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전동수 사장(당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은 19나노 이후 차세대 공정을 16나노 대신 3차원(3D) 브이(V)낸드로 결정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만 해도 3D 낸드는 불확실한 기술로 치부됐다. 브이 낸드 개발이 좌초될 경우 SK하이닉스·도시바 등 경쟁사에 낸드 시장 주도권을 내줄 위험도 있었다.


지난해 중국 시안에 구축된 삼성전자 신규 팹이 3D 낸드 전용으로 꾸려지면서 삼성전자의 방향은 확실해졌다. SK하이닉스가 16나노 낸드 플래시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지난해 삼성전자의 불안감도 커졌지만,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의 판단이 옳았던 것으로 평가되는 분위기다.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기존 플레이너(planar) 타입 2D 낸드 플래시가 19나노 TLC에서 16나노 멀티레벨셀(MLC), 16나노 트리플레벨셀(TLC)로 두 단계 바뀐 동안 3D낸드는 24단 MLC→32단 MLC→32단 TLC→48단 TLC 네 단계나 진화했다. 3D 낸드 기술 개발 속도가 2D 낸드를 앞지른 셈이다. 삼성전자에 이어 여러 업체들이 3D 낸드 개발에 뛰어들면서 향후 기술 진화 속도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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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낸드에 의구심 갖던 반도체 업체들...뒤늦게 기술 확보에 안간힘

 

올 들어 3D 낸드 기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3D 낸드는 삼성전자의 전유물이었지만, 올 들어 SK하이닉스·도시바 등 후발 업체들도 시장 진출에 출사표를 던졌다. 삼성전자가 3D 낸드 분야에서도 초격차 전략을 구사함에 따라 SK하이닉스·도시바·마이크론 등 후발 업체들은 샌디스크·인텔 등 업체와 손잡고 추격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하반기부터 36단 MLC 낸드 양산에 돌입한다. 내년 안에 48단 TLC를 양산해 삼성전자와 격차를 줄인다는 목표다.


인텔-마이크론 연합은 최근 32단 MLC 낸드 개발에 성공했다. 시험 생산한 제품으로 주요 고객사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두 회사는 조만간 32단 TLC 낸드를 상업화할 계획이다.


도시바-샌디스크 연합은 32단 제품을 뛰어넘어 48단 MLC 낸드로 직행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도시바는 지난 3월 48단 MLC 낸드 시제품을 선보였고, 최근 일본 요카이치에 신규 팹을 꾸려 양산 준비에 돌입했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상업화한다는 목표다.

 

▲삼성전자 SSD/ 삼성전자 홈페이지 제공



삼성전자, 3D 낸드 주도권 강화...차세대 기술 개발 더욱 가속

 

삼성전자는 지난해 48단 트리플레벨셀(TLC) 낸드 생산을 위한 ‘V3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올 상반기 중 공정 기술이 상업화 수준에 이르면서 하반기 고객사 인증을 서두르고 있다. 48단 TLC 낸드는 기존 32단 TLC 낸드 대비 40% 이상 원가 개선 효과가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전자가 16나노 미세공정보다 3D 낸드 쪽에 무게 중심을 둔 것이 실패한 전략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32단 TLC 낸드가 16나노 MLC 낸드보다 원가 경쟁력이 뒤처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3D 낸드 기술 진보가 빨라지면서 결과적으로 삼성전자 차세대 낸드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48단 TLC 낸드가 양산되면 16나노 TLC보다 원가 경쟁력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가 한 애널리스트는 “낸드 플래시는 아직 D램 시장보다 작지만,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빅데이터·사물통신(IoT) 등 신성장 산업과 직결돼 있어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크다”며 “3D 낸드는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만큼 향후 핵심 기술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결정적 차이?

 

삼성전자가 미세공정 기술을 무기로 메모리 시장에서 치고 나가는 가운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격차도 점차 벌어지고 있다.


올해 SK하이닉스는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마이크론은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회사 희비가 엇갈린 이유는 뭘까. 바로 중국 스마트폰 시장 때문이다.


중국 중저가 스마트폰에는 D램+낸드 플래시+컨트롤러(controller)가 하나로 패키징된 임베디드멀티칩패키지(eMCP)가 쓰인다. 이 시장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장악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eMCP 시장 내 점유율이 1%에 불과하다.


eMCP를 생산하려면 높은 수준의 후공정 패키징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마이크론은 서버·PC용 D램을 주력 생산하다 2년 전 엘피다를 인수하면서 모바일 D램 시장에 진입했다. 모바일 제품 생산 기술과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칩 적층을 위한 후공정 패키징/테스트 기술도 부족하다.


eMCP는 1층에 낸드 플래시, 2층에 모바일 D램을 쌓아야 해 제한된 공간 내 최대한 얇게 장착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자체 후공정 패키징·테스트 라인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하나마이크론·STS반도체통신·시그네틱스 등 후방 공급망도 갖추고 있다. 마이크론은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아성을 넘기 쉽지 않아 보인다.


D램 미세공정 기술 수준도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 들어 25나노·21나노 D램 생산 비중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25나노 D램 비중은 1분기 41%에서 2분기 55%까지 높아졌다. 연내 67%까지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달 들어서는 21나노 제품 양산에도 돌입했다. 연말까지 SK하이닉스 21나노 D램 생산 비중은 7%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낸드 플래시 사업 역량을 갖춘 것도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차이다. 마이크론은 인텔과 손잡고 3D 낸드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도시바·SK하이닉스 세 회사가 선점한 낸드 플래시 시장에 진입하기 쉽지 않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낸드 플래시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선두 업체를 추격하고 있다. 올해 SK하이닉스 낸드 플래시 웨이퍼당 칩 생산증가율(bit groth)는 50%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트리플레벨셀(TLC) 제품이 SK하이닉스 낸드 플래시 사업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 SK하이닉스는 현재 15% 수준인 TLC 낸드 플래시 생산 비중을 연내 35%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TLC는 하나의 플로팅 게이트에 3비트를 저장하는 기술이다. 기존 2비트를 저장하는 멀티레벨셀(MLC) 낸드 플래시보다 50% 용량이 늘어난다.


문제는 TLC가 MLC보다 메모리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읽기·쓰기 수명이 줄어들고 데이터가 손실될 가능성도 높다. 이에 따라 컨트롤러 기술로 낸드 플래시 열화 현상을 지연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도시바에 비해 낸드 플래시 컨트롤러 기술이 취약했다. 그러나 지난해 해외 컨트롤러 업체를 인수합병(M&A)하면서 기술 수준을 상당 부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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