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동안 자동차는 파워트레인·새시·차체·시트 등 기본 구조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자동차 브랜드들은 큰 시장 변화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정보기술(IT)가 자동차에 이식되면서 기존 산업 구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이 기존 휴대폰 산업을 바꿔놓은 것처럼 자동차의 IT화는 자동차 산업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다. 특히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비상은 시장 변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 Model 시리즈/ 자료: 테슬라모터스 제공

 

자동차와 IT융합은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경쟁 구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기존 자동차 업체들은 IT 기업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스마트폰 시대에 사라진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테슬라 전기차 S는 대용량 배터리로 장거리 운행이 가능하고, 태양광으로 충전할 수 있는 등 혁신적 기술을 도입했다. 대형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 자율 주행을 위한 센서, 안전을 위한 첨단 전장 부품도 다수 탑재했다. 자동차 업체가 탑승자 편의와 안전성을 높이려면 전장 부품 채택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 자동차 전장 부품은 2012년 210조원에서 2020년에는 34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료: 전자부품연구원 제공

 

 

차량 IT의 꽃,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ADAS

 

자동차와 IT가 융합되면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가 바로 인포테인먼트시스템과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이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1990년대까지 주로 단순 음향 기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디스플레이를 사용한 내비게이션이 적용되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최근 자동차에 대화면 고화질 디스플레이가 탑재되고, 내·외부를 연결하기 위한 커넥티비티 장치가 잇따라 적용되고 있다.

 

ADAS는 카메라·레이더·초음파 등 각종 센서들을 이용해 주행이나 주차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을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초기에는 운전자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기능에 그쳤지만, 지금은 운전자를 대신해 부분적으로 제동 및 조향까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ADAS는 향후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량 전장화로 가장 큰 수혜를 보는 업종은 반도체다. 카메라 영상 정보를 처리하고, 대용량 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프로세서뿐 아니라 메모리·센서·고주파(RF) 통신 칩 등 관련 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레티지애널리틱스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지난 2013년 275억 달러에서 2021년 41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 시장은 이미 글로벌 IT 기업의 전쟁터

 

자동차의 IT화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일각에서는 구글·애플 등 IT기업들이 향후 자동차 산업 헤게모니를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모바일 AP를 제작하던 업체들은 최근 자동차 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 초 열린 라스베이거스가전쇼(CES)2015에서는 엔비디아·퀄컴·인텔 등 주요 모바일 AP 업체들이 자동차 솔루션을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특히 엔비디아는 기존 주력 제품인 컴퓨터 그래픽 솔루션을 배제하고 차량용 AP만 전시했다. 향후 자사 성장 전략이 자동차쪽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현재 엔비디아는 테슬라 전기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AP를 공급하고 있다.

 

그동안 자동차 시장 진출에 소극적이었던 삼성도 그룹 차원에서 전장 사업을 적극 키우고 있다. LG그룹은 LG전자·LG이노텍·LG화학·LG디스플레이 등 IT 계열사를 중심으로 전기차 소재·부품 수직계열화를 추진 중이다.

  

▲지능형 운전자지원 시스템(ADAS) / 자료: 콘티넨탈 제공

 

 

IT 기업의 자동차 시장 진출....매력적이지만, 가시도 많다

 

IT 기업들의 자동차 시장 공략이 잇따르고 있지만, 당장 주도권을 가져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산업은 전자·IT 업체들이 적응하기 어려운 고유의 특성이 있다. 모바일은 용량이 제한적인 소형 배터리를 사용하고, 좁은 공간 안에서 AP가 원활하게 동작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모바일 AP를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저전력·저발열이다.

 

그러나 자동차는 가혹한 외부 환경에서도 오랫 동안 오작동 없이 쓸 수 있는 내구성·신뢰성·안정성이 더 중요하다. 스마트폰은 주로 양호한 환경에서 쓰지만, 자동차는 거친 외부 환경에 노출된다. 최저 영하 30도에서 최고 50도에 이르는 극한 환경에서도 자동차는 정상적으로 작동돼야 한다.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은 날씨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전장 부품은 안전과 연관성이 높아 운행 중 잠시라도 중단되면 안 된다. 모바일에 비해 시스템 개발과 테스트 기간이 훨씬 긴 것도 자동차 산업의 특징이다.

 

소비자 사용 패턴에도 차이가 있다. 스마트폰은 통상 2년 사용하지만, 자동차는 10년 이상 쓴다. 반도체 업체로서는 AP를 지속적으로 관리 및 업그레이드 하는 어려움이 있다. 모바일 AP는 매년 새로운 모델이 나올 정도로 신제품 주기가 짧다. 그러나 자동차는 개발에만 2년 이상 걸린다. 신형 AP를 적용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개발하고 출시하면 이미 구식이 돼 버릴 위험도 상존한다. 자동차 생산 기간과 애프터 서비스 기간 동안 AP를 공급해야 하는 것은 칩 업체에 상당한 부담이다.

 

아직 인포테인먼트 기기들이 고성능의 프로세서를 필요로 할 정도로 사양이 높지 않고, 외부 통신 연결을 위한 텔레매틱스를 장착한 차량도 많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모바일AP가 단기간에 자동차에 크게 확산되기도 쉽지 않다. 현재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AP의 동작 속도는 2~2.5GHz 수준이다. 반면 테슬라 S에 쓰이는 AP 테그라3 동작 속도는 아직 1.6GHz 수준에 불과하다.

 

디스플레이 해상도도 스마트폰은 풀HD를 넘어 QHD에 이른다. 하지만 자동차용 인포테인먼트 기기는 아직 VGA, HD급에 불과하다. 통신도 스마트폰은 롱텀에벌루션(LTE)을 지나 5G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자동차용 텔레매틱스는 최근 들어 LTE 서비스가 시작된 상황이다.

  

▲ 자료: 테슬라모터스 제공

 

 

자동차 부품 업체들, 인수합병(M&A)으로 전장 기술 보완

 

기존 자동차 부품 업체들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장 업체들을 인수하는 등 시장 트렌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타이어·새시 등 기계 부품을 주로 생산해온 독일 컨티넨탈은 지난 2006년 모토로라 차량 전장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텔레매틱스 기술을 확보했다. 2007년에는 지멘스 전장부품 사업부 지멘스VDO를 인수해 기술력을 한층 강화했다. ADAS와 자율주행을 위한 센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11년 마그나 레이더 사업부를 인수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ASL비전을 인수해 차세대 차량 센서 기술을 갖췄다.

 

엔진 피스톤 부품 제조 업체 말레도 지난해 9월 유럽 전장 부품 업체 레트리카를 인수해 자동차용 모터 기술을 확보했다. 일본 파나소닉은 스페인 피코사 지분 49%를 인수해 전장 카메라 솔루션을 강화했다. 피코사는 영상인식과 센서 기술을 접목해 독자적인 ADAS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 스미토모전기는 독일 REMA와 합작사를 만들어 유럽과 미국 전기차 충전에 주로 쓰이는 콤보형 커넥터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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