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TE 제재 사례 통해 보면 가능성 낮아

지난달 29일 미국 상무부가 중국 푸젠진화반도체(JHICC)를 수출금지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이 회사가 추진해온 D램 반도체 라인 건설 프로젝트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동안 파일럿 라인에 발주했던 대부분의 전공정 장비가 미국산인 탓에 더 이상 설비투자를 진행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특별승인(Special License)을 얻으면 JHICC에 장비를 수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업계서는 사실상 수출 전면 금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중국 JHICC를 수출금지 대상에 올림에 따라 미국 반도체 장비사들이 현장에서 철수하고 있다. 사진은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된 웨이퍼(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보쉬 제공
미국 상무부가 중국 JHICC를 수출금지 대상에 올림에 따라 미국 반도체 장비사들이 현장에서 철수하고 있다. 사진은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된 웨이퍼(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보쉬 제공

 

팹 인력 즉각 철수...상무부 재수출 금지에 따라 반사이익 없어

 

7일 업계에 따르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KLA텐코⋅램리서치 등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지난달 29일 미국 상무부 조치가 나온 직후 JHICC의 진장 반도체 라인 구축 현장에서 철수했다. 이에 따라 진장에 머무르며 장비 셋업 작업에 투입됐던 엔지니어 인력들도 서비스를 중단한 채 곧장 팹(Fab)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31일에는 대만의 반도체업체 UMC가 JHICC와의 기술협력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UMC는 지난 2016년부터 JHICC와 32나노미터(nm)급 D램 기술협력을 진행해왔다. 미국 상무부의 조치로 JHICC는 장비 수급은 물론, 기술 전수까지 ‘반도체 굴기’에 필요한 모든 길이 막혔다.

일각에는 미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빈 자리를 국내 장비사들이 채우면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이 자국 수출입 제한 조치를 타 국가까지 직간접적으로 동참케 한 관례를 보면 이 같은 기대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

전략물자 수출입 업무를 관리하는 한국전략물자관리원 관계자는 KIPOST와의 통화에서 “국내 반도체 장비사가 JHICC와 거래할 경우 곧장 미국 정부의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된다”며 “향후 미국 입국이나 미국 은행 이용 등이 불가능해 지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국내서 제작된 장비라 할지라도 내부에 사용된 소프트웨어나 부품⋅기술 등에 미국산이 포함된 경우, 이는 미국산 제품의 ‘재수출’로 간주되어 즉각 제재 대상이다.

중국 ZTE는 지난해 미국산 부품이 포함된 통신장비를 이란, 북한에 수출했다가 12억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ZTE 제공
중국 ZTE는 지난해 미국산 부품이 포함된 통신장비를 이란, 북한에 수출했다가 12억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ZTE 제공

지난해 3월 중국 ZTE는 미국 상무부로부터 12억달러 규모의 벌금을 부과받았는데, 당시 적용된 혐의가 재수출이다. ZTE가 미국산 소프트웨어⋅부품⋅기술 등이 일부 포함된 제품을 이란(251회), 북한(283회)에 각각 수출했다는 것이다. 완제품이 ZTE 제품이었다 할지라도 내부에 미국산이 섞여 있을 경우 제재를 피할 수 없다.

국내 반도체 장비 역시 핵심 모듈은 상당 부분 미국산 소프트웨어⋅부품⋅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실제 제재가 이뤄질 경우, 최소편입비율을 따져 완제품 안에 미국산 비율이 10~25%를 넘는지를 평가한다. 그러나 설사 최소편입비율 조건을 만족한다고 해도 향후 미국 정부의 모니터링 대상에 등재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한 반도체 장비 업체 대표는 “세계 경제는 물론, 반도체 산업 전체에서 미국의 입김이 워낙 크기 때문에 미국 행정부의 조치는 국내법처럼 따를 수 밖에 없다”며 “회사가 모니터링 대상에만 올라도 향후 사업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JHICC 반도체 굴기 사실상 좌절
 

이 때문에 국내 장비 업체들의 반사이익은 물론이고, 이미 수주를 확정한 장비사들도 실제 납품까지 이뤄지기는 한동안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다행히 JHICC가 발주한 반도체 장비 중 국내 업체가 수주한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PSK가 식각장비 2종을, 원익IPS가 박막증착장비 1종을 각각 수주했다. GST는 플라즈마 스크러버를 수주했다. JHICC의 발주가 파일럿 라인 수준이라 피해 금액은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서는 미국과 중국간 무역분쟁이 해소되더라도 JHICC에 대한 상무부 제재가 해제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가 JHICC가 양산 목표로 삼고 있는 스페셜티 D램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스페셜티 D램의 일종인 서버용 D램 모듈. /KIPOST
스페셜티 D램의 일종인 서버용 D램 모듈. /KIPOST

스페셜티 D램은 서버용 D램, 그래픽 D램, 모바일 D램, 컨슈머 D램 등 4가지 제품을 말한다. 일반 PC용 D램에 비해 가격이 40~60% 정도 가격이 높은데, 일부는 국방용으로도 사용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반도체 3사 가운데 JHICC가 유일하게 제재 대상에 올랐다는 것은 미국 정부가 통상 이외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JHICC에 대한 미국 제재가 단기간에 풀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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