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C 하위 단계 지원 전망
시스템LSI⋅메모리⋅파운드리 삼각 시너지
자체 설계 역량 확보 뒤 독립할 것

삼성전자가 '커스텀(Custom) SoC' 사업을 확대한다. 타깃은 칩리스(Chipless)들 중에서도 반도체 설계 역량이 전무한 곳이 1순위다. 

이미 ASIC(주문형반도체)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왜 비슷한 성격의 커스텀 SoC 사업 강화에 나섰을까. 커스텀 SoC 사업과 시장 전망에 대해 살펴봤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사진=삼성전자

ASIC 하위단계 지원 전망

삼성전자는 지난해 DS부문 직속 부품플랫폼사업팀을 이끌던 이태원 전무를 커스텀 SoC 팀장으로 최근 임명했다. 작년까지 상무 1명이 담당했던 커스텀 SoC 팀에는 이태원 전무 아래 3~4명의 상무를 배치해 진용을 갖췄다. 상무 조직에서 전무 조직으로 격상되는 한편, 인원도 크게 늘린 것이다.

시스템반도체 칩은 여러 단계를 거쳐 양산된다. 기초 설계인 RTL(Register Transfer Level)⋅PnR(Placement&Routing) 등의 과정을 거친다. 어느 단계부터 개입하느냐에 따라 ASIC 디자인 서비스는 레벨(Level) 0~3 단계로 구분된다. 

커스텀 SoC는 이 중 ASIC 레벨 0~1단계 서비스를 원하는 기업들을 상대한다.

레벨 0은 고객이 설계에 거의 개입하지 않고 제품 스펙만 제공한다. 레벨 1의 경우, 고객이 RTL 설계까지 마치면 이후 필요한 단계를 고객사 요구에 맞춰 설계한다. 

레벨 2~3 단계는 자사 설계력을 갖춘 팹리스들이 대상이다. 레벨2는 고객이 자체 IP(설계자산)를 만들고, 검증(Verification)⋅합성(Synthesis) 작업까지 한 후 파운드리에 맡긴다. 주로 설계력을 갖춘 소형 팹리스들이 대상이다. 레벨3는 프론트엔드에서 백엔드까지 모든 설계를 자사가 구축할 수 있는 대형 팹리스들이 대상이다. 엔비디아⋅인텔 같은 회사가 대표적이다. 거의 순수 공정만을 맡기게 된다.

구글의 ASIC 기반 AI 가속기 'TPU'./구글
구글의 ASIC 기반 AI 가속기 'TPU'./구글

커스텀 SoC 강화로 삼성전자 내부의 역할도 명확히 분리됐다. 기존 파운드리 ASIC 사업부는 레벨 2 이상의 상위 ASIC을, 커스텀 SoC는 하위 ASIC을 맡는다. 파운드리 ASIC 서비스에 있던 설계 지원 인력도 시스템LSI로 통합됐다. 한 디자인하우스 임원은 "파운드리 사업부 역시 필요에 따라 시스템LSI 지원을 받아 일부 ASIC 디자인서비스를 지원했다"며 "기존 파운드리에서 했던 비즈니스 모델을 시스템LSI 하위 ASIC단계로 가져와 사업을 확장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왜 커스텀 SoC 강화에 나섰을까.

삼성전자 강점을 최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LSI⋅메모리⋅파운드리를 모두 갖춘 원스톱 솔루션은 삼성전자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18%로 전망됐다. 대만 TSMC의 3분의 1 수준이다. 메모리 사업부와 팹라인 일부를 공유하고, 여전히 시스템LSI와 한 지붕 안에 속한 삼성 파운드리는 TSMC에 비해 독립성이 떨어진다. 설계도 유출 우려를 완전히 불식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디자인하우스 등 관련 업체들을 연결해주는 네트워킹 역시 TSMC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세계 상위 10개 파운드리기업 1분기 매출 전망치./자료=트렌드포스

반면 칩리스들에게는 이 같은 삼성전자 사업구조가 약점이 되지 않는다. 우선 설계⋅제작 기술이 부족한 칩리스들은 설계도 유출 우려가 없다. 오히려 설계부터 생산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삼성전자 솔루션은 이점으로 작용한다. 맞춤형 설계 지원을 위해서는 설계⋅디자인 등의 축적된 노하우가 중요하다. 시스템LSI는 설계에 특화된 노하우를 쌓아왔다. 커스텀 SoC는 고객이 요구하는 다양한 맞춤형 IP 제공에 강점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칩리스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만약 ASIC 0~1단계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이 대만 TSMC 파운드리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칩 설계를 위해 다른 외주업체를 이용해야 한다. 미디어텍 같은 시스템 반도체 업체에서 설계 솔루션을 제공받은 뒤 다시 TSMC 파운드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 디자인하우스 임원은 "TSMC는 퓨어플레이 파운드리로의 강점은 있지만 커스텀 SoC 솔루션은 제공하지 못한다"며 "타사에서 IP 제작⋅검증⋅합성 단계 등까지 마친 뒤 또다시 TSMC로 가는 것이 칩리스 입장에서는 단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애플 역시 삼성전자와 아이폰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를 공동 개발하며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이용한 바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 공학과 교수는 "고객사 입장에서 중간 단계를 많이 거치면 개발기간도 오래 걸리고, 칩 설계⋅생산의 유기적 연결성도 떨어진다"며 "한 곳에서 컨트롤 해준다면 칩리스들에게는 이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커스텀 SoC, 삼각 시너지 견인할까

반도체 설계 업계 관계자들은 커스텀 SoC 사업 강화 전략이 안착한다면 시스템LSI⋅파운드리뿐 아니라 메모리까지 이어지는 삼각 시너지 효과를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은 D램⋅낸드플래시⋅메모리 컨트롤러 등 메모리 관련 제품이다. 메모리 컨트롤러와 프로세싱 기술은 최근 고성능 반도체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메모리가 고성능 SoC 내에 IP로서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구글⋅아마존 등 IT업체들이 개발하는 고성능 반도체 설계를 보완하는 것이다. 생산까지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에서 이뤄진다면 삼각 시너지 효과를 견인할 수 있다.

애플 A13 AP. TSMC의 7나노 2세대 공정으로 생산됐다. /사진=애플
애플 A13 AP. TSMC의 7나노 2세대 공정으로 생산됐다. /사진=애플

한 팹리스 업체 대표는 "커스텀 SoC는 자연스럽게 메모리 수요 증가와 파운드리 수주로 연결될 것"이라며 "메모리와 프로세서 접목 경향으로 고성능 반도체 설계가 많아질수록 메모리 수요도 늘 것"이라고 말했다. 

커스텀 SoC 시장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데이터센터⋅자율주행⋅클라우드 수요가 폭증하면서 IT 기업들은 자사 요구에 특화된 칩 설계를 원하고 있다. 자금력은 풍부하지만, 칩 설계 능력이 없는 기업들이 적극적 수요자다. 거대 IT 기업들의 움직임은 가시화되고 있다. 구글⋅아마존 등은 자체 CPU(중앙처리장치) 개발에 눈을 돌리고 있다. AWS(아마존웹서비스)도 지난해 자사 커스텀 SoC를 공개했다. AI(인공지능) 머신러닝(기계학습) 가속화를 위한 자체 반도체 칩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개발은 장시간 축적된 기술⋅인력⋅자금지원이 필요하다. 시장 진출을 원하지만 칩 설계 능력이 없는 업체들은 우선 외주 생산을 통해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공동 개발을 통해 설계 능력을 확보한 뒤, 이후 독립하려는 것이 IT 기업들의 구상으로 보인다. 애플은 삼성전자와 공동 개발 이후 성공적으로 독립한 사례다. 애플은 아이폰4S AP인 A5까지는 삼성전자와 공동 개발했다. 이후 애플은 아이폰⋅아이패드용 AP인 A6부터는 자체 설계에 나섰다. 칩셋은 기존보다 2배 빨라졌다. 그 사이 자체 설계 역량을 확보한 것이다.  

한  팹리스 CTO는 "자금력⋅아이디어는 있지만 칩 설계 능력은 부족한 것이 IT 공룡들의 특징"이라며 "적극적으로 칩 설계 외주를 맡기고 성장해, 이후에는 애플처럼 자체 설계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종환 교수도 "맞춤형 칩 설계를 원하는 칩리스들 수요가 늘 것"이라며 "AI 등 복잡한 연산을 요구하는 응용 분야들이 많이 생기면서, 자율주행⋅데이터센터에 자체 칩 설계를 원하는 이들이 우선 외주로 설계를 맡겨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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