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여간 메모리 호황은 생태계의 '뉴 패러다임'까지 불러오고 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자동차 등 전방 시장의 고성장세는 메모리 업계에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양산 경쟁력에 기반해 가격을 무기로 치킨게임을 벌이던 시대에서 전방 IT 업계가 원하는 스펙의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 성능 경쟁력이 주요해졌다.

이에 따른 승자독식, 반도체 공급망 고착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그 핵심 동인은 이른바 '블랙박스' 전략이다. 첨단 기술 기업은 신기술을 개발해도 특허를 출원하지 않고 시장에서 지배력을 가지려는 블랙박스 전략을 사용하곤 하는데, 삼성전자를 필두로 이 전략은 더욱 가속화 하고 있다. 

메모리 시장 환경의 변화와 생태계에 미치는 파장, 올해 글로벌 메모리 업계의 투자 동향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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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고대역폭 메모리(HBM)2. /삼성전자 제공

 

전방 시장으로부터 성능 개선 압력 

 

D램과 낸드플래시 호황은 전방 시장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생겼다. 특히 삼성전자 D램은 생산하는 즉시 예정된 구매처로 출하된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와 애플, 화웨이 등 스마트폰 업체나 구글이나 아마존 등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2년 앞서 D램을 선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가 삼성 D램을 미리 확보하려는 이유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삼성, D램 투자는 계속된다… 프리미엄 D램 전성시대 참조)

전방 시장으로부터의 압박은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라는 게 아니라 성능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더욱 응답속도가 빠르고 소비전력은 적되 칩 단위 면적당 용량은 큰 메모리가 필요하다.

삼성은 2년 내에 고객사가 요구하는 스펙에 맞춰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급박한 일정에 쫓기면서 목표 달성을 하는 방법은 연구개발(R&D)과 공정 투자를 효율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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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업계가 요구하는 D램 성능. 메모리 업계는 오는 2020년까지 데이터 전송속도가 6000Mbps를 상회하는 D램을 생산해야 한다. /KIPOST

3D 낸드플래시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서버 업체들은 최저 전력소모량, 최고 응답속도를 내는 16TB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찾는다. 삼성전자는 SSD 컨트롤러는 자사 시스템LSI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술을 응용하고, LPDDR4 모바일 D램을 적용해 응답속도를 높였다.

올해부터는 32TB SSD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실제로 양산 가능한 기술을 보유한 곳은 삼성전자 외에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기준 모바일 D램 시장에서 점유율 53%를, 낸드플래시는 37.2%를 기록했다. 낸드플래시 중 3D낸드만 놓고 봤을 때 삼성 점유율은 50% 이상이다. 이변이 없는 한 이 점유율이 고착화 되거나, 삼성전자의 지분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실패 없는 R&D를 위해, 공동개발프로젝트(JDP) 가속화

 

R&D에 속도를 내야 하는 삼성전자는 핵심 장비와 소재 개발을 대부분 공동개발프로젝트(JDP, Joint Development Project) 방식으로 진행한다. JDP는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이 공동으로 기술 개발을 하고, 수요기업은 그 기술을 일정 기간 독점 사용하는 사업 형태다. 

주로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TEL), KLA-텐코 등 글로벌 대기업 장비사가 JDP 파트너로 포진했다. 실패 없는 R&D를 위해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자본력을 가진 업체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국내 업체 중 규모와 기술력이 수준급인 세메스, 원익IPS 등에는 아예 지분을 보유하면서 종속도를 높였다. 

장비와 소재는 불가분의 관계다. 이 때문에 산업 생태계 내에서 글로벌 장비사와 소재 대기업들의 비중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는 특히 기술 장벽이 커 장비와 소재의 상향 쏠림현상이 심하다”며 “R&D 비용이 상승하고 있어 신기술을 제안할 수 있는 회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 카피율, 30% 이하로

 

상향 쏠림 현상은 메모리 업체와 장비⋅소재 업계간에도 나타난다. 기술 주도권이 장비, 소재 업체가 아닌 공동개발사 삼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공정 카피율도 예전 70~80%에서 30% 이하로 대폭 축소됐다. 

A사 양산 라인과 동일한 장비와 설비를 B사가 구매해 공정을 꾸렸을 때 양사의 공정이 얼마나 유사한가를 나타내는 지표가 공정 카피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식적인 집계 자료는 없지만 공정 복제 가능성이 많이 줄었다는 점은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삼성은 외주화 하지 않는 기술이 많다. 회로 패턴 형성 공정인 포토(노광) 공정 장비  스캐너(이머전, EUV 등)는 ASML이 공급하지만 패턴을 형성해주는 틀인 마스크(레티클)는 삼성이 직접 개발한다. 패턴이 새겨지기 전 백지 상태와 같은 블랭크마스크만 공급 받아 패턴을 직접 새긴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업체들이 여러 협력사가 포함된 마스크샵(Mask shop)에서 마스크를 구매하는 것과는 다르다.  

마스크를 직접 개발하기 때문에 검사(Inspection) 장비도 직접 연구한다. EUV 마스크용 검사 장비는 레이저텍 등과 공동 개발하고 있다. 

D램과 3D낸드플래시용 증착, 식각 장비 역시 삼성 공정에 최적화 한다. 업계 관계자는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 등이 장비를 공급하기는 하지만 삼성이 거의 재제작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장비 내 핵심 부품과 테스트용 센서 등은 대부분 주문제작(커스터마이징)한다. 

소재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지난 연말 양산하기 시작한 1y(16)나노 D램에는 ‘로 DK(Low-DK)’라는 공정이 쓰인다. 유전률이 공기처럼 거의 ‘0’에 수렴하는 특수 금속 배합 소재를 이용한 것으로 추측될 뿐 정확한 레시피는 공개되지 않는다. 

이는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측면도 있지만 직접 개발하는 게 효율적이기도 하다. 반도체 설계가 바뀌면 장비 세팅이 바뀌고, 장비 세팅이 바뀌면 소재도 달라진다. 역으로 소재 하나를 교체하면 전체 공정 세팅을 다시 해야 한다. 전체 공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야 하는데, 개별 협력사가 이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 공급망의 문턱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메모리 뉴 패러다임] ②성역화 되는 생태계…촉박한 한국 업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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