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첨단산업 계열사
적극적 IP 인수 나설 듯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협력 가능성도
실리콘웍스가 구본준 LG그룹 고문의 계열분리 대상에 포함되면서 LG그룹을 떠난다. 이번에 계열분리된 5개사 중 실리콘웍스가 유일하게 전통산업 범주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향후 신설지주사의 주력 성장 계열사가 될 전망이다.
LG그룹 내에서 LG반도체⋅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모두 역임한 인물은 구본준 부회장이 유일하다. 장치산업 및 첨단산업 육성 경험도 가장 풍부하다.
구본준 고문, 실리콘웍스 포함 5개사로 계열분리
㈜LG는 26일 이사회를 열고 ㈜LG의 13개 자회사 출자 부문 가운데 LG상사, 실리콘웍스, LG하우시스, LG MMA 등 4개 자회사 출자 부문을 분할해 신규 지주회사인 '㈜LG신설지주(가칭)'를 설립하는 안을 결의했다. ㈜LG신설지주는 이들 4개 회사를 자회사로 하며 LG상사 산하 판토스 등을 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으로 설립된다.
이사회 구성은 사내이사로 구본준 LG 고문(대표이사), 송치호 LG상사 고문(대표이사), 박장수 ㈜LG 재경팀 상무가 내정됐다. 사외이사는 김경석 전 유리자산운용 대표이사, 이지순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강대형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를 각각 내정했다. 또, 김경석⋅이지순⋅정순원 사외이사 내정자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신설지주는 앞으로 새로운 이사진에 의한 독립경영 체제로 운영한다.
이번에 계열분리 된 회사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실리콘웍스다. LG상사⋅하우시스⋅MMA⋅판토스 등이 모두 전통산업에 속하는 반면, 실리콘웍스만 유일한 첨단산업 군이다.
실리콘웍스는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업체다. 주로 디스플레이용 칩을 설계해 외부 파운드리에서 위탁생산한 뒤 LG디스플레이⋅LG전자에 납품한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전력관리칩(PMIC)도 공급한다.
지난 3분기 매출은 3672억원을 기록했다. LG디스플레이가 애플에 공급하는 아이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 실리콘웍스의 디스플레이 구동칩이 찹재되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 향후 애플 아이폰용 OLED 패널 중 LG디스플레이 공급 비중은 늘어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한동안 수혜를 받을 전망이다.
적극적 IP 인수 나설 듯
실리콘웍스가 신설지주의 주력 성장 계열사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건,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이어 자동차 전장화,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모든 신성장 산업은 시스템반도체 기술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국내는 산업기반이 허약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설계자산(IP)-팹리스-디자인하우스-파운드리를 축으로 하는 분업화 생태계가 활성화 돼 있다.
물론 지금처럼 디스플레이용 구동칩에 편중된 실리콘웍스의 사업 구조로는 글로벌 팹리스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디스플레이 업황에 따른 부침을 같이 겪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LG그룹 계열사들 일감을 받는 것도 앞으로 장담하기는 어렵거니와, 친정에 의존적인 방향은 미래 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향후 팹리스 사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IP나 다른 팹리스 인수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다. IP는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할 때 반복적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기능블록이다. 시스템반도체가 빌딩이라면, IP는 빌딩을 짓는데 필요한 철근⋅콘크리트 등 자재에 속한다. IP 경쟁력이 팹리스 경쟁력의 척도로 여겨지는 이유다. 이번에 엔비디아가 인수하기로 한 영국 Arm이 대표적인 IP 업체다.
물론 IP 인수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실리콘웍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046억원으로, 자체 실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신설지주가 실리콘웍스를 중심으로 성장축을 가져간다면, 다른 계열사 자산 매각을 통해 실탄 마련을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협력 가능성도
최근 생산능력을 늘려가고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와의 협력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재 실리콘웍스는 중국⋅대만 파운드리를 통해 자사 칩을 위탁생산하고 있는데, 이를 삼성전자 파운드리로 이전하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반도체 업체 임원은 “실리콘웍스는 가급적 위탁생산을 국내로 돌리고 싶어한다”며 “손보익 실리콘웍스 사장이 지난해 삼성전자 파운드리 포럼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첨단산업에서 삼성⋅LG 계열사 간의 경쟁관계를 감안하면, 계열분리 후에는 삼성전자와의 협력도 한결 편해진다. 실리콘웍스의 주력제품인 디스플레이용 구동칩이나 PMIC는 수 나노미터(nm)급의 파운드리 선단공정도 필요하지 않다. 한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실리콘웍스가 삼성전자로 위탁물량을 옮기지 못한다면, 유일한 장애물은 기존 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LG전자의 눈치를 봐서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