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년 전 SK하이닉스의 개발 관련  고위 임원은 “3D 낸드플래시는 전자 누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낸드플래시 기술의 미세화가 좀 더 진행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2016년, 전세계 낸드플래시 제조사 대부분이 3D낸드를 양산하거나 양산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초로 ‘V낸드’를 양산하던 지난 2013년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삼성전자는 2013년 비트그로스가 약 50% 증가할 것으로, SK하이닉스 등 다른 업체들은 40% 초반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과감한 예측으로 선제투자를 단행한 삼성전자와 경쟁 업체들의 명함은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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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1TB BGA 타입 SSD. /삼성전자 제공 

 


40%씩 증가하는 비트그로스, 투자 속도 붙는다

삼성전자가 전망한 올해 낸드플래시 수요는 지난해(66억개)보다 약 30% 많은 1GB당 86억개다.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은 약 40%였다. 휘발성 메모리 저장장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가 전망한 낸드플래시 수요 증가량. /삼성전자 제공

 

특히 모바일 기기가 늘어나고,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처리에 필요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역시 증가세를 보인다. 올해 초부터 삼성전자가 48층 V낸드를 양산하기 시작하면서 SSD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대체하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올해 출시한 850프로 SSD의 시간당 GB 가격은 0.6GB/s로, HDD(0.5~0.6GB/s)와 엇비슷하다. 생산량이 조금 더 늘면 SSD 가격이 HDD보다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다.

삼성전자 3D낸드가 시간당 GB가격을 대폭 하락시키면서 경쟁 업체들도 더 이상 3D낸드 투자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어느정도 가격선이 유지될 때 시장에 진입해야 과실을 나눠 가질 수 있다.

 

▲낸드 가격 곡선. /가트너,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 제공

관건은 어떤 업체가 얼마나 투자를 할 것인가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웨이퍼 기준 월 9만장 규모의 팹을 보유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 16라인 3~4만장 가량을 V낸드로 전환 투자했고, 시안과 17라인에도 각각 3~4만장씩 투자해 내년 초에는 월 약 20만장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일단 48층 위주로 투자를 하지만 시장 추이에 따라 64층 비중을 늘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8일부터 미국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2016 플래시 메모리 서밋(Flash memory summit)’에서 64층 낸드플래시를 공개하고, 내년부터 본격 양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신규 조성 중인 평택 부지 등 삼성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충분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부터 36층 3D낸드를 생산했다. 실제 상품성이 있는 48층은 이천 M14라인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올해 말 팹 구축이 완료되면 내년 초부터 약 2~3만장 가량의 3D 낸드가 양산된다.  

도시바는 웨스턴디지털과 요카이치 팹에 오는 2018년까지 3년간 약 8600억엔(약 9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요카이치 5라인에 월 1만~2만장 팹을 구축했고, 연말 추가 투자를 계획 중이다. 이변이 없을 경우 올해 말까지 2~3만장 정도를 확보하게 된다. 이 회사는 3D 메모리 비중을 오는 2018년까지 80% 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다.

마이크론은 내년 4분기까지 25억달러(약 2조7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가동 중인 1만5000장에 약 3만장 정도가 추가돼 월 4만~5만장 정도 생산이 가능하다. 마이크론은 인텔과 함께 중국 다롄에도 ‘3D X포인트’ 공장을 구축할 예정인데, 언제부터 가동할지는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유출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인텔이 중국에는 명목상 팹을 구축하고 미국에서 생산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연말 계획 중인 투자가 미뤄지지 않는다면 내년 초에는 시장에 웨이퍼 월 30만장 가량의 3D낸드플래시가 쏟아져 나온다. 전체 낸드플래시 웨이퍼 공급량의 약 20% 수준이다. 용량으로 비교하면 3D낸드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 삼성전자 3세대 V낸드를 기준으로, 저장밀도는 1mm2 당 2600MB다. 삼성전자 16나노 2D낸드플래시 저장밀도(mm2당 740MB)보다 3배 이상 높다. 전체 낸드플래시 수요의 절반 가까이를 3D낸드로 충당하게 된다.   

 

▲2016년 하반기 업체별 낸드플래시 생산능력 예측.(각사별 전략에 따라 변동 가능성 있음) /업계 종합

 

제2의 치킨게임 재현? 자율보정능력 유효기간은

올해부터 시작된 3D낸드플래시 투자 레이스 때문에 과거 D램 시장에서처럼 ‘제2의 치킨게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업계가 서로 출혈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경쟁구도가 단순해졌다. 10여년에 걸친 치킨게임 끝에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1강, 2중, 1약 구도로 재편됐다. D램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난야 4개사가,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 도시바⋅샌디스크, 마이크론⋅인텔, SK하이닉스가 4파전을 이룬다.

이는 곧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경쟁사를 퇴출시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서로 눈치를 보면서 업계 전체가 적당히 수익을 향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게 유리하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전동수 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과 권오철 전 SK하이닉스 사장은 “이제 치킨게임은 없을 것”이라며 업계가 ‘자율보정능력’을 갖게 됐다고 단언했다.

삼성전자가 1강 체제를 공고하게 구축했다는 것도 치킨게임 가능성을 줄여주는 요인이다. 2~4위 업체들이 GB당 가격을 삼성보다 낮춰 공급하기 위해서는 10~20조원의 투자가 한번에 이뤄져야 한다. 아니면 수익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무리수를 둘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

삼성전자가 하반기 증설투자를 64단이 아닌 48단 위주로 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삼성은 낸드 시장 점유율을 50% 가까이 확보하면서 가격 결정력을 쥐었다. HDD는 대체하지만 적정 가격은 유지하는 선에서 공급량을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변수는 중국이다. XMC는 미국 스팬션과 합작사를 설립, 3D낸드플래시를 내년부터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양산 기술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장기적으로 공급과잉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LCD 디스플레이 등 전자분야 장치산업에서 공급과잉을 유발해 시장을 장악하는 방식을 써왔다. 반도체는 이 중 기술장벽이 가장 높지만 막대한 자본력과 시장을 활용하면 예상보다 빠르게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    

외국계 반도체 장비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장비업체들이 공정 컨설팅까지 함께 하면서 기술 확보가 좀 더 쉬워졌다”며 “아직은 중국과 기술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언제 따라잡힐지는 시간 문제”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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