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사업 강화로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 업체 추격으로 스마트폰·TV·가전 등 완제품 사업 수익성이 급락하고 있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은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키워 메모리 못지않은 수익 창고를 확보하는 동시에 차세대 기기 시장 주도권을 잡는다는 전략이다.


사물통신(IoT)·웨어러블·전기차 등 어떤 제품이 부상하더라도 프로세서·메모리·센서 등 반도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저전력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술은 차세대 제품 시장을 선점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반도체 시장 주도권만 쥐고 있으면, 퍼스트무버(First Mover)는 되지 못하더라도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는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시스템반도체 기술, 왜 차세대 산업에서 중요한가?

 

지난 2008년 애플 아이폰 충격으로 휴대폰 시장이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급변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갑작스러운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두 회사가 일궈낸 성과는 사뭇 달랐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을뿐 아니라 프리미엄 시장에서 애플과 2강 구도를 형성했다. 반면 LG전자는 중국 업체에도 밀리면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희비가 엇갈린 이유는 뭘까. 바로 시스템 반도체 기술이다. 피처폰과 스마트폰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인은 운용체계(OS) 여부다. OS 제공 업체는 AP 설계 업체와 밀접한 협력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AP 기술을 보유한 덕분에 발 빠르게 첫 스마트폰 옴니아를 출시하고, 구글과 손잡고 안드로이드 OS 기반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를 성공시켰다. 애플에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AP 관련 노하우와 기술을 습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LG전자는 퀄컴 등 외부 업체에 AP를 의존한 탓에 신제품 개발이 지연됐고, 원가 경쟁력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한 때 LG전자는 국내 최고 수준의 시스템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LG반도체를 떼어낸 데다 2000년대 초에는 시스템반도체 설계인력마저 대거 정리하는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뒤늦게 AP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스마트폰 업체가 자체 AP를 보유한 것은 개발 측면에서 엄청난 경쟁력”이라며 “OS·AP·시스템 디자인을 모두 직접하는 애플이 최적화 기술에서 가장 앞선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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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인사이드, 퀄컴 인사이드...이제는 삼성 인사이드?

 

인텔은 오랜 기간 동안 반도체 시장에서 1위 자리를 고수해온 기업이다. 과거 인텔은 PC 시장을 기반으로 상당한 호시절을 누렸다.


인텔 중앙처리장치(CPU) 탑재 여부가 곧 PC 성능을 좌우한다고 여겨진 때도 있었다. 인텔은 PC 제조사가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붙이면 칩 가격의 일부를 광고비로 돌려주는 획기적인 마케팅을 도입한 기업이다. PC 제조사는 CPU 가격을 할인받을 수 있고, 소비자는 인텔을 기억하게 돼 서로 윈윈하는 마케팅이었다.


그러나 인텔이 PC C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면서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은 PC 제조사에 독이 된다. 독점을 기반으로 인텔이 CPU 가격을 점차 올리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조사는 도산하거나 인수합병(M&A)되는 처지에 몰렸다.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PC 시장이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인텔 CPU 매출은 지난 2011년까지 상승세를 그렸다. 핵심 부품은 완제품 시장이 줄어들어도 당장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사례다. 오히려 핵심 부품의 브랜드 가치는 높아질 수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인텔과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퀄컴이다. 퀄컴은 베이스밴드 칩 경쟁력을 바탕으로 AP를 끼워 팔아 승승장구해왔다. 피처폰 시절 퀄컴 베이스밴드 시장 점유율은 20%대에 불과했지만, 스마트폰 시대에는 60%에 육박하기도 했다. AP 시장 점유율도 50%를 넘어섰다.


지난 2010년만 해도 다수의 칩 업체들이 AP 개발 경쟁을 벌였지만, 퀄컴의 끼워팔기를 당해내지 못하고 사업을 철수했다. 베이스밴드 칩 시장에서 철수한 업체도 상당수다. 베이스밴드 칩과 AP는 스마트폰 재료비의 20~25%를 차지한다.


퀄컴은 PC 시장에서 인텔이 했던 마케팅 전략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스냅드래곤’이라는 브랜드는 기업간거래(B2B) 시장에서는 널리 알려졌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잘 알지 못한다. 퀄컴은 TV 광고로 자사 칩이 채택된 스마트폰 성능이 월등하다는 인식을 심고 있다.


스냅드래곤 성공을 발판으로 퀄컴은 지난 2011년 이후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퀄컴 매출은 지난 2010년 110억 달러에서 지난해 265억 달러로 4년 만에 141% 늘었다.


 


시스템 반도체 무게 중심, 설계보다 공정 쪽에...삼성전자에 유리한 시장 구도

 

시스템 반도체 성능을 끌어올리는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 기술은 설계와 공정이다. 인텔은 한 해는 설계 기술을 바꾸고, 한 해는 미세 공정 기술을 진전시키는 ‘틱톡 전략’으로 PC·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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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바일 시스템 반도체 시장 구도가 설계 기술보다는 공정 쪽으로 무게 축이 옮겨가면서 삼성전자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경쟁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ARM이 코어를 기본 제공하고, 시높시스·케이던스·멘토그래픽스 등 반도체설계자동화(EDA) 업체들도 후방에서 설계 기술을 지원하면서 웬만한 팹리스는 AP를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중국 팹리스 업체들도 쉽게 AP를 설계할 수 있다.


TI·엔비디아·브로드컴 등 주요 팹리스 업체들이 AP 시장에서 손을 떼면서 시스템반도체가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로 바뀐 것도 삼성전자에 긍정적이다. 결국 시장이 규모의 경제로 갈수록 공정 기술이 더 중요한 경쟁력으로 부상한다.

 

 

삼성전자 시스템LSI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변신

 

지난해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는 1조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AP 시장에서는 퀄컴에 밀리고, 파운드리 공정에서는 TSMC에 밀리는 이중고를 겪은 탓이다. 시스템LSI사업부는 지난해 자사 무선사업부에서 출시한 갤럭시S5 AP 물량을 대부분 퀄컴에 뺏기기도 했다. 20나노 공정에서는 TSMC에 밀리면서 애플 AP 물량을 내주는 수모도 겪었다.


그러나 올 들어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처음 AP에 14나노 핀펫(FinFET) 공정을 적용하는데 성공한 게 주효했다. 14나노 최첨단 공정에서 AP를 만들면서 칩 성능이 대폭 개선됐고, 퀄컴 등 팹리스 기업으로부터 파운드리 주문도 점차 늘고 있다. 최근 출시된 갤럭시S6에는 퀄컴을 제치고 자사 AP를 전량 공급하는 성과를 이뤘다.


삼성전자 실적 견인의 주역인 스마트폰은 이제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 영업이익은 지난 2013년 25조원에서 지난해 15조원으로 급락했다. 올해도 갤럭시S6가 기대 이하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스마트폰 사업 침체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퀄컴과 TSMC 합산 영업이익은 18조원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AP와 파운드리 시장에서 약진한다면 스마트폰 사업 못지않은 수익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시스템LSI 사업부는 14나노 핀펫 기술을 무기로 오는 2017년 2조5000억원~3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AP와 베이스밴드 칩 시장은 60조원에 이른다. 파운드리 시장은 50조원에 이른다. AP·베이스밴드 칩·파운드리 시장을 합하면 D램·낸드 플래시 등 메모리 시장을 훨씬 넘어선다.


AP 시장은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6.5%에 이른다. 몇 년 안에 메모리 시장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사물인터넷(IoT)·웨어러블·자동차 등으로 사용처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퀄컴은 지난해 AP와 베이스밴드 칩 시장에서 전체 이익의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 영업이익보다 많다. 삼성전자가 AP 사업을 강화해 퀄컴을 추격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 매출은 24억 달러로 전체 시장의 5.1%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파운드리 시장은 연평균 12%로 성장해 2017년 667억 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10%의 점유율만 차지해도 67억 달러(약 7조원)의 매출로 지난해 대비 세 배 이상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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