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통신(RF)·전력 반도체 수요 증가 덕에… 장비 수요가 공급 6배

수년간 반도체 소재·장비 수요를 이끌어온 300㎜ 웨이퍼 생산라인(Fab) 투자가 주춤하다.

하지만 200㎜ 웨이퍼 투자 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중고 장비는 300㎜ 장비 가격보다 더 비싸고, 웨이퍼 생산량 또한 매년 증가할 전망이다. 업계는 200㎜ 웨이퍼 생산 공정이 300㎜ 웨이퍼로 전환할 필요 없는 하나의 표준화된 공정으로 자리잡았다고 보고 있다.  
 

200㎜ 웨이퍼 시장, 성장은 이어진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최근 200㎜ 웨이퍼 생산량이 올해 월 580만장에서 연평균 4% 성장해 2022년 월 650만장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이전 전망치보다 늘어난 수치다. SEMI는 지난해 전망에서 2022년 200㎜ 웨이퍼 생산량은 월 600만장이 될 것이고, 팹 수는 203곳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SEMI의 200㎜ 웨이퍼 시장 전망치. 위는 올해, 아래는 작년 발표됐다./SEMI
▲SEMI의 200㎜ 웨이퍼 시장 전망치. 위는 올해, 아래는 작년 발표됐다./SEMI

전망을 상향 조정한 이유는 관련 산업 분야의 성장 때문이다. SEMI는 올해부터 2022년까지 미세기계전자시스템(MEMS) 및 센서 분야의 웨이퍼 출하량은 25%, 전력 반도체 분야는 23%, 파운드리는 18%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역별로는 중국이 단연 1위다. 현재 중국에서 건설 중인 200㎜ 팹은 총 4곳이다. UMC는 중국 200㎜ 웨이퍼 팹의 생산량을 늘리고 있고 SMIC와 화홍그룹의 상하이화리(Shanghai Huali) 등 중국 파운드리 업체도 200㎜ 웨이퍼 팹 생산량을 확장했다. SK하이닉스시스템IC의 200㎜ 팹 M8도 오는 3분기부터 중국으로 이설된다.

국내에서도 200㎜ 붐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 웨이퍼 생산량을 월 15만~20만장에서 25만~30만장 수준으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DB하이텍은 지난해 200㎜ 생산 라인에 대한 보완 투자를 집행했다.

 

왜 200㎜인가?

 

▲200㎜ 웨이퍼(앞)와 300㎜ 웨이퍼의 생산성 차이./UMC
▲200㎜ 웨이퍼(앞)와 300㎜ 웨이퍼의 생산성 차이./UMC

200㎜ 웨이퍼의 생산성은 300㎜ 웨이퍼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크기의 반도체를 만들 때 200㎜ 웨이퍼에서 100개가 나온다면, 300㎜ 웨이퍼에서는 250개가 나온다는 얘기다.

이처럼 채산성이 떨어지는데다 공정 고도화도 300㎜ 웨이퍼를 중심으로 추진돼 지난 2008년 이후 200㎜ 팹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장비 업계도 200㎜ 웨이퍼용 신제품을 내놓지 않았다. 웨이퍼 이송장치(FOUP) 등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는 것도 300㎜ 웨이퍼 생산 라인부터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09년~2017년 폐쇄되거나 용도가 바뀐 총 92개의 팹 중 200㎜ 웨이퍼 팹은 150㎜ 웨이퍼 팹(41%) 다음으로 많은 비중(26%)을 차지했다.

 

▲200㎜ 웨이퍼 생산라인 수./SEMI, KIPOST 재구성
▲200㎜ 웨이퍼 생산라인 수./SEMI, KIPOST 재구성

ASML 관계자는 “현재는 모든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200㎜ 장비 시장을 ‘틈새 시장’으로 보고 있지만, 200㎜ 웨이퍼 팹이 한창 사라지던 2000년대 후반에는 200㎜ 팹이 이전 150㎜ 팹처럼 거의 쓸모 없어질 것이라 여겼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바뀐건 3~4년 전부터다. 전기차, 사물인터넷(IoT) 시장이 커지면서 아날로그 반도체, MEMS, 무선통신(RF) 반도체 수요가 증가했다. 이들 반도체는 굳이 최첨단 공정을 사용하지 않아도 돼 300㎜ 웨이퍼 공정으로 전환할 필요가 없다.

DB하이텍 관계자는 “300㎜ 웨이퍼 생산 단가가 200㎜ 웨이퍼 생산 단가와 비슷하거나 더 높기 때문에 일부 제품은 300㎜ 웨이퍼에서 제품을 생산하면 오히려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 중에서도 수요를 이끌었던 건 전력 반도체용 BCD(Bipolar-CMOS-DMOS) 공정과 완전공핍형 실리콘온인슐레이터(FD-SOI)의 RF 버전인 RF 실리콘온인슐레이터(SOI) 공정이다.

자동차 업계는 도입된 지 긴 시간이 지나 결함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고신뢰성 공정을 선호한다. 300㎜ 웨이퍼 생산 라인에서 생산된 반도체가 들어간 것도 그나마 인포테인먼트용으로, 인버터 등 핵심 모듈에 들어가는 전력 반도체는 대다수가 200㎜ 팹에서 만들어진다.

RF SOI 공정은 삽입 손실이 없고 절연성이 좋아 스위치나 저잡음 앰프, 안테나 튜너 등 RF 프론트엔드(RFFE) 모듈을 구성하는 일부 반도체를 제조할 때 쓰인다. 이들 반도체는 기기에 들어오는 주파수를 분리해 신호를 명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동통신 세대 발전으로 주파수 대역폭이 다양해지면서 여러 주파수 대역을 하나로 묶는 캐리어어그리게이션(CA)과 여러 안테나를 쓰는 다중안테나(MIMO) 기술이 등장했다. 이를 처리하려면 RFFE 모듈에도 더욱 많은 부품이 필요하다.

RF 반도체 설계 업체 관계자는 “2000년 휴대전화에 들어가던 RF 부품은 2달러 정도였는데, LTE가 보편화된 현재는 12~15달러 정도”라며 “5G 스마트폰에는 18~20달러치의 RF 부품이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요가 공급의 6배… 없어서 못 만드는 200㎜ 생산 라인

 

▲ASML은 365나노 파장 기반 300㎜ 웨이퍼 노광 시스템 ‘트윈스캔(TWINSCAN) XT:400L’을 200㎜ 웨이퍼 공정에도 쓸 수 있게 했다./ASML
▲ASML은 365나노 파장 기반 300㎜ 웨이퍼 노광 시스템 ‘트윈스캔(TWINSCAN) XT:400L’을 200㎜ 웨이퍼 공정에도 쓸 수 있게 했다./ASML

이에 200㎜ 팹 수요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신규 장비가 출시되지 않는 상황에서 생산 라인을 구축하려면 중고 장비를 사는 방법 밖에 없다. 하지만 매물로 나온 200㎜ 장비들은 2000년대 중후반 200㎜ 팹 폐쇄 및 전환으로 나온 장비 뿐이다.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는 “현재 200㎜ 장비 잠재 수요는 연간 30만장 정도 규모지만 시중에 나와 잇는 모든 중고 장비는 5만장 분에 불과하다”며 “장비 재정비(Refurbish) 전문 업체들은 300㎜ 웨이퍼 장비를 200㎜ 장비로 바꿔 판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도 신규 장비를 출시하는 등 이 시장에 다시 진입하고 있다. ASML은 대량 요청 시 주문형으로 해당 장비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고 300㎜ 장비를 200㎜용으로도 쓸 수 있게 했다. 램리서치는 화학기상증착(CVD), 식각, 습식세정 등의 장비를 일부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장비에 들어가는 반도체나 보드, 소프트웨어가 오래돼 더이상 생산되지 않거나 구할 수 있어도 가격이 비싸 300㎜ 웨이퍼 중고장비보다 가격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180나노 등 구공정을 아예 300㎜ 생산 라인으로 구축하는 시도도 있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김 대표는 “중국 장비 업계가 글로벌 업체의 200㎜ 장비를 베껴 비슷한 콘셉트의 장비를 내놓기도 하는데 아직 잘 팔리진 않는다”며 “그나마 글로벌 반도체 장비 제조사들이 새 제품을 내놓고 있어 공급 부족이 조금은 해소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200㎜ 붐,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렇다면 200㎜ 웨이퍼 붐은 언제 끝날까. 업계는 200㎜ 공정 자체가 하나의 표준화된 공정으로 자리잡았다고 보고 있다. 장비 업계가 신규 장비를 출시하는 등 공급이 빠르게 개선되지 않으면 현재의 공급 부족 현상이 만성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운드리 업계 관계자는 “5~6년 전만 해도 수익성이 나지 않아 계륵 같은 존재였던 200㎜ 팹이 요새는 알짜배기 시장”이라며 “60나노 이하로 미세화할 필요 없는 칩은 굳이 300㎜ 팹을 택할 이유가 없어 수요는 꾸준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문제는 공급”이라고 말했다.

한계는 있다. 200㎜ 웨이퍼 생산 라인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인데, 물량이 많을수록 300㎜ 생산 라인으로 전환하는 게 오히려 쌀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 라인 자동화나 공정 제어 면에서도 300㎜ 팹이 유리하다. 가격 외 특수 공정 등 다른 이점을 마련해야한다는 얘기다.

이미 RF SOI 공정은 300㎜ 웨이퍼 생산 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현재 전체 RF SOI 생산 라인 중 300㎜ 생산 라인은 한자릿수에 불과하다. 웨이퍼 가격도 200㎜의 3배에 달한다. 하지만 5G 스마트폰이 보급화되면 더 많은 RF 부품을 조달해야한다.

글로벌파운드리는 뉴욕, 싱가포르 팹에서 300㎜ 웨이퍼 RF SOI 공정 생산 라인을 확장하고 있다. 200㎜ RF SOI 공정만 제공해오던 타워재즈도 일본 300㎜ 웨이퍼 생산 라인에 65나노 RF SOI 공정을 구축 중이다.

인피니언을 필두로 한 전력 반도체 업계도 300㎜ 웨이퍼 생산 라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110나노 등 구공정은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화됐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사이프레스의 미네소타 200㎜ 팹을 인수한 스카이워터(SkyWater)라는 파운드리는 보편적인 상보성금속산화물반도체(CMOS) 공정 외 바이오, 실리콘 광학, 양자 컴퓨팅 등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며 “이처럼 특수 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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