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최대 1조 적자 절감하는 LG전자
그에 따른 미래 기회비용도 감수해야

기업이 사업 하나를 정리하는 건 다가올 손실을 미리 끊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포기해야 할 미래 사업기회도 비용으로 떠안는 절차기 때문이다. LG전자가 매년 수천억원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스마트폰 사업을 일찍이 손절하지 못했던 이유다. 

KIPOST는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매각 또는 대폭 축소했을 때, 같이 감당해야 할 기회비용을 정리해봤다.

LG전자 스위블 스마트폰 '윙'. /사진=LG전자
LG전자 스위블 스마트폰 '윙'. /사진=LG전자

① 부품 협력사 풀

 

세트 회사로서 LG전자 경쟁력의 원천은 수많은 소재⋅부품 협력사다. 비록 LG전자의 스마트폰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고는 하나, LG전자가 관련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면 남아 있던 협력사 풀(Pool)도 뿔뿔이 흩어질 수 밖에 없다.

LG전자의 한해 스마트폰 판매량은 3000만대 수준이다. 이 중 2000만대는 생산자개발생산(ODM)이어서, 실제 개발과 생산에 관여하는 물량은 1000만대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 시리즈 판매량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제 그나마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디스플레이만 놓고 보면 약 8억달러(플렉서블 OLED 1개당 80달러 가정) 시장이 사라지는 것이다.

LG전자 스마트폰 부품 협력사 중 국내 업체로는 LG디스플레이(OLED⋅LCD), LG이노텍(카메라모듈 등), 뉴프렉스(PCB), 육일씨엔에스(커버유리), 토비스(디스플레이 모듈) 등이 있다. 이외에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각종 사출 재료들, 접착제, 필름류 모두 중소 협력사를 통해 조달한다.

LG 트윈타워. /사진=LG
LG 트윈타워. /사진=LG

LG전자가 수년 전부터 스마트폰 생산량을 줄여오면서 이들 회사 매출에서 LG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외부 매각하면, 이들 협력사들은 수년 내에 다른 고객사를 찾아 나서야 한다.

향후 HA(가전)⋅HE(TV)⋅VS(자동차전장) 등 여타 사업부의 소재⋅부품 구매 협상력(Buying Power)도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최근 세탁기⋅냉장고는 물론이고 TV, 자동차 전장부품까지 통신칩⋅메모리 등 반도체 부품과 디스플레이 모듈이 들어가지 않는 분야가 없다. 특히 자동차 전장부품은 통신과 인포테인먼트 기능이 핵심이다. 

협력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스마트폰 사업을 영위하는 LG전자의 구매력과 이를 떼어낸 LG전자의 구매력에는 차이가 크다.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 관계자는 “LG전자의 MC사업본부 구매량이 워낙 적어 당장 매출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다”며 “다만 고객사로서 LG전자의 잠재 구매력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② 무선통신 전문 인력 이탈

 

사업부가 대폭 축소되거나 MC사업본부가 외부에 매각될 경우 가장 우려되는 사항 중 하나가 인력 이탈 문제다. 기술 집약적인 스마트폰 사업 특성상 석·박사급 전문 개발 인력을 유지해왔으나, 사업이 종료된다면 일부 인력 이탈은 불가피하다. 

이는 사업 향방을 떠나 LG전자의 무선통신 분야 기술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미래 가전사업 경쟁력 한 축이 무선통신이라는 점에서 이는 치명적이다. 

권봉석 LG전자 사장이 지난 20일 이메일을 통해  “MC사업본부의 사업 운영 방향이 어떻게 정해지더라도 원칙적으로 구성원의 고용은 유지되니 불안해 할 필요 없다”고 강조한 것도 조직원들을 달래기 위해서다. 

업계 전망대로 기존 사업부 총원의 30%를 잔류시키고, 60%를 전환배치, 10%를 구조조정한다고 해도 무선 통신 분야 경쟁력 유지는 어렵다. 이미 LG전자는 영업적자가 시작된 2015년 2분기 기준 7941명이었던 MC 사업부 인력을 지난해 9월 3724명으로 5년 만에 절반 이상 줄였다.

권봉석 LG전자 사장. /사진=LG전자
권봉석 LG전자 사장. /사진=LG전자

스마트폰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한 임원급 외부 인사 수혈도 주기적으로 이루어졌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LG전자는 2015년 이후 MC사업본부장을 1~2년 주기로 교체했다. 조준호 사장, 황정환 부사장, 권봉석 사장, 이연모 부사장 등이 사업 선봉에 나섰으나 잇따른 수장 교체로 인해 외려 내부 인력 이탈이 속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달 말, 내달 초로 예상되는 LG전자 측 공식 입장이 발표될 경우 추가적인 인력 유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LG 내부 관계자는 “사업부 정리 작업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는 점에서 이미 나갈 사람은 나갔을 것”이라며 “MC사업본부 기존 인력들이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사업부로 배치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③ 모든 가전을 연결하는 IoT 허브, 스마트폰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의 끈을 끝내 놓기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IoT(사물인터넷)다. 최근 새로 나오는 가전제품들은 종류를 막론하고 스마트 기능이 추가되고 있다. 와이파이⋅블루투스⋅UWB(광대역통신)를 이용해 가전에 통신 기능을 부여한다. 

예컨대 세탁이 끝난 세탁기가 스마트폰에 알람을 주거나, 에어컨을 켜고 끄거나 온도를 설정하는 것도 스마트폰으로 컨트롤 할 수 있다. 

이 때 각 가전들을 한데 묶어 통제하는 장치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이 가정 내 IoT 기기들의 허브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같은 전략을 제일 잘 구사하는 회사가 애플이다. 애플은 아이폰과 연동되는 IoT 기기들을 묶어 ‘홈킷(Home Kit)’ 인증을 주고 있다. 홈킷 인증을 받은 기기들은 아이폰이 근처에 오면 조명이 자동으로 켜지거나, 아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자동으로 재생해주는 등의 기능을 지원한다. 

애플은 아이폰을 이용해 홈킷 인증 가전들을 컨트롤할 수 있다. /사진=애플
애플은 아이폰을 이용해 홈킷 인증 가전들을 컨트롤할 수 있다. /사진=애플

애플은 지난해부터 아이폰에 UWB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실내 IoT 생태계를 더욱 확장할 수 있는 판을 깔고 있다(KIPOST 2019년 9월 14일자 <[UWB 스마트폰, 공간에 눈뜨다]① 애플, 아이폰11에 UWB 칩 장착> 참조).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해도 IoT 기능이 들어간 가전을 만들수는 있겠지만, 정작 이들을 컨트롤할 ‘리모컨(허브)’은 갖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④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스마트폰 사업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CRT(브라운관)⋅ODD(광디스크드라이브)...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 앞서 시장 철수를 결정한 품목들이다. 이들 제품은 LG전자가 사업 철수를 검토하던 시점에 이미 시장이 쇠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쟁자에 등떠밀려 시장을 떠났다기 보다 수요 자체가 고꾸라져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종료했다.

스마트폰은 다르다. 연간 15억대 안팎에서 시장 성장이 멈춘지는 몇 년 지났지만, 판매량이 줄어드는 시장은 아니다. 경쟁자인 애플⋅삼성전자는 매분기 수조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PDP⋅CRT⋅ODD처럼 제품 자체가 용도폐기돼 시장에서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향후 스마트폰 시장이 어떻게 변화⋅발전해 나갈지는 현 시점에서 예단하기 어렵다. 앞서 예로 든 IoT 허브로서의 역할은 스마트폰이 진화해 나갈 여러 갈래 중 하나일 뿐이다. 가까운 미래에 AR(증강현실) 글래스를 비롯한 각종 웨어러블 기기와의 연계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구글글래스. 자체 스마트폰 사업이 없다면 향후 AR 글래스 사업 진출이 힘들 수 있다. /사진=구글
구글글래스. 자체 스마트폰 사업이 없다면 향후 AR 글래스 사업 진출에 제약이 될 수 있다. /사진=구글

한 반도체 업체 임원은 “‘애플 글래스’는 배터리 한계 탓에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연산은 아이폰에서 이뤄지고, 그 결과를 블루투스 신호로 받아 디스플레이 해주는 장치가 될 것”이라며 “자체 브랜드 스마트폰이 없다면 AR 글래스 시장 진출은 불가능한 셈”이라고 말했다.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최악의 경우 LG가 1999년 ‘빅 딜’로 반도체 사업을 빼앗긴 이후 관련 산업 성장에서 줄곧 소외됐던 전례가 재현될 수도 있다.

한 반도체 업체 대표는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정리하면 연간 수천억원 적자를 절감할 수 있겠지만 미래 사업 기회까지 한 번에 날려버리게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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