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협력 업체를 이원화, 삼원화 하기로 유명하다. 경쟁을 시켜 조달 단가를 낮춘다. 최고의 기술을 조달하기도 쉽다. 기존 협력업체를 능가할만한 기술을 제안하는 업체들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앞에 넘친다. 경쟁이 심한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해온 비결 중 하나다.  

 

안정적인 기술력 확보를 위해서라면 공급망(SCM)을 단순화 시키는 애플과는 차이가 난다. 애플은 요구조건(스펙)에 맞는 기술력을 가진 업체에 선행 투자까지 하고 끈끈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한 모델에 채택되면 엄청난 물량을 꾸준히 납품할 수 있다. 

 

부품, 소재 업체 입장에서 삼성전자는 계륵이다. 협력사는 한 모델에서 제외되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또 다른 모델 승인을 기다릴 수 있는 반면 길어야 6개월 안에 원하는 스펙의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게 부담이다. 물량이 많아 공정 투자를 미리 해놨다가 승인이 취소되거나 주문량이 줄면 투자비와 재고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공급망(SCM)을 운용하는 삼성전자에도 특정 제품을 전량 공급하는 ‘솔벤더(sole vendor)’가 존재한다. 어떤 비결이 있길래 솔벤더가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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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SCM 경쟁력 순위 /가트너 제공

 

 

롱텀에벌루션(LTE)이 요구한 의외의 기술, 박막 체적 탄성파 공진기(FBAR)

 

아바고테크놀로지스는 삼성전자 ‘갤럭시S6’ 등 플래그십 모델을 포함한 LTE 스마트폰에 전량 자사 ‘FBAR(Flim Bulk Acoustic Resonator)’를 공급한다. 

 

FBAR는 모뎀(베이스밴드) 앞단에 붙어 무선주파수(RF) 중 원하지 않는 신호를 깨끗하게 걸러주는 필터 중 하나다. 과거 PCS, 와이맥스(WiMAX) 등에 일부 쓰였지만 쏘필터(SAW Filter) 등 대체할 수 있고 저렴한 필터 기술과 용도가 겹치는 부분이 있어 많이 양산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LTE가 상용화 되면서 다시 주목 받게 됐다. FBAR는 실리콘 기판 위에 압전체를 올려 만든다. 양 전극에 전류를 가하면 압전체에서 탄성파가 발성하고, 이 파동의 주파수와 같은 주파수는 통과하고 다른 주파수는 감쇄시킨다. 여타 필터보다 스커트(Skirt, 통과대역과 저지대역이 구분되는 정도) 각이 높아 신호를 더욱 깨끗하게 거를 수 있다.

 

LTE는 3세대(3G) WCDMA와 달리 국가별, 통신사별 주파수 대역이 제각각이다. 한국도 1.8GHz, 2.1GHz, 2.6GHz 대역을 나눠 쓰고 있다. 앞으로 미국 등의 700MHz 대역과 한국의 2.4GHz 대역이 추가된다. 

 

베이스밴드는 2G⋅3G 주파수 외에 LTE 모든 주파수를 지원해야 한다. 최근에는 데이터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서로 떨어진 대역의 주파수를 2개나 3개씩 묶어 쓰는 캐리어 어그리게이션(CA) 기술도 등장했다. 주파수를 걸러내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스마트폰 업체들은 필터 중 가장 깨끗한 신호를 걸러낼 수 있는 FBAR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전신인 애질런트 시절부터 FBAR 특허를 보유하고 꾸준히 생산해 온 아바고가 자연스럽게 독점 공급 업체가 됐다. 

         

▲ FBAR / 아바고테크놀로지스 제공

  

아바고는 한국에 엔지니어 150여명 규모의 RF 전문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하면서 한국 무선 인프라 개발 속도에 맞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 경쟁사들보다 삼성전자와 긴밀하게 기술 협력도 한다. 

 

미국 올랜도 아바고 공장 주변은 연일 라인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해 발을 동동구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에 솔벤더로 공급을 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며 “요구 기술을 가진 유일한 업체가 솔벤더로 등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갤럭시S5’ 모델까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용 온셀 터치 ‘옥타(OCTA)’를 독점 공급했던 동우화인켐도 OLED 패널의 저내습성을 해결할 소재와 공정 기술 덕택에 몇 년간 솔벤더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유일한 기술은 없다. 몇 년, 빠르면 수개월 내에 이를 능가하거나 유사한 기술을 가진 업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삼성전자는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독자개발, 가능성을 가진 업체와 공동 개발 등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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