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키미디어 주최로 열린 'OLED 10년 사이클이 시작됐다' 세미나에서 이신두 서울대 교수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21일 키미디어 주최로 열린 'OLED 10년 사이클이 시작됐다' 세미나에서 이신두 서울대 교수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칭기즈칸이 일으킨 몽골 기병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정복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변변한 갑옷조차 없던 몽골 기마병이 작은 말과 화살로 유럽의 기갑 기마병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스피드' 덕분이다. 

위기에 직면한 우리 제조업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몽골의 기마병처럼 빠른 속도로 시장에 대응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 이신두 서울대 교수는 21일 (주)키미디어 주최로 열린 'OLED 10년 사이클이 시작됐다' 세미나 기조 연설에서 우리 제조업이 몽골 기마병처럼 스피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역대 정권에서 산업 정책 자문위원으로 우선적으로 초빙하는 인물이다. 미국 광학회 석학 회원으로 등록돼 있으며, 세계 디스플레이 산업계에서도 석학으로 손꼽힌다. 

그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 점차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대외 악재와 맞물려 우리 제조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제조업 성장을 견인해온 스마트폰 시장 성장이 둔화되고 있으며, 애플의 독주와 후발 업체들의 추격으로 한국 기업은 샌드위치 신세에 놓여있다. 

 

중국 제조업의 부상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

그는 중국발 리스크를 무엇보다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주요 소비시장인 동시에 생산기지로서의 입지도 여전하다. 공급 과잉이 초래되면, LED LCD 태양광처럼 반도체 산업도 쉽지 않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중국이 우리보다 기술력이 뒤처져 있다고 아직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고정 관념을 빨리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 곳곳에 중국 유학생들이 고급 기술과 노하우를 익히고 있다. 시장이 된다고 판단하면 2년 안에 이들이 본국으로 귀국해 상업화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중국 내 흘러넘치는 자금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 

그는 중국이 디스플레이 산업을 키우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새로운 성장 먹거리를 고민해야 했다며 지금 대응하는 것은 이미 늦은감이 없잖다고 토로했다. 

올해 중국 디스플레이 생산량은 지난 2010년 대비 올해 918% 성장했다. 우리는 품질이 어느 정도 이상 돼야 시장에 출시된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불량 제품도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이 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양산 경험을 강화하면 결국 잘 할 수밖에 없다. 

전세대 기술은 중국에 과감히 넘겨주고, FTA를 기반으로 관세를 낮추는게 낫다는 게 그의 처방이다. 대신 하이엔드 유저를 대상으로 고부가 산업을 선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영광은 뒤로 하고 산업 패러다임 바꿔야

그는 우리가 반도체ㆍ디스플레이ㆍ스마트폰 산업에서 1위를 했지만, 앞으로는 양적인 1위가 아니라 질적으로 1위 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난 시장점유율은 크게 의미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패스트 팔로워로서 상당한 성과를 일궜다. 이미 있는 제품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아 생산 기술로 약점을 보완하는 성공 공식이었다. 이 때 재벌이라는 한국의 독특한 지배구조가 효율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통하지 않게 됐다. 

중국이 우리와 똑같은 방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리보다 인구도 훨씬 많고 시장도 몇 배로 크다. 과거 폐쇄적인 경제 구조에서는 큰폭의 도약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개방 경제로 가속화하면서 제약이 없어졌다. 

재벌 지배구조의 한계도 이미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는 산업 생태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이 교수는 앞으로는 국내 재벌 기업이 소재ㆍ부품ㆍ설비 등 후방 산업과 생태계를 구축하고 함께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생산 거점 전략도 보다 세련돼 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중국 내 인건비 상승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굉장히 많다. 싼 인건비만 찾아 생산 거점으로 옮기는 것도 더 이상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인건비만 뽑아 먹는 기업은 베트남 정부에 미운털이 박힌다. 몇몇 국내 기업이 미운털이 박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베트남 같은 신흥국가들은 노동력만 뽑아 먹는 외국 기업을 원하지 않는다. 함께 성장하고, 기술을 전수하는 기업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의 정서도 비슷할 거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산업, 부가가치는 어디서 나오나?

이 교수는 '생각이 돈이다.' 이 단순한 말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생각을 돈으로 바꾸는 과정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향기나는 TV를 놓고 다양한 관점에서 보자. 공학만 한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이야기할 거다. 그러나 제품은 사람의 감성과 직결된다. 성능만 좋다고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아닌 감성에 좀 더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만약 향기나는 TV를 선물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기업이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인문사회학을 전공한 사람이 필요하다. 5~6년 전부터 이 교수가 강조해온 내용이다. 

그는 주력 산업은 고도화하고 사양 산업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경쟁력을 강화해서 선점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산업은 더욱 고도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투자 효율성과 관련된 문제로 정부의 관점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다.  

 

이형수 기자  goldlion2@ki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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