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대비 생산 라인 투자액 5배… 납품 기간 10년 발목

초기 자동차 업계가 전장 부품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원가 절감을 위해서였다. 




이전까지 자동차 업계는 각 업체마다 별도 공급망(Supply chain)을 구축, 신차 모델마다 부품 하나하나를 일일이 설계, 조달했다. 여러 부품을 전장 모듈로 대체, 범용화하고, 전선으로 연결만 하면 생산비용을 줄이면서 출시 주기도 앞당길 수 있었다.


부품을 범용화하면 시장에서 이를 공급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단가도 자연스럽게 하락한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전장부품도 예외는 아니다. 


일례로 어라운드뷰모니터링(AVM) 시스템용 카메라 모듈 단가는 3년 전 3만5000원에서 최근 3만원 아래로 떨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AVM 카메라 모듈 단가의 손익분기점(BEP)은 3만원이다. 



고부가 시장 진입 망설이는 이유, 투자



사례 3. 카메라 모듈 업체 B사는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용 카메라 모듈 전용 라인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다 결국 중단했다. 설비 가격이 모바일용 카메라 모듈 생산 설비보다 4배 이상 비쌌기 때문이다.



‘범용화’의 늪에서 자유로운 부품도 있다. 아직 범용화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대차량통신(V2X) 등 자율주행 관련 시스템이다. 


자율주행 시스템은 향후 AVM이나 오디오비디오내비게이션(AVN) 등 현재 차량에 적용되는 전장 부품을 흡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각 완성차 업체들은 부품 업체, IT 업체들과 자율주행 시스템을 연구개발(R&D)하면서 동시에 공급망을 구성하고 있다. 아직 기술이 완성되지 않았고, 안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 시장의 품질 기준은 보다 엄격하다. 


먼저 설계 소프트웨어(SW)에서부터 각종 부분품, 표면실장(SMT)부터 조립까지 모든 생산 설비를 각 완성차 업체나 1차 협력사가 요구하는대로 구축해야하는데, 업계에 따르면 전체 투자 비용이 모바일 대비 다섯배는 더 필요하다. 


또 전장 부품은 하드웨어에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결합, 솔루션으로 납품하는 체제라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추거나 관련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업체와 협력해야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일례로 세계 ADAS 솔루션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모빌아이와 협력하기 위해서는 모빌아이가 제시한 기준서대로 생산부터 조립, 사후 관리까지 모든 체계를 갖춰야 한다. 관련 테스트 결과도 전부 보고해야하는데, 원하는 성능(spec) 기준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진행하기 때문에 밑빠진 독에 물붓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공급 여부도 불투명한데 선뜻 막대한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연구개발 비용과 기간까지 고려하면 결국 자금력이 부족한 업체들은 자동차 시장에 진입하기도, 규모를 키우기도 어렵다.



납품 기간 10년 보장, 득일까 실일까?



모바일 업계가 자동차 시장의 장점으로 꼽는 것 중 하나는 ‘꾸준한 이익’이다. 최소 10년 이상 납품을 보장하기 때문에 한 번 수주하면 10년 간은 수익이 난다는 얘기다.


모바일 시장에서는 6개월, 1년 주기로 부품 협력사를 선정하고, 납품 기간은 보통 2년으로 잡는다. 대부분의 업체는 이에 해당하는 물량을 미리 만들어놓고 투자비를 회수, 또다시 차기작에 대한 투자를 집행한다. 때문에 부채비율이 낮은 편이고, 


물량이 줄어들거나 수주에 실패하면 타격이 크지만, 그만큼 빠르게 실적을 회복할 수 있다.


반면 자동차 시장에서 투자비 회수는 3년 후부터다. 어느 부품에서 언제 문제가 생겨 리콜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바일 시장에서처럼 미리 제품을 만들고 생산 라인을 바꾸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납품 기간 내내 기존 설비를 유지보수하거나 보완해야해 꾸준히 비용이 들어가고, 새로운 투자도 준비해야한다. 


이 같은 차이는 자동차 업계와 모바일 업계의 재무 상태를 봐도 알 수 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협력업체 5개사 현금흐름 추이,/전자공시시스템, KIPOST 취합


먼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협력업체 5개사의 현금흐름을 살펴보자. 파란색 네모 안에 든 숫자를 보면 투자활동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뒤 1~2분기 내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개선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투자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설비나 유가증권 등 유무형 자산을 취득하거나 처분했을 때 발생한다. 설비투자를 하면 현금이 유출(-)되고, 이를 갚으면 현금이 유입(+)된다고 본다.


즉, 설비 투자를 집행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을 가동, 제품을 판매했다는 뜻이다. 


▲현대기아차 협력업체 5개사 현금흐름 추이,/전자공시시스템, KIPOST 취합


반면 현대기아차 협력사 5개 업체의 현금흐름은 다르다. 먼저 지난해 1분기 만도를 제외하고서는 5개사 중 영업활동에서 단 한번도 마이너스를 낸 곳이 없다. 기존 제품에 대한 수익이 꾸준히 나오기 때문이다. 


5곳 모두 매 분기 투자 활동에 현금을 썼다. 에스엘을 제외한 4개사는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가장 좋았을 때 투자 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출이 가장 많았다. 기존 설비 유지보수와 가동에 드는 금액, 여기에 신규 설비 투자로 인한 금액이 추가되면서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1차 협력사 5곳(상단) 및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 5곳(하단)의 부채 비율 비교./전자공시시스템, KIPOST 취합


당기 순익과 부채 비율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모바일 업체 중에서는 3개사가, 자동차 업체 중에서는 단 1개사만 부채 비율이 100% 아래다. 


모바일 업체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를 집행하더라도 빠르게 이를 상환할 수 있어 자금의 순환이 빠른 반면, 자동차 부품 업계는 투자액도 클 뿐더러 투자금 회수 기간도 길기 때문이다.



모바일보다 오히려 리스크 클수도



결과적으로 자금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나 신생업체는 자동차 시장보다 모바일 시장의 리스크가 더 적을 수 있다. 은행에서 자본을 조달, 투자한 뒤 1~2분기 후면 매출이 돌아오기 때문에 빠르게 대출을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LG이노텍, 파트론 등 후발주자가 빠르게 자동차 시장에 진입, 엠씨넥스, 세코닉스 등 선발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투자를 망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납품하기까지 5년, 투자비 회수는 그보다 3년이 더 걸리고, 투자 규모는 모바일보다 더 크다”며 “위험 부담이 크다보니 자동차 시장에 안착한 IT부품 업체들조차 ADAS 등에 대한 투자를 망설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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