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사람들은 동서로는 대흥안령 (다싱안링, 大興安嶺) 산맥에서 알타이산맥, 남북으로는 고비사막에서 바이칼 호수 사이의 땅을 근거지로 살아왔다. 이 고원지대의 북쪽은 자작나무 숲이 빼곡한 시베리아로 이어지고, 남쪽은 점점 건조해져 삭막한 고비 사막에 다다른다. 그 중간에 대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몽골 사람들은 이를 몽골고원에서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강(가뭄)과 쪼드(혹한)라는 재앙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몽골 초원
▲강(가뭄)과 쪼드(혹한)라는 재앙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몽골 초원

이 드넓은 몽골초원에는 강(Gan)과 쪼드(Dzud)라는 두 재앙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강'은 이상 기온에 따른 집중적 가뭄이고, '쪼드'는 가뭄위에 몰아 닥치는 혹한이다. 가뭄과 강추위에 가축들이 굶어 죽으면 사람들도 같이 굶어 죽는 과정은 몽골고원에서 살아갔던 모든 유목민들의 숙명이었다. 가축 15-20마리가 한 사람의 유목민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가축이 얼어 죽고, 굶어 죽으면 유목민도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몽골에는 사료도 없고 축사도 없다. 한겨울 쪼드가 몰아치면 가축들은 온몸으로 추위를 막아내야 한다. 소에게는 옷을 입히고 털이 많은 양들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여 버틴다. 가축은 선 채로 얼어 죽고, 먹을 풀을 찾지 못해 굶어 죽는다. 소꼬리가 부러질 정도의 추위이다. 고대로부터 몽골인들을 괴롭히던 자연재해로 이런 몽골 속담도 있을 정도다. ”전사는 화살 한 발에 죽고 부자는 쪼드 한 번에 망한다.” 1009년 겨울에 사상 최악의 쪼드가 밀어닥쳤다. 이때 몽골 전체 가축의 5분의 1이 사라졌다. 잔인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왔을 때 풀을 뜯어 먹일 가축 한마리 없는 유목민이 할 수 있는 방법이란 도시로 떠나는 일이다. 울란바토르로 들어간 유목민은 정부 보조금을 받고 막노동을 하면서 도시 빈민이 된다. 지금이야 울란바토르라는 피난처가 있지만 옛날에는 어땠을까? 이렇게 초원에서 도저히 먹고 살 길이 없을 때 농경민을 공격한다는 어느 역사학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니까.

극심한 한랭기에 유년시절을 보냈던 칭기즈칸도 어린시절 쪼드로 여러 차례 굶주렸을 것이고 남동생 하나가 굶어 죽은 것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가 몽골족을 거느리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정복전쟁을 시작한 것도 지긋지긋한 강과 쪼드에서 벗어나 일족들을 따뜻하고 배부르게 만들고 싶어서가 아닐까?

2000년 미국의 타임즈와 워싱턴타임스가 지난 밀레니엄 1000년의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은 뒤 세계적으로 칭기즈칸과 노마디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유목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운 거란, 여진, 말갈, 돌궐, 몽골, 흉노, 선비 등도 대표적인 유목민이지만, 이외에도 인류역사에서는 스키타이, 파르티아, 투르크, 훈 등 수많은 유목민족의 명멸을 볼 수 있다. 현대에도 전세계에 약 3000~4000만명의 유목민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인류의 인구가 훨씬 적었던 고대에도 전세계 유목민의 숫자는 현대의 숫자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초원의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유목민이 살 수 있다. 몽골족처럼 세계를 지배한 저력을 가진 민족이 드넓은 몽골초원에서 살아오면서 칭기스칸 시대부터 지금까지 겨우 3배 늘었다. 같은 시기 한반도 인구가 500만명에서 7500만명으로 15배 늘어나는 사이에 몽골은 인구 100만명이 300만명

현대에도 울란바토르 인구 150만명에 유목민을 모두 포함해도 인구를 300만밖에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유목생활의 어려움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유목은 아침에 빵 하나 들고 하루 종일 초원에 나가 잇는 고달픈 인생입니다. 귀농은 성공할 수 있지만 귀목은 불가능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어릴 때부터 체질화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 몽골 전문가 이평래 선생의 말처럼 고달프고 힘든 유목생활을 버리고 몽골의 젊은이들은 하나둘 도시로 떠나고 나이든 유목민들은 젊은이들의 인내심을 탓하고 있다.

몽골에서는 5축이라고 해서 주로 말, 양, 염소, 낙타, 소를 가축으로 키우는데 약 6000만 마리의 가축이 있다고 한다. 사람 한 명에 가축 20마리 비율이다. 가축에서 나오는 것들은 버릴 것이 없다고 한다. 고기와 우유는 주식으로 먹고, 가죽은 천막집 게르의 재료, 뼈는 게르의 골조, 장난감으로 쓴다. 뼈를 끓여 수테차를 만들어 먹고, 가축의 똥은 나무가 부족한 초원과 사막에서 중요한 연료로 많이 쓰여왔고, 요즘은 모기향처럼 벌레를 쫓는 용도로도 많이 사용한다. 캐시미어가 각광받으면서 염소 가격이 비싸지자 몽골의 유목민들이 양보다 염소를 더 키우면서 몽골초원을 사막화 시킨다고 한다. 염소는 양과 달리 풀의 뿌리까지 다 뜯어먹기 때문이다. 자연을 거스르며 거침없이 욕망을 불사르는 현대인들은 가까운 시일내에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게르 (Ger), 몽골인의 이동식 거주천막, 중앙아시아에서는 유르트 (Yurt)라 부른다.
▲게르 (Ger), 몽골인의 이동식 거주천막, 중앙아시아에서는 유르트 (Yurt)라 부른다.

초원에서 게르에서의 삶은 현대 도시생활에 적응한 우리의 기준으로 봐서는 안된다. 징기스칸의 대칙령에는 “옷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빨래를 해서는 안된다.” 라는 조항이 있다. 물이 부족한 몽골고원에서 빨래는 삶의 젖줄인 강을 오염시키는 반종족행위이다. 800년전에도 옷이 헤어질 때까지 빨아 입지 않는다고 지저분해 보이는 몽골군대를 무시했던 페르시아는 멸망당했다. 유목민의 관습인 형사취수 (兄死娶嫂, 형이 사망했을 경우 남동생이 형수를 취하는 풍습)는 전세계 유목민족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풍습이고, 고구려와 부여에도 그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를 현대인의 관점에서 야만적 풍습이라 비하하면 안된다. 형사취수는 유목민의 사회보장제도이고 상속과 권력의 유지제도이기도 하였다.

인치가 아닌 법치를 바랐던칭기즈칸은 대 쟈사크(대칙령)를 통해 시스템을 구축해나갔다. 대칙령의 조항 하나하나를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리더였고 그가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지를 볼 수 있다. 칭기즈칸도 이 대칙령을 어기지 않고 철저히 지켰으며, 이 대칙령은 몽골제국의 통치를 탄탄하게 하고 칸의 권력을 강화해준 초석이 되었다.

칭기즈칸의 대칙령 중에서 일상적인 삶과 관련된 조항들을 보면 13세기 몽골제국과 유목민들이 어떤 가치로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징기스칸 대칙령 중의 일부는 지금도 몽골초원에서 일상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몽골과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지금도 물 근처에서 오줌을 누지 않는다.

제4조 : 물과 재에 오줌을 싸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제8조 : 짐승을 도살할 때에는 먼저 사지를 묶고 배를 가르고, 짐승이 고통스럽게 죽지 않도록 심장을 단단히 묶어야 한다.

제13조 :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의 옆을 지나가는 손님은 말에서 내려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그 음식물을 먹을 수 있다. 주인은 그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제14조 : 물에 직접 손을 담가서는 안된다. 물을 쓸 때에는 반드시 그릇에 담아야 한다
제15조 : 옷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빨래를 해서는 안된다.

제19조 : 종군하는 부녀자는 남편이 싸움에서 물러났을 때에는 남편을 대신하여 의무를 다해야 한다.

제20조 : 전쟁이 끝나 개선하면 병사들은 소속 천호장을 위해 책무를 다해야 한다.

제29조: 말을 훔친 자는 한 마리당 아홉 마리를 변상해야 한다. 변상할 말이 없으면 아들을 내주어야 한다. 아들도 없으면 양처럼 본인이 도살될 것이다.

제30조: 절도, 거짓말, 간통을 금한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제31조 : 서로 사랑하라. 간통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위증하지 말라. 모반하지 말라. 노인과 가난한 사람을 돌봐 주어라. 이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

제32조: 음식을 먹고 질식한 사람은 게르(몽골식 천막) 밖으로 끌어내 바로 죽여야 한다.

그리고 사령관의 군영(軍營)문턱을 함부로 넘어온 자는 사형으로 다스린다.

제33조, 만약 술을 끊일 수 없으면 한 달에 세 번만 마셔라. 그 이상 마시면 처벌하라.

제34조, 첩이 낳은 아들도 똑같이 상속받아야 한다. 연장자는 연소자보다 재산을 많이 받고, 막내는 게르와 가재 도구 일체를 상속받는다.

제35조, 아버지가 사망하면 아들은 생모(生母)를 제외한 모든 처첩(妻妾)을 임의로 처리할 수 있는데, 결혼해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도 좋다.

제36조, 상속자 외의 사람은 죽은 자의 물건을 쓰지 말라.

 

 

▲울란바토르(Ulaanbaatar)에서 약 70km 동북방향에 있는 국립공원 테를지에서 필자 일행이 묶은 게르, 필자는 게르에서 잠자는 게 이색적인 분위기라서 좋았는데 일행 중의 일부는 쾌쾌한 냄새 등이 불편하다고 해서 게르 체험은 하루 밖에 하지 못했다. 보통 게르는 3명이 20~30분이면 해체하고 한시간 반이면 조립한다고 한다. 몽골에서 게르는 우리 돈으로 100만원 내외면 살 수 있다. 필자 일행 중의 한 명은 세계적인 텐트 전문 기업가로 게르를 한국으로 수입하다가 글램핑 용도로 팔아볼 고민을 했었다.
▲울란바토르(Ulaanbaatar)에서 약 70km 동북방향에 있는 국립공원 테를지에서 필자 일행이 묶은 게르, 필자는 게르에서 잠자는 게 이색적인 분위기라서 좋았는데 일행 중의 일부는 쾌쾌한 냄새 등이 불편하다고 해서 게르 체험은 하루 밖에 하지 못했다. 보통 게르는 3명이 20~30분이면 해체하고 한시간 반이면 조립한다고 한다. 몽골에서 게르는 우리 돈으로 100만원 내외면 살 수 있다. 필자 일행 중의 한 명은 세계적인 텐트 전문 기업가로 게르를 한국으로 수입하다가 글램핑 용도로 팔아볼 고민을 했었다.

게르(Ger)는 중국에서는 '파오(包)'라고 하고 우즈베키스탄, 터키와 같은 투르크족들은 '유르트(Yurt)'라 부른다. 농업정주민의 눈에는 수준 낮은 집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게르는 바람의 저항이 적고 겨울에는 바람이 덜 통하여 난방이 가능하며, 여름에는 매우 시원한 주거 형태이다. 무엇보다 해체가 쉽고 설치가 용이해 이동이 잦은 유목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하다. 게르의 문은 반드시 남쪽으로 나있어 게르의 문을 보면 동서남북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몽골 가이드는 시력이 5.0

가이드중의 한 명은 시력이 5.0이라 한다. 실제로 의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할 때 시력검사판에 5.0까지 측정할 수 있게 되어있다고 한다. 7초원과 사막에서 좋은 시력은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능력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의 유목민들의 오감은 도시에 적응된 현대인에게는 초능력으로 느껴질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 8의 말치기들은 밤새 말을 초원에 풀어놓고 아침에 데려오는데 만약 말이 보이지 않으면 귀를 땅에 대고 땅의 진동 소리로 자기 말이 어디쯤 있는지 안다고 한다. 길이 없는 초원을 몽골의 기사는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밤새워 달려도 길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3만년전 독일의 슈피겔 동굴의 상아조각을 보고 현대 인간의 지능과 3만년전 인류의 지능은 비슷할 것이라고 추론하였다. 고대의 인류는 현대인들이 가진 문명의 기술과 지식은 없었지만 삶에 필요한 자연과 동물, 식물에 대한 지식은 우리보다 훨씬 더 풍부했고, 예민한 시력, 청력, 후각, 촉각은 그들 생존의 필수조건이었다. 유목민의 척박한 삶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강력한 몽골군인을 길러냈다. 세 살이 되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에게 말 타는 법을 배운다. 다섯 살이 된 아이에게는 활이 주어진다. 극심한 기온 차, 거센 바람, 부족한 물, 부족한 목초지, 부족한 사냥감 등 혹독한 초원의 환경은 몽골 기병들을 고난으로 단련시켰다. 시력이 좋고 특히 시각 기억력이 뛰어난 유목민은 태생적으로 강한 사람들이었다. 13세기 을 여행했던 사람들은 몽골 군인이 초원에서 6Km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과 동물을 구분할 수 있다고 기록했다.

 

기후변화와 칭기즈칸

9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의 건조화 현상은 학자들 간에 오랜 논쟁을 야기해왔다. 초원지대의 가뭄 또는 습기증가는 태양활동에 영향받는 사하라사막과 아라비아사막에 걸친 아열대 극고압대의 이동(사이클론 현상)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초원지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4세기는 중앙아시아 스텝지대에 습기가 증가한 시기였다. 그후 초원지대의 건조화는 기원후 1~3세기에 일어났다. 4세기에 사이클론이 스텝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초원지대는 다시 번성했는데, 이것은 9세기의 짧은 건조기를 제외하고 13세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칭기즈칸이 등장하는 12세기 중반부터 사이클론의 경로가 바뀌면서 대초원지대는 건조 기후시기에 들어갔다. 참고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건조시기이다.

2세기 한나라와 흉노의 치열한 대결이 전개되다가 흉노가 쇠퇴하거나 서쪽으로 이동한 것은 한나라의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스텝지역의 건조화가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13세기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족이 전무후무한 세계 정복 전쟁을 시작했던 이유도 이러한 대초원지대의 건조화와 다습화의 기후변화가 생존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2014년에 미국 과학 아카데미가 몽골에 가서 나무의 나이테를 연구해서, 몽골 제국의 세계정복도 날씨 덕을 톡톡히 봤다고 밝혔다. 1162년생으로 추정되는 칭기즈칸이 한참 떠오르던 1180년부터 1190년사이에 몽골고원에는 극심한 가뭄이 왔다. 그가 전세계를 정복하러 다니던 1211년부터 1225년까지는 몽골고원에 비가 유난히 많이 오고 온도도 올라갔다. 극도의 혼란속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칭기즈칸이 성장하고 또 군대를 양성하고 세계를 정복하는데 기후변화가 칭기즈칸의 나이와 세력에 맞추어 그과 몽골제국이 성장할 수 있는 결정적인 환경이 되어주었다. 몽골비사는 칭기즈칸이 태어나기 전 가뭄에 찌든 몽골고원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별이 있는 하늘은 돌고 있었다. 여러 나라가 싸우고 있었다.

제자리에 들지 아니하고 서로 빼앗고 있었다.

흙이 있는 대지는 뒤집히고 있었다.

극심한 가뭄이 있었던 1180년부터 1190년은 징기스칸이 18살에서 28살 사이의 시기인데, 이 시기에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이용하여 20대의 테무친은 자기 세력을 결집하고, 27세때였던 1189년에는 발주나 호수의 맹약으로 테무친 세력이 탄생하였다. 이후 습기가 높아지고 풀이 잘 자라나서 말을 키우기 좋았던 시기인 1211년부터 1225년사이에 징기스칸은 금나라의 화북지역과 호레즘의 중앙아시아를 정복한다. 칭기즈칸은 기후 운발이 좋아 칭기즈칸이 된 것이다.

유목제국의 흥망성쇠 뒤에는 초원의 기후변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초원의 가뭄과 자연재해는 유목민들에게 생존을 위한 가열찬 투쟁을 강요했을 것이고 유목제국의 팽창과 쇠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좁은 땅덩어리의 경쟁력

작년 여름에 몽골 여행을 다녀왔다. 1Km2에 500명이 넘게 살고 있는 한국에 반해 몽골은 한두명 살고 있는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이다. 광활한 대지와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다른 별나라에 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땅덩어리가 큰 나라를 다니면서 부럽기도 하고 작은 나라에 태어난 게 속상하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좁은 땅덩어리, 세계 최고수준의 인구밀도로 한국의 생존경쟁은 어떤 나라보다 치열해서 한국인의 걸음걸이 속도도 세계최고 수준이다.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선 서울.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선 서울.

하지만 땅덩어리가 좁아서 생기는 경쟁력도 있다. 우리회사의 한국고객들 90%는 한시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있다. 미국, 중국, 일본의 경쟁사들은 하루에 고객사 두세군데 밖에 방문하지 못하는데, 우리는 대여섯개의 고객사를 하루에 방문할 수 있다. 미국, 중국,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은 공장, 협력 업체들간 거리가 수백km, 수천km 떨어져 있어 같은 회사사람들 조차도 서로 얼굴보기가 쉽지 않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중대한 사안이 발생하면 바로 당일에 모여서 회의를 할 수 있지만, 땅덩어리 큰 나라의 반도체 기업들은 얼굴보고 회의하려면 몇 주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반도체 장비가 고장이 나면 한국에서는 한밤중에도 장비 엔지니어가 달려와 문제를 해결하지만, 미국, 중국에서는 장비 엔지니어가 올때까지 일주일 이상 장비를 세워두고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에서 쇼핑을 할 때나 서비스가 필요할 때도 한국과 같이 가까운 곳에서 편리하게 상품과 서비스를 찾을 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다. 몇 걸음 나가면 즐비한 동네 식당과 가게들은 땅덩어리 큰 나라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들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반도체 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지만, 땅덩어리가 넓으니 국토 균형발전 차원에서 반도체 공장을 여러 곳에 나누어 짓고 있다. 이렇게 반도체 기업들이 지역별로 분산되어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힘들고 반도체 생태계 구축도 결코 쉽지 않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기남부에 구축한 반도체 생태계를 중국에서 따라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수도권 집값이 폭등을 하는데도 왜 사람들은 수도권으로 계속 몰려들까? 최근에 제프리 웨스트라는 복잡계를 연구하는 학자가 '스케일'이라는 책을 냈다. 도시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날 때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어 필요한 도로, 전선, 가스관, 주유소 등 기반시설의 양은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85%만 증가한다. 독감 환자나 범죄 건수, 오염 같은 부정적 지표도 비슷하게 늘어나지만, 도시가 더 클수록 혁신적인 '사회적 자본'이 더 많이 창출된다. 그 결과 도시의 시민들은 더 많은 상품, 자원, 아이디어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은 전세계 어떤 도시 못지않게 세련된 도시이다. 요즘 미국, 유럽의 대도시를 가면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방탄소년단도 서울의 세련된 문화적 토양을 바탕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국가간 경쟁에 주로 관심을 두지만 메트로폴리탄 대 메트로폴리탄의 경쟁도 중요하다. 서울 메트로폴리탄은 상해, 실리콘밸리, 도쿄 메트로폴리탄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국 100대 기업 영업이익의 40%를 차지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좁은 지역에 모여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라 생각한다. 땅덩어리 크고 인구 많은 나라들을 두려워만 할 필요가 없다.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대세인 이 시대에 비좁은 한반도와 높은 인구밀도가 우리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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