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떡' 기업 고객들 단숨에 확보... 컨트롤러 기술도 강화
CTF-FG 차이는?... 서로 다른 기반 기술 어떻게 융합할 지가 관건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본사 전경./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 사업을 인수한다. 인수 후 이 회사의 낸드 시장 점유율은 업계 2위로 껑충 뛰어오른다. 단순히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텔의 고객층과 SSD 기술까지 흡수하게 되면 시장 1위인 삼성전자도 위협할 정도다.

인텔 입장에서도 현명한 선택이다. 미세 공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앙처리장치(CPU) 등 기존 사업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낸드는 CPU보다 시장에 민감하며 대단위 투자가 필요한 장치 사업이다. 투자를 할 여력이 없다면, 그럴 수 있는 업체에 넘기는 게 낫다.

 

SK하이닉스, 인텔 낸드 사업 인수

SK하이닉스는 20일 인텔과 낸드 메모리와 저장장치(SSD) 사업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총 인수 대금은 90억달러(10조2546억원)다. 인수 대상에는 SSD와 낸드 단품, 웨이퍼 사업, 중국 다롄 생산라인(Fab) 등 생산 시설과 설계자산(IP), 인력까지 포함됐다. 

양사는 내년 말까지 주요 국가 규제 당국의 승인을 얻을 계획이다. 승인을 받으면 SK하이닉스는 70억달러(7조9758억원)를 인텔에 지급하고 SSD 사업과 다롄 팹을 인텔로부터 이전 받는다. 이후 2025년 3월 계약 완료가 되면 나머지 잔금인 20억달러(2조2788억원)를 인텔에 지급, 웨이퍼 설계와 생산 관련 IP, 연구개발(R&D) 인력 등 잔여 자산을 인수할 계획이다.

 

인텔 다롄 공장 전경. /사진=인텔
인텔 다롄 공장 전경./인텔

인텔은 거래 종결 시점까지 다롄 팹에서 낸드를 생산하며, 웨이퍼 설계와 생산 관련 IP들을 갖고 있기로 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SK하이닉스와 인텔의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각각 11.7%, 11.5%였다. 단순 계산하면 인수 후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23.2%다. 1위인 삼성전자(37.4%)보다는 낮지만, 2위인 키옥시아(전 도시바메모리, 17.2%)를 여유롭게 따돌리게 된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로 낸드 플래시 분야에서 기업용 SSD 등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는 “낸드플래시 기술의 혁신을 이끌어 오던 SK하이닉스와 인텔의 낸드 사업부문이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며 “서로의 강점을 살려 SK하이닉스는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적극 대응, 낸드 분야에서도 D램 못지 않은 경쟁력을 확보하며 사업구조를 최적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시장 2위로 껑충... B2B 시장 날개 달았다

이번 인수로 SK하이닉스는 인텔의 고객군과 기업용 SSD 등 컨트롤러 솔루션까지 확보하게 된다. 특히 인텔의 주 고객층은 그동안 SK하이닉스에겐 ‘그림의 떡’이었던 데이터센터 업체들과 기업들이다. 

3D 낸드 시장에서 인텔은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후발주자다. 하지만 인텔은 메모리 시대를 열었던 주역이자 CPU 사업으로 무수한 기업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그 덕에 지난 1985년 메모리 사업 중단을 선언한 이후 30년만에 다시 사업을 재개했지만 빠르게 점유율을 늘릴 수 있었다. 

메모리 유통 업계 관계자는 “특히 인텔의 SSD는 중국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업체들이 선호했다”며 “인텔이 다롄에 생산라인을 구축한 것도 중국 고객사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롭 크룩(Rob Crooke) 인텔 수석 부사장 겸 비휘발성 메모리 솔루션 그룹 총괄이 '인텔 메모리&스토리지 데이 2019'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인텔
롭 크룩(Rob Crooke) 인텔 수석 부사장 겸 비휘발성 메모리 솔루션 그룹 총괄이 '인텔 메모리&스토리지 데이 2019'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인텔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이두(Baidu)다. 바이두는 옵테인 시리즈를 포함, 인텔의 스토리지 솔루션으로 데이터센터를 구축했다. SSD는 핵심가치(KV)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에 도입, 기존 대비 시스템 지연시간을 10분의1로 줄였다.

기업용 SSD 시장은 일반 소비자용 SSD보다 부가가치가 높다. 보다 더 높은 요구사항을 만족해야하지만, 그만큼 가격도 비싸다.

특히 IDC 업계는 기업용 SSD 시장의 ‘큰 손’이다. 스토리지 서버처럼 SSD만으로 구성된 서버를 구축하기도 하고, 서버마다 SSD를 장착하기도 하다보니 한 번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거나 리모델링할 때 수백, 수천개의 SSD를 구매한다. 낸드 업계가 모두 기업용 SSD 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건 이 때문이다.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인텔은 기업용 SSD로 단숨에 점유율을 확보했다. 기업용 SSD만 놓고 보자면 전체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와 번갈아 1위를 할 정도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이 시장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SK하이닉스가 시장 점유율 12% 이상을 좀처럼 넘기지 못했던 건 이 때문이다.

솔루션 기술의 고도화도 SK하이닉스가 얻는 이득 중 하나다. 낸드는 단순히 ‘낸드’만 있다고 해서 동작이 되는 게 아니다. 컨트롤러가 낸드의 동작과 데이터 저장을 제어하고, 성능도 보상해주기 때문에 컨트롤러 기술 없인 낸드 기술을 100% 확보했다고 하기 어렵다.

SK하이닉스는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낸드 컨트롤러를 대만 실리콘모션(MSI) 등 외부 업체로부터 조달해왔다. 지난 2013년 대만 이노스터의 임베디드 멀티미디어카드(eMMC) 컨트롤러 사업을 인수하고, 지난해에는 미국 LAMD도 인수했지만 아직 100% 내재화는 하지 못했다.

낸드 컨트롤러 업계 관계자는 “컨트롤러 기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라, 솔루션 기술의 고도화도 SK하이닉스가 얻는 이득 중 하나”라며 “특히 데이터센터 업체들은 낸드 단품만 사고 컨트롤러만 따로 붙일 정도로 컨트롤러 기술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차지트랩플래시(CTF)와 플로팅게이트(FG), 둘 중 어디로 갈까

하지만 인텔과 SK하이닉스의 낸드는 기반 기술이 서로 다르다. SK하이닉스의 낸드는 차지트랩플래시(CTF) 기술을, 인텔의 낸드는 플로팅게이트(FG) 기술을 쓴다.

 

왼쪽부터 플로팅게이트 기반 2D 낸드와 2D CTF 기반 낸드, 3D CTF 구조./삼성전자

FG는 기존 2차원(2D) 낸드에 쓰여 이미 시장의 검증이 끝난 기술이다. 도체인 FG에 전하를 가두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FG 소재로는 폴리 실리콘이 쓰이는데, 미세화로 FG가 얇아면서 전자가 누설돼 셀 간 간섭 현상(Cross talk)이 나타났다.

이에 대응해 나온 게 CTF다. CTF는 부도체(주로 나이트라이드)로, FG 대신 CTF와 컨트롤 게이트를 층층이 쌓고 구멍을 뚫어 그 구멍에 전하를 가둔다. 나이트라이드 기반의 CTF에 구멍(Trap)이 많아 CTF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도 CTF 구조를 채택했지만 인텔은 3D 낸드에 있어서도 FG 구조를 고집했다. CTF 구조가 시간이 지나면 구멍에서 전하가 새어나가 데이터 유지에 문제가 생긴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업계에서 인텔의 QLC SSD는 타사의 QLC SSD보다 안정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랭크 헤이디(Frank Hady) 인텔 비휘발성 메모리 솔루션 그룹 펠로우는 지난해 국내에서 개최된 ‘인텔 메모리&스토리지 데이’ 행사 당시 “인텔이 적용한 플로팅 게이트는 전하 손실이 적으며 CTF 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하 유지 시간이 급락한다”며 “트리플레벨셀(TLC), QLC 등 셀 당 저장하는 비트 값이 높아질수록 적은 양의 전하 손실만 있어도 읽기에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FG 구조의 추가적인 이점도 있다. CTF는 셀 어레이를 제어하는 연산(Logic) 회로를 주변부(peri)에 반드시 배치해야한다. 하지만 FG는 셀 아래쪽에 연산 회로를 배치할 수 있어 비용도 저렴하고 다이(die) 부피도 작다. 연산 회로의 면적이 20~3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이가 크다.

 

SK하이닉스는 셀 옆에 붙어있던 주변 회로(Peri)를 셀 아래에 배치해 공간 효율성을 확보했다. 옥외주차장을 건물 내 지하주차장으로 만들어 공간 효율성을 확보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SK하이닉스 블로그
SK하이닉스는 셀 옆에 붙어있던 주변 회로(Peri)를 셀 아래에 배치해 공간 효율성을 확보했다. 옥외주차장을 건물 내 지하주차장으로 만들어 공간 효율성을 확보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SK하이닉스 블로그

CTF 업계 역시 이 로직 회로를 셀 아래로 옮기려 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페리페럴 언더 셀(PUC)’, 마이크론의 'CMOS 언더레이어(CUA)', 삼성전자의 '코어 오버 페리페럴(COP)’가 바로 이런 기술이다. 하지만 구조 특성상 FG처럼 공간 낭비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SK하이닉스는 CTF 구조 기반으로 128단 낸드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인텔은 FG 구조 기반으로 144단 낸드까지 개발 완료했으며, 이를 내년 출시할 예정이다. 단수는 두 회사가 비슷하지만, 기반 기술이 다르다보니 인수 후에는 어떤 방식이 주가 될 지 아직 가늠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낸드 업계의 주된 방식은 CTF지만, 인텔은 이미 FG 기술로도 고적층 낸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만큼 FG를 완전히 버리진 않을 것”이라며 “QLC처럼 셀 당 비트 저장량이 많은 낸드는 FG를 적용하고 싱글레벨셀(SLC)이나 멀티레벨셀(MLC)은 CTF 방식으로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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