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와 인건비 경쟁을 하면서 '제조업 공동화' 조짐이 보입니다. 첨단 제조업 역시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KINEWS는 한국보다 앞서 제조업의 위기를 겪은 국가를 탐방했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고비를 넘기고 제조업 재부흥을 이룰 수 있었는지 집중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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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W의 주요 공업도시 중 하나인 뒤스부르크 전경.

1989년,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RW)연방주 루르(Ruhr)공업지대와 인근 에센(Essen)에 위치한 석탄 탄광이 완전히 폐쇄됐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이 지역은 지난 1963년부터 15년 가량 한국인 광부 8000여명이 파견된 곳이다. 1970년대 후반까지는 일할 사람이 모자라 해외에서 노동자를 수입까지 해야했다. 광산은 주변 지역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풍부한 원료를 바탕으로 광업, 철강 등 중공업이 발달했다.

 

탄광이 닫힌 이유는 석탄 수요가 감소하고 환경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환경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독일에서는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3D) 업종은 어차피 지속되기 힘들었다. 문제는 실업이었다. 당시 실업률이 30%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극복할 대안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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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내 한국인 분포. /독일연방통계청 제공

 

NRW 공업지대, 독일 제조업 거점으로 재도약


오스트리아에서 네덜란드 국경까지 독일의 남서-남동 지역을 관통하는 3번 고속도로(아우토반)는 독일 물류의 젖줄이다.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3번 고속도로를 따라 서북쪽으로 향했다. 쾰른에서 라인강과 만나 강을 끼고 뒤스부르크로 가는 길은 출퇴근 차량이 없는 일요일 저녁도 차가 막힌다. 3번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더라도 라인강 지류인 루르강을 따라 줄지어 있는 뮐하임 안 데어 루르, 에센, 도르트문트로 오가기 위해서는 교통 체증을 겪어야 한다.

 

이 지역 총생산(GDP)은 5998억유로(약 784조8383억원)에 달한다. 독일 경제 규모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아르헨티나보다 NRW 연방주 GDP가 높다. 한 때는 몰락한 지역이었던 루르공업지대로 지금은 사람들이 오히려 모여든다. 쇠락한 탄광지역은 어떻게 탈바꿈했나, 그 비결을 알아봤다.

 

경제정책 최우선 과제는 '중소기업 육성'


루르 공업지대의 탄광도시 중 하나인 뮐하임 안 데어 루르를 찾았다. 한때 극심한 실업난을 겪은 곳이다. 이 곳에는 지멘스 파워ㆍ가스 사업부 가스터빈 공장이 있다. 직접 고용인원만 5000명이 넘는다. 

 

토마스 뮬러 뮐하임&비즈니스 경제개발공사(M&B) 프로젝트매니저 겸 서 루르 응용과학대 비즈니스어소시에이션 대표는 "정부에서 일자리 안정을 위해 특히 주목하는 건 지멘스가 아니라 수십만 중소기업"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기업이 문을 닫으면 수천~수만명이 실업자가 되지만 중소기업은 대규모 실업을 유발시키지 않고 고용 창출은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직장에서 평생 고용을 실현하는 것보다 여러 직장에서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더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M&B의 목표도 중소기업 육성이다. EU, 중앙정부, 연방주의 기업 지원 혜택은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거의 사라진다. 뮬러 대표는 "정부의 역할은 창업을 장려하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해주는 것"이라며 "대기업은 중소기업 창업 활성화를 위해 지역사회와 학교 등에 투자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NRW연방주에는 중소기업만 76만5000곳이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중소기업 우선 전략을 편 결과다. 연방주 전체 기업 중 99.5%를 차지한다. 정규직 약 80%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장치산업과 첨단산업의 조화


마이클 클란케 집테크니크(SIEBTECHNIK) 영업부장은 "NRW에 본사를 둔 화학기업 뿐만 아니라 한국 삼성ㆍLG 화학 계열사도 모두 우리 고객사"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매출액은 4억유로(약 5204억원)로 중견 기업이지만 원심분리기 분야에서는 세계 선두권이다. 20년 넘게 광공업, 중화학 대기업 대신 첨단 기술 중심 중소기업을 우대한 결과 오히려 규모의 경제와 기술력이 공존하는 클러스터가 다수 존재하게 됐다.

 

바스프, 에보닉 등 전통 화학ㆍ소재 대기업들이 끊임 없이 신소재를 개발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는 중소기업 생태계다. 화학 대기업들은 중소기업 장비사와 공동 기술개발을 하고, 최신 장비와 설비를 빨리 조달할 수 있다. 중소기업들도 협업을 통해 수요 파악이 빠르다.   

 

독일 50대 기업 중 16개사 본사가 NRW 연방주에 있고, 쾰른, 에센, 뒤스부르크, 뮬하임, 뒤셀도르프, 아헨 등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각각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다.  

 

기계공업, 화학, 금속 생산 및 가공, 식품, 자동차 부품, 전자 등 제조업이 고루 발달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전자ㆍ자동차ㆍ조선ㆍ철강 등 특정 산업군이 흔들리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한 한국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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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테크니크 본사에 걸린 'INNOVATION(혁신)' 문구. 한 분야를 깊게 연구해 혁신 제품을 만드는 게 독일 기업문화 중 하나다.

오은지 기자  onz@ki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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