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기술도, 제도도 준비되지 않아… '레벨3' 단어조차 꺼려

[편집자주]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자칫 중요한 기술들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4500개의 업체를 나흘만에 돌아봐야 하는 탓에 벌어지는 불가피한 상황이죠. 이번 CES에서 미래 트렌드로 자리 잡을 주요 기술들을 꼽아봤습니다. CES 기간 중 CES 숏컷으로 짧게 소개했거나 미처 소개하지 못했던 업체들을 자세히 알아보세요.

 

▲CES 2019에서 엔비디아가 내놓은 ‘드라이브 오토파일럿’ 솔루션./KIPOST
▲CES 2019에서 엔비디아가 내놓은 ‘드라이브 오토파일럿’ 솔루션./KIPOST

자율주행 관련 반도체 업체를 꼽으라면 단연 첫번째는 엔비디아다.

자율주행을 구현하려면 수많은 이미지와 동영상 등 대용량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야하는데, 이같은 성능을 낼 수 있는 반도체를 만드는 곳이 아직 엔비디아뿐이다.

때문에 이전까지 엔비디아는 5단계 자율주행, 즉 완전자율주행에 대한 이야기를 그 어떤 반도체 업체보다 많이, 자주 했다.

하지만 이번 CES 2019에서 엔비디아가 메인으로 내건 솔루션은 ‘레벨 2+’, 즉 2+ 단계 자율주행 솔루션 ‘드라이브 오토파일럿(Drive AutoPilot)’이었다. 운전자가 아닌 시스템이 판단을 내리기 시작하는 3단계 자율주행도 아니고, 그렇다고 2단계도 아닌 그 중간이다.

완성차(OEM) 업체, 자동차 부품 1차 협력사들이 미래 자율주행 콘셉트카를 전시할 때, 엔비디아가 ‘레벨 2+’를 내건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은 성숙하지 않았고, 제도는 아직 멀었다

 

▲미국자동차기술학회(SAE)의 단계별 자율주행 자동차 분류./삼성뉴스룸
▲미국자동차기술학회(SAE)의 단계별 자율주행 자동차 분류./삼성뉴스룸

미국자동차기술학회(SAE)에 따르면 자율주행은 크게 6단계로 구분된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운전자보다 시스템이 하는 일이 많아지는데, 3단계는 시스템이 주행과 관련된 대부분의 판단을 하게 되는 단계다. 이때 운전자는 비상시에만 개입하게 된다.

문제는 아직 3단계 자율주행을 양산차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성숙하지도 않았고 관련 제도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엔비디아는 이미 완전 자율주행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을 갖춘 개발 키트 ‘드라이브 PX2’를 내놨다. 이 솔루션은 성능은 좋지만 센서와 실시간 매핑 기능 등을 모두 실행하면 전력소모량이 급격히 늘어나 시스템이 셧다운(Shut down)되기도 해 양산차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내장된 시스템온칩(SoC) ‘드라이브 AGX 자비에(Xavier)’ 기반 보드를 개발하면 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각 센서, 수동소자뿐만 아니라 커넥터까지도 모두 완성품 업체의 눈높이에 맞춰야하기 때문이다.

개발 후 적용까지도 3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 양산차에 직접 적용해 작동해보던 시험 주행 단계가 시뮬레이션으로 대체되면서 시간이 줄어들 여지는 있다.

하지만 10년 이상 팔려 문제가 없었던 부품만 가져다 쓰는 자동차 업계가 개발된 지 1~2년이 갓 지난, 그것도 안전과 직결되는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할 리는 없다. 게다가 자율주행차로 인한 사고가 잊을만하면 터지는 상황에서 자율주행 단계를 섣불리 높였다간 어떤 뭇매를 맞게 될지 모른다.

차정훈 엔비디아 오토모티브 세일즈 담당 상무는 “레벨3의 자율주행 단계를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지만 완성차 업계도, 일반인들도 아직 기술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완성차 업계도 ‘양산차는 레벨3 대신 레벨2+’로 해달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표준 등 관련 제도도 갖춰지지 않았다.

아직 ADAS를 포함한 자율주행 시스템의 검사 주체는 각 완성차 업체다. 반도체 등 전자 부품의 탑재량이 늘어나면서 기존 검사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동차 시스템 평가는 전체 작동 방식을 평가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지만 갈수록 각 부품의 상호작용 조합을 검증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ISO 26262 등 관련 표준이 있다지만 아직 모든 전자 부품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기계학습(ML) 등의 알고리즘은 ISO 26262에선 찾아볼 수도 없다. 보안도 문제다. 자율주행차의 각 부품은 무선(OTA)으로 점검·업데이트되는데 이 때 무결성을 테스트하는 방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32개주에서 만들어진 자율주행차 관련 규칙을 통합, 자율주행차(AV) 테스트 및 생산에 대한 규제를 간소화하고 연방 자동차 안전 표준(FMVSS)을 자율주행차로 확대하는 내용의 ‘AV STRAT’ 법안이 상원에 올라왔다.

하지만 상원에서 이 법안의 통과는 무산됐다. 수백여개의 협·단체가 아직 자율주행차의 ‘안전’이란 개념이 정립조차 되지 않았다며 반대를 하고 나선 탓이다. 일각에서는 미국도로교통안전국(NHTSA)의 미온적 움직임도 무산의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차량용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자율주행 시대가 되면 소비자는 집, 사무실처럼 자동차에서도 동일한 수준의 보안, 안정성, 고성능 연결을 요구한다”며 “완성차 업계, 부품 업계가 요구하는 바가 너무 많아서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자율주행은 언제?

그렇다면 3단계, 주행 판단을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하기 시작하는 자율주행차는 언제 양산될까.

일단 엔비디아가 올해 CES 2019에서 선보인 ‘드라이브 오토파일럿’ 솔루션은 고속 주행, 차선 변경 및 분할 등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에 가까운 2단계 자율주행 기능에 실시간 위치추적에 바탕을 둔 ‘매핑(Mapping)’ 기능을 추가했다.

‘매핑’은 운전한 장소를 기억, HD 지도를 사용할 수 없어도 운전 경로를 만들어 지점 간 자율주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다.

‘드라이브 오토파일럿’이 적용된 레벨 2+ 자율주행차는 내년 출시된다.

ZF는 ‘드라이브 오토파일럿’ 기반의 자율주행 모듈 솔루션 ‘ProAI’를 출시한다고 밝혔고, 콘티넨탈도 내년 이 솔루션에 라이다와 레이더, 카메라를 묶은 자율주행 모듈을 내년 양산하겠다고 공언했다. 볼보도 내년 이에 바탕을 둔 레벨 2+ 자율주행차를 출시한다.

업계는 기술적으로는 내년 당장이라도 레벨 3 자율주행차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제도적 뒷받침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만 관련 논의가 진행되는 게 아니라, 보험 등 관련 산업에서 모두 참여해 자율주행의 기능과 안전에 대한 합의를 해야한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업체 관계자는 “현재 자율주행에 관한 제도적 논의는 주로 미국, 유럽 완성차 업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 ‘AV START’ 법안 무산에서 살펴봤듯 파생 업계나 시민 단체 등과도 긴밀하게 협의해야할 것”이라며 “하지만 각 업체들조차 저마다 입맛에 맞는 솔루션만 고집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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