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개선도, 재취업 금지 조항도 무용지물

# 국내 반도체 설계(Fabless) 업체 A사는 한 반도체 대기업과 공동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가 뼈아픈 경험을 했다. R&D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핵심 인력 9명이 한번에 해당 기업으로 이직한 데 이어 프로젝트마저 무산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이 대규모 인력 채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인재 수급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인력 유출의 가능성이 커져서다.


최근 국내 팹리스 B사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채용 계획이 발표된 후 인력 이탈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동종업계 재취업 및 창업 금지 규정을 도입하기 위한 절차를 밟는 한편 복지나 근무 환경, 처우 등의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B사 대표는 “대기업은 물론 네이버·다음 등 타 IT기업들도 반도체 인력을 모집하면서 인력 수급과 인력 유출 문제가 업계 최대의 화두가 됐다”며 “다른 업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움직임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 정도의 처우를 해주기는 어렵고, 재취업 금지 조항으로 이직을 막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장비 업체 C사 대표는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게 일종의 수순이라 조항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며 “재취업 금지 조항도 시간이 지나면 무효가 되는데다, 이직이 어렵다고 하면 우수 인재 수급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력을 빼간 곳이 고객사라는 것도 문제다. 실제 앞서 사례에서 핵심 인력 3분의1을 대기업에 빼앗긴 A사는 인력 수급 문제에 시달리거나 고객사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우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A사 대표는 “법적 대응에 필요한 시간이나 비용도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걸리는 것은 해당 기업이 고객사라는 것”이라며 “만약 법적으로 문제를 삼아 일을 키우면  거래는 물론 추후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미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여야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직원 평균 연봉은 약 1억1700만원, SK하이닉스 직원 평균 연봉은 약 8498만원이다. 팹리스 업계에서 중견급으로 분류되는 텔레칩스(7311만원)나 티엘아이(5600만원)보다 1000만원 이상 높다. 


C사 인사 담당자는 “대기업 인력 투자 계획이 발표된 후 현장 인력들의 마음은 이미 붕 떠있다”며 “올해는 인력 이탈을 감안, 대기업보다 일찍 채용 공고를 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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