6%였다. 스마트폰이 필수 매체라고 답한 비율은 82.5%에 달했다. 지금의 대한민국 10대들에게 TV는 어쩌다 한번 찾는 ‘보조매체’에 불과하다.

이처럼 위축되는 시장을 보고 투입하기에 QD-OLED 투자금은 막대하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트(DSCC)가 추산한 QD-OLED 투자 금액은 기존 LCD 라인을 전환할 때를 기준으로 2조5000억원(월 8.5세대 3만장)이다.

만약 삼성이 65인치⋅75인치 시장을 잡겠다고 10.5세대(2940㎜ X 3370㎜) QD-OLED 라인에 투자한다면, 최소 10조원 이상의 자금이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TV용 디스플레이 시장은 최근 몇 년째 2억5000만대 수준에 묶여 있다. 짝수해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몰려 TV 시장 성수기다. 지난해 국내 패널 업체들은 TV용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겨우 적자를 면했다. 수요는 제자리인데, 중국 경쟁사들의 생산능력은 크게 늘면서 디스플레이 패널 가격이 하락한 탓이다.

연령별 일상생활 필수 매체. /자료=방송통신위원회
연령별 일상생활 필수 매체. /자료=방송통신위원회

삼성의 QD-OLED는 이 같은 악조건과 회의론을 뚫고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어쩌면 삼성디스플레이가 상대할 진짜 경쟁자는 LG디스플레이나 중국 BOE가 아닐 수 있다. QD-OLED의 진짜 맞수는 하드웨어로는 스마트폰, 서비스로는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들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점점 개인화 되어가는 시청자들의 미디어 소비 행태가 삼성이 직면한 가장 넘기 어려운 벽이다.

한때 나이키는 자신들의 경쟁상대를 아디다스가 아닌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로 상정했다. 사람들이 게임에 여가 시간을 써버리면 운동복이나 운동화를 살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 삼성에게 가장 필요한 게 이 같은 TV 시장에 대한 재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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