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프코어⋅그록 선제적으로 나선 팹리스들
시스템 LSI, SW역량 경쟁력 기준점 될 것
SW⋅HW 유기적 이해하는 산업계 역량 필요

지난 2019년 테슬라는 엔비디아로부터 독자노선을 걷는다. 엔비디아 SoC(시스템온칩)인 드라이브 '자비에'를 사용하던 테슬라는 자체 칩 개발을 계기로 엔비디아와 결별한다. 테슬라가 엔비디아로부터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은 AI 반도체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를 모두 자체 개발해 독자 플랫폼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해외 팹리스들은 이러한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극소수지만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스택까지 자체 플랫폼을 구축한 국내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모두 소프트웨어 스택에 대한 높은 이해를 가지고 출발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반도체 생태계 전반적으로는 이러한 흐름에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오토노머스 시스템용 '엔비디아 젯슨 AGX 자비에' 모듈을 내놨다./엔비디아
 '엔비디아 젯슨 AGX 자비에' 모듈/사진=엔비디아

선제적으로 나서는 팹리스들

해외 팹리스들은 좋은 소프트웨어 스택에 주력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스타트업인 그록(Groq)은 구글 출신이 창업, 처음부터 소프트웨어 스택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시작했다. 그록은 구글의 TPU(Tensor Processing Unit, 텐서프로세싱유닛) 설계자 10명 중 8명이 합류했다. 구글 TPU 용량 두 배에 이르는 기계 학습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영국 AI반도체 전문 기업 그래프코어(Grafhcore) 역시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지원을 받아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래프코어는 하이퍼포먼스 AI 영역에서 ML(머신러닝)과 추론이 가능한 칩셋을 설계한다. 그래프코어의 칩셋은 AI ML을 위해 고안된 소프트웨어 스택 '포플러(Poplar)'와 함께 작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구글 텐서플로(TensorFlow) 프레임워크와 호환 가능한 AI 모델 생태계 ONNX(Open Neural Network Exchange)과 통합을 완료했으며, 페이스북 파이토치(PyTorch)와 호환도 곧 완료할 계획이다.

 

그래프코어 이미지. /그래프코어 제공
그래프코어 이미지. /사진=그래프코어 

국내에도 AI 칩 설계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주력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국내 AI 반도체 기업 퓨리오사AI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력을 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상 RTL(Registor Transistor Level) 인력이 다수를 차지하는 팹리스들과 달리 소프트웨어 인력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그중 반수 이상이 컴파일러(compiler) 인력이다. 삼성전자⋅AMD⋅퀄컴 등 국내외 반도체 전문가들이 핵심 개발진으로 포진했다. 

김한준 퓨리오사AI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엔드유저가 칩을 잘 활용하는 부분까지 고려해 칩을 개발하는 것을 칩 설계시작이자 완성으로 봤다"며 "현재 데이터센터에서 플러그인해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프트웨어 스택은 모두 갖춰가고 있으며,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퓨리오사AI는 핵심 블록인 NPU(Numeric Processing Unit)⋅DNN(Deep Neural Network) 모델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컴파일러⋅SDK(Software Development Kit,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 모두 자체 설계하고 있다. 퓨리오사AI는 데이터센터⋅자율주행차에 적용할 수 있는 고성능 AI 반도체 설계에 주력한다. 아시아 스타트업 최초로 글로벌 AI칩 성능 테스트인 MLPerf 추론(Inference) 벤치마크에 등재된 바 있다. 

 

자율주행 시뮬레이션 관련 사진./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율주행 시뮬레이션 관련 이미지./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는 "AI 칩에서 소프트웨어 스택은 하드웨어만큼 중요하며 잘 융합돼야 한다"며 "ML 알고리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하드웨어와 개발자가 사용하기 쉬운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그것이 칩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여전히 취약한 국내 생태계

국내 팹리스 업계가 솔루션화 필요성을 공감하며 필요성을 논의한 것은 오래됐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 중요성이 제기됐지만, 아직 이런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이 다수다. 오랜 기간 노하우를 구축한 해외 팹리스에 비해 생태계 조성에 한 발 뒤처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2016년 하만 카돈을 인수하며 자율주행 기술개발에 나섰지만 여전히 성과는 미미하다. 자율주행 시대에도 메모리 반도체 중요성은 계속되겠지만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AI 시대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글로벌 업체들과 격차가 계속 커질 수 있다. 삼성전자가 우위를 차지한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 반도체 시장 30%에 그치며 70%는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한다. 

 

▲하만인터내셔널 인도 사업장./하만
하만인터내셔널 인도 사업장./사진=하만

한 라이다 업체 대표는 "메모리 일변도 산업에서 벗어나 자율주행과 AI 분야 반도체에서 어떤 역량을 보여줄 것인가가 삼성 경쟁력의 기준점이 될 것"이라며 "결국 얼마나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팹리스 업체 CTO 역시 "삼성 시스템 LSI에서 만드는 칩들은 코덱처럼 특수 목적을 위한 칩"이라며 "GPU(그래픽처리장치)나 쿠다처럼 범용적인 컴파일러를 만드는 등 소프트웨어 역량은 많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최정욱 한양대 인공지능대학원 교수는 "인텔⋅AMD는 CPU(중앙처리장치)를 계속 생산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와 맞물려서 소프트웨어의 스택을 같이 제공했지만 우리는 플랫폼을 제공한 경험이 없다"며 "AI 이전 시대는 SW가 중요한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기업 생존⋅경쟁력 문제로 직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생태계가 여전히 하드웨어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 회사로 분리된 현실도 문제로 제기된다.

AI 시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는 시스템 소프트웨어(system software)다. 사용자와 하드웨어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운영체계(OS)⋅컴파일러 등을 포괄한다. 단순히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각각의 관점이 아니라 양쪽을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산업계 응축된 역량이 중요한 이유다. 

 

시스코의 데이터센터. 기사와는 상관 없음./시스코
시스코의 데이터센터. 기사와는 상관 없음./사진=시스코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AI시대는 과거의 레이어(layer)들이 다 사라지고 완전히 융합된다"며 "단순히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각각이 아니라 양쪽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그런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팹리스들이 영세한 경우가 많다 보니 장기적 관점에서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모두 고려해 개발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당장의 투자금 유치가 중요하다 보니 칩을 내놓는 것에만 주력하게 되고, 칩 완성도는 낮아지는 문제가 생긴다"고 밝혔다. 

정부는 AI(인공지능) 반도체 발전 전략에 1253억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과학기술정통부(과기부)는 올해 AI 반도체 핵심기술 개발(R&D) 지원⋅혁신기업 육성⋅산업기반 조성 등 3대 분야 13개 사업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더해 과기부는 AI 반도체 소프트웨어 핵심기술 개발에도 올해 신규로 5개 과제를 발굴해 75억원 지원 계획도 내놓았다. 

 

AI반도체 지원사업 전체 구조도./자료=과기부

김휘원 반도체산업협회 본부장은 "A부터 Z까지 칩을 꽂는다고 그 시스템이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며 "그 사이에 필요한 소프트웨어⋅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소프트웨어⋅시스템과 사용자 사이의 소프트웨어 등 이런 측면에서 하드웨어를 이해하는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정부 지원⋅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환수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상무도 "AI 시장에서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일반적인 서비스용 소프트웨어⋅앱 소프트웨어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며 "핵심 노하우를 쌓아가는 반도체 산업계 역량이 중요하고 이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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