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반도체 산업, 악순환 고리 열쇠 '수직계열화'

△오은지 기자(이하 오): 오늘은 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고, 아직 진행 중인 사건을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골자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라고 하죠, 반도체 설계 업체들로부터 설계도를 받아서 웨이퍼 공장을 돌려서 칩을 만들어주는 사업입니다.


이 파운드리가 잘 돌아가려면 필요한 외주 업체들, 디자인하우스라고 합니다. 삼성이 국내에 꽤 많은 디자인하우스가 있는데 이 업체들을 배제하고 외국계 업체와 계약을 맺고, 또 일부는 베트남에 설립하도록 지원을 했다는 겁니다.

이것을 두고 가뜩이나 미국, 일본, 심지어 중국한테 한참 뒤쳐진 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고사하는 게 아니냐, 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요 진짜 문제가 뭔지 한번 짚어보죠.

직접 취재한 김주연 기자 자리했습니다.

일단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디자인하우스 생소한 용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정리 좀 해주세요.

▲김주연 기자(이하 김) 시스템반도체는 데이터를 연산, 처리, 제어, 해석하는 반도체입니다. 비메모리 반도체라고도 하구요 .

역할에 따라서 아날로그 반도체, 마이크로 컴포넌트, 로직 반도체로 나뉩니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빛이나 소리 같은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구요. 마이크로 컴포넌트는 가전 제품에 들어가는 조그만 제어 칩, MCU가 대표적입니다. 데이터 연산, 처리, 제어 역할을 하는 로직 반도체는 여러분이 가장 잘 아시는 반도체죠, PC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와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있습니다.

△오: 이건 스마트폰 분해도인데, 카메라 구동, 홈버튼, 스냅드래곤 AP, 마이크 이런 게 다 시스템반도체가 관여하는 기능들인 것 같습니다. UFS ROM 메모리를 제외하고는 시스템반도체가 엄청 쓰이네요.

▲김: 각종 전자 부품에는 시스템 반도체가 하나씩은 꼭 들어가 있습니다. 데이터 저장 역할만 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제조사가 설계부터 제조, 심지어 후공정까지 하지만 시스템반도체는 워낙 다양해서 설계 업체가 따로, 제조도 전공정 업체와 후공정 업체, 테스트 업체로 나뉘죠.

△오: 이게 시스템반도체 개발 단계를 그린 건데요, 딱 봐도 참 복잡하고 단계가 많아요.

 

▲김주연하나하나 볼게요. 먼저 설계 업체, 팹리스는 다양한 설계자산을 가지고 아이디어를 반도체 회로로 그려서 현실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와 파운드리 사이의 연결다리에요. 팹리스가 그린 설계도를 파운드리 업체가 생산할 수 있도록 바꿔주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반도체처럼 전용 반도체(ASIC) 고객사가 늘어나면서 디자인하우스가 아예 설계를 외주 받거나, 후공정과 테스트 업체까지 연결해 턴키 솔루션을 공급하는 경우가 늘었어요.

파운드리 사업이 잘되려면 생태계에 있는 설계자동화(EDA) 툴, IP 업체, 디자인하우스들과 끈끈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이전까지는 팹리스가 직접 IP를 개발하고 디자인하우스의 레이아웃 작업을 내재화하는 경우가 많아서 업계가 각개전투를 해도 됐지만, 지금은 안 그렇거든요. 작년에 가상화폐 열풍이 있었잖아요? 이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칩은 채굴 업체가 직접 설계를 하지 않아요. 다 전용반도체(ASIC)라 외주를 주거든요.

그런데 이 외주를 아예 디자인하우스 업체나 파운드리 업체에 맡겨요. 설계부터 제조까지 일일이 신경쓰기 싫다 이거죠. 그런데 파운드리 업체는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까, 엔비디아 같은 이런 대기업 말고는 신경 쓸 여력이 없어요. 그 역할을 디자인하우스가 대신 해주는 거죠. 즉, 디자인하우스가 탄탄히 받춰줘야 파운드리 서비스도 잘되는 법이에요.

△오: 반도체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게 단순하지 않네요. 그런데 지금 제일 문제가 되는 게 뭡니까?

▲김: 삼성전자가 처음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한 2005년 지금까지 국내에는 삼성전자 팹을 지원하는 디자인하우스들이생겨났는데요. 삼성전자가 중소 고객들보다는 대형 고객사에 집중을 해서 별로 크질 못했어요. 대부분 다 영세하고, 그나마 큰 알파홀딩스 규모가 100명도 채 안되죠.

이런 상황에서 2017년에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독립을 하면서 이제 중소 팹리스 업체들과 협력하겠다,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삼성 파운드리 생태계, SAFE를 만들었어요. 그 안엔 여러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이 있었는데 거의 삼성 전속 디자인하우스들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외국계 대기업이 한국에 디자인센터를 세웠어요. 그리고 국내에 있던 디자인하우스 인력을 싹 뽑아갔습니다. 삼성 입장에선 이거 좋거든요. 일단 외국계 대기업이니까, 믿을만 하잖아요.

△오: 그런데 갑자기 여기서, 베트남은 왜 등장합니까?

▲김: 젊은 사람 많고 고객사 있는 베트남에 삼성 전속 디자인하우스를 세워라, 잘해줄게 한거죠. 삼성이 베트남에 주목한다니까 고급 인력들 중에 많은 수가 베트남에 설립되는 디자인하우스로 이직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 130명 정도 규모로 디자인하우스가 생겼어요. 삼성 일을 하는 국내의 그 어떤 디자인하우스보다 규모가 커요. 한마디로 디자인하우스의 중심 축을 한국에서 해외로 돌린거에요.

△오: 그러면 결론을 '삼성이 잘못했다' 이렇게 낼 수밖에 없겠네요? 사실 국내 팹리스 업계가 어려워진 게 삼성이 직접 또는 계열사를 통해서 칩을 개발하는 수직계열화를 하면서부터 아닙니까.


한 10여년 전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업체들이 삼성에 항의 서한까지 보낸 적이 있는 걸로 기억나요. 인력들이 삼성으로 다 가니까 생태계는 또 인력난을 겪고, 그러다보니 제품 개발이 안 되니까 또 잘하는 외국 거 갖다 쓰고, 국내 기업들은 그러니까 또 팔 데가 없고

▲김: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얘기도 사람이 없다는 거에요. 메모리 반도체야 워낙 잘 되잖아요.

시스템반도체는 1990년대 말에는 벤처 붐이 일면서 시스템반도체를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팹리스 업체들이 참 많았어요. 엠텍비젼, 코아로직 같은 회사들 들어보신 분들 있을 겁니다. 예전 피처폰 시절에 삼성, LG, 그리고 MP3 핵심 반도체를 개발하면서 잘 나갔어요. 그런데 스마트폰 시대가 오면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로 많은 기능들이 통합되기 시작했고요, 중소기업이 하기 힘든 업종이 됐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당시에 시스템LSI 투자를 하면서 또 팹리스 인력을 정말 블랙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사람이 없으니 개발이 어렵고, 개발이 안 되니 고객사들은 만족을 못해서 납품을 못하는 악순환이 시작됐습니다.

또 국내에 이런 팹리스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파운드리가 얼마 없다보니 대만 같은 해외에서 칩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고요.

시스템반도체는 산업 특성상 종류도, 역할도 다양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혼자 IP개발에 설계, 제조까지 모든 걸 할 순 없습니다. 덩치가 크면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기도 어렵구요. 어떻게 보면 삼성이 인력을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 역량을 전부 흡수하면서 생태계가 망가지기 시작한거죠.

시스템 반도체 시장 상황이 이렇게 안좋으니까, 애초에 전공자도 얼마 없습니다. 1년에 박사가 30명 정도밖에 배출이 안 되고, 또 다 외국계 업체 디자인센터나 대기업을 선호하지, 영세한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체를 반기진 않죠. 설령 가더라도 좀 경력을 쌓았다 싶으면 대기업에서 연봉 2~3천만원 더 줄게, 가자 한다고 하더라구요. 안 갈 사람이 어딨겠어요. 국내 디자인하우스 중에서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고졸 출신이랑 해외 인력을 데려다가 일일이 가르치면서 하는 곳도 있어요. 정부도 시스템 반도체를 십년 넘게 지원하고 있는데, 밑빠진 독에 물 붓기 느낌이죠. 사람 자체도 없고, 내수 시장도 적고, 수요처도 찾기 힘들어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가 어렵거든요.

△오: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가 있는 대만은 미디어텍 같은 시스템반도체 대기업이 있잖아요. 일본도 마찬가지고요.한국이랑 뭐가 다른가요?

▲김: 일단 TSMC는 삼성전자처럼 칩도 개발하고, 파운드리도 하고 전부 다 하는 회사가 아니라서 외주 생산을 맡기는 업체들한테 신뢰도가 높습니다. 또 디자인하우스 생태계를 잘 조성했어요. VCA(Value Chain Aggregator)라고 보이시죠? 직접 지분 투자도 하고, 같이 IP도 개발하면서 디자인하우스를 전략적으로 키우고 함께 성장했습니다. 이런 업체들이 규모가 되고 자금력이 되니까 전세계에 퍼져서 또 영업을 하고 그 나라에 있는 설계 회사를 지원하고, 말하자면 선순환 생태계가 된거죠.

한국은 삼성한테 판다고 LG 못 팔고, SK하이닉스 못 팔고 이런 식은 아니었던거죠. 일본은 서로를 주종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로 서로를 생각하니까, 협력사들이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도록 보장해줍니다.

△오: 아름다운 결론을 내자면, 대기업, 협력 생태계, 정부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잘 해결해  달라고 하고 끝내면 되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해결책도 좀 제안해주세요.

▲김: 이 문제는 삼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산업 생태계 구성원 모두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죠. 일단 삼성전자는 장기적으로 사안을 바라봤으면 합니다. 시스템반도체는 산업 특성상 종류도, 역할도 다양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혼자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든 걸 할 순 없습니다. 생태계가 제대로 형성돼야 삼성 또한 살 수 있습니다. 대만이 파운드리 사업에서 미국, 일본을 제쳤던 것도 바로 생태계의 힘이었습니다.


정부에서도 주목을 해야할게 디자인하우스가 힘을 잃으면, 팹리스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고 안그래도 없는 국내 팹리스들 전부 TSMC나 글로벌파운드리 같은, 지원 빵빵한 곳 찾아갑니다. 아무리 정부에서 자금을 쏟아도 돈이 해외로 간다구요. 시스템반도체 투자도 현실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예타 심사 중인 R&D 과제만 봐도 현실 가능성 없는 과제 투성입니다. 그리고 원천 기술 확보도 3, 5, 7년짜리 과제로 할 게 아니라 최소 10년을 보고 했으면 합니다. 인공지능(AI)만 봐도 IBM이 70년 전부터 개발을 시작했는데 아직도 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없다고 해요. 반도체 펀드 투자도 진짜 펀드 운용사들이 하는 것처럼 중단기 수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할 수 없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했으면 합니다. 푼돈 벌자고 펀드 조성한 게 아니라, 산업 발전을 위해 만든 거면요.


생태계 내 업체들도 고심했으면 합니다. 인력이 없다며 발만 구를게 아니라, 정부 기관이나 학교랑 손잡고 인력 교육도 했으면 좋겠어요. 업체들끼리 손잡고 IP를 공동으로 개발하거나, 영역을 나눠서 마케팅을 같이 하거나 하는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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