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과 BOE가 새로운 ‘밀월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기술 확보에 목마른 BOE와 삼성전자를 견제하기 위한 인텔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세계 1위 반도체 기업과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의 만남이 우리 반도체 산업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관심이 쏠린다.


세계 1위 반도체 업체 인텔과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 고위 경영진이 최근 잦은 만남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최근에는 인텔 모바일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총괄책임자가 BOE 본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선언한 BOE가 메모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인텔에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은 지난 1970년대 메모리 사업에서 철수한 후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등 시스템반도체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스핀주입자화반전 메모리(STT M램) 등 차세대 메모리 관련 핵심 기술을 꾸준히 축적해오고 있다. 인텔이 보유한 메모리 관련 지적재산(IP)도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D램 시장 진입이 목표인 BOE로서는 인텔의 기술을 도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D램 미세공정은 커패시터(capacitor) 형성 기술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랜지스터 선폭이 좁아지면 커패시터 폭은 더욱 좁아지고, 길이는 길어진다. 공정 중 커패시터가 무너져 D램 공정 수율이 떨어진다. 기존 D램 커패시터를 대체할 기술로 STT M램이 유력한 상황이다. STT M램은 기존 D램 공정과 95% 이상 비슷해 기존 설비를 활용할 수 있고, 안정성도 뛰어나다. 후발 업체인 BOE로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기술이다.


중국은 사모펀드를 조성해 모바일 D램, SD램, 아날로그반도체 등을 설계하는 미국 ISSI를 6.4억달러에 인수하며 D램에 첫 발을 내디뎠다. 중국 정부는 D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베이징·상하이·허페이·우한 등 6개 지역을 대상으로 팹 설립 후보지를 물색 중이다. 최종 선정한 지역에 D램 팹을 설립한다.


중국이 메모리 산업에 욕심을 내는 것은 그 만큼 자국 내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소비되는 D램과 낸드 플래시 비중은 각 20% 수준으로 추정된다. 스마트폰·태블릿PC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향후 수년간 고수익을 낼 메모리 산업은 탐낼 만한 품목이다.


현실적으로 일본과 대만의 D램 업체들이 전멸한 상황에서 중국이 D램 산업에서 단기간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낼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력을 등에 업고 지속적으로 기술 습득에 나선다면 중장기적으로 국내 메모리 산업에 상당한 리스크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인텔의 후방 지원은 중국 D램 산업 발전에 상당한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D램 산업이 성장한다면 인텔 입장에서도 실익이 크다. 중국이 메모리 시장에 뛰어들면 인텔로서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추격을 뿌리치는데 유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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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2015 웹사이트 자료


인텔은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외계인으로 불릴 정도로 경쟁사 대비 1~2세대 앞선 미세공정 기술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가 14나노 핀펫(FinFET) 기술 확보에 성공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모바일 시장에서 ARM 코어에 뒤처진 인텔이 설상가상으로 미세공정 기술 주도권마저 삼성전자에 내줄 판이다.


반도체 산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14나노 핀펫 공정을 적용한 엑시노스를 출시하면서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부상했다”며 “인텔은 여전히 14나노 핀펫 수율 안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은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약진의 배경으로 메모리 사업을 꼽는다. D램·낸드 플래시 사업이 캐시카우 역할을 하면서 시스템반도체 부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고리가 형성됐다. BOE가 메모리 시장 구도를 흔들어 준다면 인텔로서는 삼성전자를 견제하기 수월해진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사업을 확대하는 데도 BOE 등 중국 기업의 활용도는 크다. 최근 인텔은 스마트폰 시장 진출을 위해 사실상 AP를 공짜로 뿌리는 실정이다. 


스마트폰 업체가 인텔 AP를 적용해 제품을 양산하면 구입 자금의 대부분을 리베이트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축적해 놓은 현금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마케팅비를 집행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인텔이 PC용 CPU 사업 진출을 위해 썼던 방식이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인텔 AP 사업 협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BOE가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인텔 AP를 채택하도록 돕는다면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증권가 한 애널리스트는 “중국 자본이 미국 반도체 업체를 잇따라 인수하는 등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 정부 차원의 공식 메시지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며 “당분간 중국 반도체 기업이 약진해 한국 기업을 견제케 하는 것이 자국 산업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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