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의 숨은 목적들
[칼럼]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의 숨은 목적들
  • 안석현 기자
  • 승인 2021.04.02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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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부품 내재화 통해 협력사 원가구조 파악
완성차 업체들 배터리 내재화도 같은 맥락서 봐야
물량 감소 보다 판가 인하 효과 극대화

지난 2013년 이후 삼성전자 무선(스마트폰)사업부는 공격적으로 부품 내재화를 추진했다. 그동안 외부 전문업체에서 사왔던 부품들을 자체 생산라인에서 찍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일감을 가로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렇게 카메라모듈⋅터치스크린패널⋅플라스틱케이스⋅메탈케이스 등이 삼성전자 공장에서 생산됐다.

삼성전자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내재화 목표는 부품 조달 안정이다. 일부 스마트폰 부품은 시설 투자비와 연구개발비가 큰 탓에 중소 협력사에만 수급을 의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내재화를 통해 삼성전자가 더 크게 누린 이득은 따로 있다. 바로 후방산업 장악이다. 협력사들 생산공정을 작게나마 몸소 구현해봄으로써 부품 원가구조를 샅샅이 들여다 봤다. 

이전에는 협력사가 주장하는 원가 상승 요인을 대부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는데, 내재화 이후로는 논쟁이 가능해졌다. 물론 삼성전자는 앞서도 늘 협력사보다 갑의 위치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부품 내재화 이후 합리적으로 따져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카메라모듈 업체 임원은 “삼성전자 내에 동일한 카메라모듈 생산라인이 있고, 기본 자재 수급도 같은 회사에서 하다 보니 원가 구조가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삼성전자가 내재화를 추진했던 부품들은 하나같이 마진폭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 전기차 'ID.4'. /사진=폴크스바겐
폴크스바겐 전기차 'ID.4'. /사진=폴크스바겐

지난달 세계 최대 자동차 브랜드 독일 폴크스바겐이 배터리 생산 내재화를 선언했다. 협력 파트너로 스웨덴 노스볼트를 지정했다. 현대자동차와 일본 도요타 역시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 중이거나 내부 연구개발 조직을 확대하고 있다. 

배터리 셀 업체들과 관련 산업 종사자들은 당장 완성차 업체의 물량 잠식을 우려한다.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만들어 쓴다면, 앞으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전문업체서 구매할 잠재 물량이 줄지 않겠느냐는거다.

물론 배터리 셀 업체들의 판매량 증대에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다. 그러나 완성차 업체들의 자체조달 물량이 배터리 전문업체들 가동률에 위협이 될 정도로 커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다. 

수십년간 전기화학을 연구했고, 다양한 고객 판로를 가진 전문업체들에 비하면 완성차 업체들은 절대 가격 경쟁력 있는 배터리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없다. 오히려 완성차 업체들 배터리 자작 라인은 돌릴수록 적자를 볼 공산이 크다.

따라서 배터리 업체들이 당장 걱정해야 할 지점은 물량 감소가 아니다. 진정 우려스러운 것은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산업 학습량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부품 내재화를 통해 협력사 원가구조를 공부한 것처럼 말이다. 배터리 셀 업체들은 지금도 거의 수익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정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부품 품질사고가 생기면 삼성전자가 뒤집어쓰는 경우가 많았으나 내재화 이후로는 원인분석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봤기 때문이다.” - 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관계자.

삼성전자에서 직접 부품 내재화를 추진했던 관계자의 전언은 완성차 업체들의 또 다른 속내를 대변한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배터리 화재 사고는 관련 업체들의 조단위 출혈을 동반했다. 전기차 판매량이 늘수록 화재 사고도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대규모 리콜시 책임소재가 완성차에 있는지, 배터리에 있는지 따지기 위한 소송도 줄이을 것이다. 

직접 배터리를 생산해 본 완성차 업체와 100% 전문업체에서 수급하는 업체 중 어디가 소송에서 유리할까.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는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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