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가 당초 계획과 달리 반도체 사업부 지분을 최대 100%까지 매각에 나서면서 잠재 인수 후보군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인수대금이 기존 3조원 안팎에서 최고 25조원으로 치솟은 탓에 선뜻 인수에 나서기가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인수대금만 놓고 보면 현금동원능력이 월등한 중화권 업체들의 인수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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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 낸드플래시 공장.(사진=도시바)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부 경영권을 내놓게 된 것은 원자력 발전소 건설 관련 손실이 예상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6일 아사히⋅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도시바의 원전 부문 손실액은 7000억엔, 우리돈 7조1000억원에 달한다. 당초 도시바는 3조~4조원 정도의 현금을 확보하면 원전 사업 손실을 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어떤 유력업체도 단독 입찰 어려워

따라서 도시바가 지분 50% 이상 매각이라는 원칙을 내놨지만, 최대한 많은 지분을 가져가려는 쪽이 최종 인수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경영권까지 내놓기로 한 마당에 도시바가 소수 지분을 지킬 명분이 없다.

업계서 추정한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지분 100%의 가치는 20조원 정도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더한 가치는 25조원 안팎에 달한다. 지분 50%의 가치만도 최소 10조원은 넘는다는 계산이다.

이 때문에 어떤 후보자도 단독으로 인수하기는 어려운 규모의 딜이 됐다. SK하이닉스 보유현금은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4조원 안팎, 미국 마이크론 역시 42억달러(4조8560억원)를 보유하고 있지만 차입금 규모가 96억달러다. 역시 유력한 후보인 대만 혼하이정밀(폭스콘) 역시 순현금 규모는 13조원 정도다.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 TSMC도 14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둘 다 단독 입찰은 힘들다.

SK하이닉스가 생산한 낸드플래시. (사진=SK하이닉스)

애플⋅마이크로소프트는 원화 기준 191조원⋅45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나 실제 인수를 추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2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수 금액에 비해 사업 시너지 효과가 미지수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인텔 역시 인수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실제 인수에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며 “도시바와 합작 파트너인 웨스턴디지털(WD)이 SSD 시장에서 인텔과 경쟁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K-폭스콘 연합군 뜰까

이 때문에 최소 2개 이상의 후보군이 연합을 이뤄 응찰하는 쪽으로 가능성이 기울고 있다. 예컨대 혼하이정밀과 SK하이닉스, 재무적 투자자가 끼어 3자가 공동 인수하는 방식이 나올 수 있다.

이는 그동안 혼하이정밀과 SK그룹 간의 돈독했던 관계 덕분에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2014년 혼하이정밀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 C&C 보유 지분 4.9%를 인수했다. 2015년에는 SK C&C와 혼하이정밀이 IT서비스 합작사인 FSK홀딩스를 설립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이 출시한 스마트폰 ‘루나’의 생산은 혼하이정밀이 담당한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 경험이 없는 혼하이정밀 입장에서는 인수 후 머리를 맞댈 파트너가 필요한데 SK하이닉스가 이런 측면에서 적임자다.

궈 타이밍 대만 혼하이정밀 회장.(사진=혼하이정밀)

같은 이유로 TSMC와 다른 재무적 투자자와의 연합군 결성도 가능하다. 오랜 파운드리 사업에서 쌓은 제조 경험을 바탕으로 낸드플래시 사업에 진출한다면 TSMC가 조기에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떠오를 수도 있다.

물론 이 같은 시나리오는 일본 정부가 도시바 지분 해외 매각을 허용한다는 가정 하에 나온 것이다. 첨단 기술 해외 유출을 우려해 외국 자본 인수를 막는다면, 딜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마땅한 인수 주체가 없어서 일본 정부가 떠안았던 재팬디스플레이(JDI)와 달리 반도체 기술은 끝까지 지키려 할 가능성도 있다”며 “그럴 경우 딜이 장기화하거나 일본 내 업체들 사이에서 지분을 쪼개서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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