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는 흔치 않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고난이도, 최신 공정을 보유한 반도체 기업들이 포진해있지만 그동안 국내 학계나 산업계 종사자는 해외 학회나 전시회 등에서 주로 기술과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KSDT, 이하 반디학회)가 앞으로 한국을 산업뿐만 아니라 미래기술 개발의 전진 기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놨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눈이 한국으로 쏠리는 이 시점이 가장 적기다. 


박재근 신임 반디학회장은 2일 취임 인터뷰에서 “올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장치, 재료, 부품 업계의 환경 및 수요 조사를 진행하고 내년에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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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신임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KIPOST

 

반디학회는 지난 2002년 설립됐지만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반도체 분야가 워낙 광범위한 전공을 필요로 하는데다 국제적인 학회가 주로 미국에서 열려 학계 전문가 대부분이 해외 학회에 주로 참석한 탓이다. 또 산업계는 중소기업이 주축이다보니 미래 기술보다는 당장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에 치중해 학회로서 기능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로 인력양성을 위한 연 2회(춘⋅추계) 학술대회 개최 수준에 머물렀다. 


학회는 올해부터는 국내 연구진과 산업 인프라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목표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1위 반도체 위상에 맞는 미래 기술 확보다. 구체적으로는 ‘국산화’를 넘어 ‘글로벌화’를 위한 기반 조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우선 글로벌화를 위한 수요 및 환경 조사를 통해 생태계 분석안을 내놓기로 했다. 왜 한국 반도체 공급망 기업들은 글로벌 수준이 되지 못했는가, 글로벌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심층 조사를 한다.기술적인 난제, 현재 우리 수준, 우리의 전략분야, 장기적인 개발의 당위성 등을 분석해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와 산하 연구소, 대기업 등이 생태계 전략을 짤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박재근 학회장은 “지금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개발환경이 변했다”며 “추격자(중국)와 기술 격차를 벌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장비, 재료, 부품 수준도 선도형(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발전이 너무 빨라 소자 기업은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 램리서치, TEL, KLA-텐코 등 글로벌 대기업과 주로 공동개발파트너(JDP) 계약을 맺고 기술 개발을 한다. 국내 업계가 현재 또는 차기 기술에만 머무르다 미래 기술을 먼저 선점하지 못하면 산업계 전반이 고사할 가능성도 있다. 


국제학회를 개최하려는 것도 국내 기술 생태계 지원, 발전 목적이 크다. 박 학회장은 “국제적인 명사를 초청하고, 영어 발표를 지원하는 행사가 필요하다”며 “국내 인력 양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전문가와 각국의 기술 및 생태계 현황에 대해 공유하는 자리를 통해 추격자 대처하는 나름의 방안을 찾기도 쉽다.


반디학회는 연간 2회 학술대회를 하고 연간 4회에 걸쳐 논문 150편을 담은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을 펴내는 등 국제화 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공정, 장비, 재료, 부품의 세부 분야에 특화된 소규모 학회를 개최하는 것도 논의하고 있다. 실제 기업을 찾아가 기술을 공유하는 '찾아가는 반도체 기술포럼'도 확대할 예정이다.   


그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넘버원이지만 주로 박사급 연구원을 필요로 하고, 난이도가 높아 학생들이 기피하는 분야”라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등 차세대 기술도 반도체 설계가 필수”라며 정부와 대기업들이 학계와 연구소에 많은 투자를 해줄 것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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