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반도체⋅디스플레이 거치면서 장비 사업 애착

LG그룹이 구광모 (주)LG 회장을 중심으로 4세 승계되면서 구본준 부회장의 거취에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LG그룹은 가업이 후대로 이어질 때 마다 형제들의 퇴진과 함께 그룹이 분할됐다.

이 때문에 구본준 부회장이 그동안 애착을 가졌던 일부 계열사나 사업부문을 갖고 독립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구본준 부회장. /(주)LG 제공


구본준 부회장, PRI 분사해 독립할까


구본준 부회장의 퇴진과 함께 그룹에서 분리될 사업으로 거론되는 부문 중 하나는 LG전자 산하의 소재생산기술원(PRI)이다.

PRI는 그룹 내 전자산업 계열사를 위한 공정기술 선행개발을 담당하면서 직접 장비도 공급하는 사업 조직이다. LG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인 고객사며, LG이노텍도 PRI에서 일부 장비를 구매한다. 삼성종합기술원이 선행개발과 함께 일부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를 공급하는 것과 유사하다.

PRI가 공급하는 대표적인 품목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레이저결정화(ELA) 장비다. ELA는 비정질실리콘(a-Si) 기판을 저온폴리실리콘(LTPS)로 업그레이드 해주는 핵심 설비다. 6세대(1500㎜ X 1850㎜) 원판 투입 기준 월 1만5000장분을 투자할 때 1000억원 이상 소요되는 고가 장비이기도 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AP시스템으로 부터 이 장비를 독점 공급받고 있고, LG디스플레이는 일본 재팬스틸웍스(JSW)가 공급하다가 2년 전 LG전자 PRI로 내재화했다.

전공정 핵심 장비인 스퍼터(아바코)와 검사 장비 등은 협력사에서 구매해 PRI를 거쳐 LG디스플레이로 공급된다. 이외에도 LG이노텍은 PRI를 통해 카메라모듈⋅안면인식모듈용 장비를 공급받는다. 이들 장비는 PRI가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하이비젼시스템 등 협력사가 PRI를 거쳐 공급하는 형태다.

LG디스플레이의 OLED 후공정 모듈 라인의 베트남 이전 등 그룹 내 굵직한 이설 프로젝트도 대부분 PRI가 수행한다. 한 장비 업체 대표는 “LG전자 PRI를 거치지 않고는 LG그룹에 장비를 공급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BJ, 설비 사업에 애착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 전경. /LG디스플레이 제공



구본준 부회장이 계열 분리와 함께 LG전자 PRI를 안고 나갈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구 부회장이 그동안 제조업 첨단 기술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1997년 LG반도체를 시작으로 2006년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10년간을 장치 산업에 종사하면서 장비 경쟁력 확보가 절실함을 몸소 체험했다.

이 때문에 2010년 LG전자 대표이사에 오른 이후 줄곧 PRI 사업에 큰 관심을 쏟았다. 원래 생산기술원과 소재기술원으로 각각 운영되던 것을 2015년 소재생산기술원으로 통합했다. 그 해 홍순국 현 PRI 사장이 부임했는데, 전무에서 부사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사장으로 승진했다. 홍 사장은 레이저 분야 전문가로, 구본준 부회장의 신뢰도 매우 크다.

PRI가 지금과 같은 사업 조직으로 본격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 대표를 맡은 이후인 2012년이다. 당시 LG디스플레이가 경기도 파주에 TV용 OLED 생산라인인 E4를 구축하면서 PRI가 프로젝트 전체를 수주했다. 라인의 전반적인 설계를 담당한 것이다.


PRI, 어떻게 분리할까...인적분할 후 지분취득 가능성


구본준 부회장이 PRI를 계열분리해 독립한다면 인적분할 등 절차를 거칠 전망이다. PRI의 사업부문을 인적분할을 통해 LG전자에서 완전히 분리한 뒤, 여기에 구본준 부회장의 지분을 넣는 방식이다.

현재 구본준 부회장은 (주)LG 지분 7.72%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시가로만 1조원에 달하는 가치다. 이를 기반으로 신설 회사 지분을 취득할 수 있다.

난관은 이미 PRI의 사업이 크게 확대되면서 지분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PRI는 아직 개별 매출을 공개한 적은 없다. 다만 LG전자 사업보고서 상에 나온 ‘기타부문’ 실적으로 통해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기타부문에는 PRI의 실적과 함께 태양광 및 디스플레이 소재 등의 매출이 반영되어 있다.



▲홍순국 LG전자 PRI 사장. /LG전자 제공


기타부문은 지난해 2조3808억원, 2016년 2조510억원의 매출을 각각 달성했다. 덩치에 비해 이익률이 높지는 않은데 2016년과 2017년 각각 407억원과 655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업계서는 기타부문 실적의 최소 70% 정도가 PRI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미 매출액 규모가 조단위를 넘어선 것이다.

인적분할로 만들어질 신생회사의 매출이 1조원을 넘고, LG그룹 내 안정적인 매출처까지 확보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에서의 가치 평가가 높게 이뤄질 수 있다. 이 경우 구본준 부회장이 신설회사 지분을 획득하는 데 적지 않은 현금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구 부회장이 2010년부터 PRI를 육성하면서 이미 향후 계열분리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소문이 많았다”며 “시장에서의 가치가 너무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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