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30~40%인 선수금은 작년까지 일부만, 올해부터 일괄 10%
잔금 30%는 AT 통과 후...받는데 최장 1년 걸려
"선수금 및 AT, 둘 중 하나는 개선돼야"

LG에너지솔루션이 중소 협력사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대금 결제 조건 탓에 원성을 사고 있다. 통상 30~40% 지급되는 선급금이 10%만 지급되는데다 잔금을 30%나 남기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수주를 거듭할수록 협력사 재무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라는 점에서 장비업계는 대금 결제 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배터리.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배터리. /사진=LG에너지솔루션

장비 대금, 30%는 입고 뒤 테스트 통과해야 지급

 

통상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장비 업계 대금 결제는 3단계로 구성된다. 1차로 구매계약(PO)을 체결하는 시점에 선급금을 받고, 장비가 실제 고객사 공장으로 입고될 때 2차 중도금을 받는다. 나머지 3차 잔금은 장비가 공장에 설치된 후 ‘인수시험(AT, acceptance test)’을 통과해야 수령할 수 있다.

고객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1차(선급금) : 2차(중도금) : 3차(AT) 비율은 ‘3:6:1’ 혹은 ‘4:5:1’ 전후다. 

장비업계에 이 같은 3단계 대금 지급 관행이 굳어진 것은 고객사와 협력사가 리스크를 서로 분담하기 위해서다. 선급금을 받아야 협력사가 장비 제작에 필요한 각종 자재를 구매하고,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인력 수요도 충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AT는 고객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장치다. 장비가 입고된 후 제대로 돌아가야 잔금을 지급함으로써 고객사는 장비 품질을 개런티(보증) 받을 수 있다. 주택 인테리어 공사 시, 집주인이 마감을 확인할 때까지 인테리어 업체에 잔금을 치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협력사들은 LG에너지솔루션의 장비 대금 결제 조건이 선급금은 극히 적은 반면, AT 비율(30%)은 전례 없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협력사에 지나치게 불리하고, 상대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까지는 요청하는 협력사에만 10% 선급금을 지급하다 올해 들어 전 협력사 10% 지급으로 방침을 바꿨다.

지난 2019년 메리 바라 GM CEO(사진 왼쪽)와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합작사 설립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모습. LG에너지솔루션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수주하는 협력사 재무 부담은 가중된다. /사진=LG화학
지난 2019년 메리 바라 GM CEO(사진 왼쪽)와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합작사 설립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모습. LG에너지솔루션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수주하는 협력사 재무 부담은 가중된다. /사진=LG화학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에 장비를 공급한 A사는 “선급금이 없기 때문에 수주를 거듭할수록 자금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였다”며 “자재 구입을 위해 급히 자금조달을 해야 했다. 자금조달 비용을 감안하면 거의 남는 게 없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배터리 장비업체 B사 관계자도 “선급금이 없는 경우는 드물게 있어도 AT를 30%나 남기는 경우는 장치산업에 LG에너지솔루션 외에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통상 배터리 장비업체 영업이익률은 높게 잡아도 10% 안팎이다. 대부분은 10%를 넘지 못한다. 30%가 AT로 묶여 있다는 건 AT를 받기 전까지는 적자 상태를 협력사가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AT 통과 여부는 전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판단한다는 점에서 언제까지 잔금이 묶여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조립공정 장비업체 C사 임원은 “AT 통과 여부는 길게는 1년이 지난뒤 판가름나기도 한다”며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업체들은 이 기간 매몰비용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불리한 대금 결제 조건 거부하기 어려워

 

이처럼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LG에너지솔루션과 거래할 수 밖에 없는 건, LG에너지솔루션의 투자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까지 미국에 5조원을 포함해 매년 3조원 이상의 자금을 배터리 생산능력 증대에 쏟아 부을 예정이다. 

삼성SDI⋅SK이노베이션도 조단위 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업체간 수직계열화 경향이 강한 장치산업 문화를 감안하면 다른 고객사로 갈아타기 역시 쉽지 않다. 

그러나 LG에너지솔루션의 이 같은 결제 방식은 단기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규모 투자에 나서면서 LG에너지솔루션의 재무 상태도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회사 사업보고서를 보면, 부채와 자본이 각각 12조3764억원⋅7조5654억원씩이다. 부채비율이 164%로, 코스피 상장사 평균 110% 안팎에 비해 크게 높은 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GM 합작사 얼티엄셀즈 전경.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과 GM 합작사 얼티엄셀즈 전경. /사진=LG에너지솔루션

이 때문에 추가 설비투자를 위해서는 기업공개(IPO)를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는 LG에너지솔루션이 IPO를 통해 10조원 가량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LG에너지솔루션 협력사 임원은 “한번에 결제 방식을 모두 고치지는 못하겠지만 선급금 비율과 30% AT 관행, 둘 중 하나는 꼭 개선되었으면 한다”며 “그래야 협력사도 신기술 개발 등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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