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치 파운드리 공급 부족 심화... 갈 곳 잃은 중소 팹리스 업체들
삼성전자·DB하이텍 등 추가 투자 검토 중이지만 여의치 않아

미국의 SMIC 제재 탓에 8인치 파운드리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반도체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SMIC에 제품을 맡겼던 업체들은 곧장 파운드리 협력사를 바꾸고 나섰고, 그마저도 협력사를 찾지 못한 곳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DB하이텍은 추가 투자를 검토하고 있고, 중국 내에서는 중소 파운드리 업체에 주문이 몰리고 있다.

 

당장 파운드리를 바꿀 순 없지만, 어쨌든 바꿔야 산다

 

▲SMIC 사오싱 공장 조감도. /사오싱시 제공
SMIC 사오싱 공장 조감도. /사오싱시 제공

SMIC를 통해 차량용 상보성금속산화물반도체(CMOS) 이미지센서(CIS)를 생산하던 국내 팹리스 업체 A사는 최근 다른 파운드리 협력사를 찾기 위해 중국 외 중소 파운드리 업체들을 수소문하고 있다.

이미 생산에 들어간 프로젝트는 제품을 받을 수 있다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아무리 SMIC의 라인이 구 공정이라해도 장비 업체의 사후 서비스(AS) 등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 정상 가동하긴 어렵다. 새로 개발하는 제품에 들어가는 설계자산(IP)이 미국의 IP일 경우 추가로 승인을 받아야하는 번거로움도 생긴다.

규모가 있는 다른 파운드리를 알아보기도 여의치 않다. 이미 SMIC를 포함한 모든 파운드리 업체의 8인치 생산라인 가동률이 100%에 달하는 상황에서 SMIC에 대한 제재가 가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SMIC의 8인치 웨이퍼 생산능력(Capacity)은 월 24만3000장 가량이다. 이 물량이 한 번에 붕 뜬 셈이다.

그나마 주문 물량이 많은 글로벌 팹리스 업체들은 상황이 낫다. 퀄컴은 SMIC의 8인치 생산라인에서 전력관리반도체(PMIC)를 만들었는데, 제재가 가해지자마자 이 물량을 삼성전자 등 다른 파운드리 업체들로 돌렸다. 퀄컴의 PMIC 물량은 월 5~6만장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DB하이텍 등 국내 파운드리 업체는 물론 TSMC 등 대형 업체들도 예약이 꽉 차있는 상황”이라며 “엑스팹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업체들도 마찬가지라 소규모 파운드리 업체들을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당장 제조사를 바꾼다 해도 칩 설계 데이터를 해당 파운드리 업체에 맞게 전환(Transfer)하는 것부터 초도 생산, 검증에 이르기까지 빨라야 9개월 정도가 걸린다. 양산은 그 뒤에나 할 수 있다. 

삼성 디자인하우스 관계자는 “지금 당장 파운드리를 바꿀 순 없지만, 차세대 제품 양산을 하려면 하루 빨리 다른 파운드리 업체들을 물색해야 한다”며 “검증까지 전부 마친 업체들을 대상으로 파운드리 업체가 생산 일정을 잡으니 지금 라인이 꽉 차있더라도 미리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추가 투자 검토하는 파운드리 업체들... 하지만

파운드리 공장 내부 전경. /사진=TSMC
파운드리 공장 내부 전경. /사진=TSMC

파운드리 업체들도 추가 투자를 검토하고 나섰다. 

공급 부족 심화로 이미 8인치 파운드리 평균판매단가(ASP)가 지난해보다 10~20% 오른 상황이고, 내년에 또 이만큼이 더 상승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전망대로라면 구형 장비가 아닌 신형 장비로 8인치 라인을 꾸린다 해도 투자대비효율성(ROI)은 충분하다.

다만 대부분의 업체들이 8인치 생산라인에 유휴 공간이 없는 상황이라, 추가 투자를 한다면 증설을 해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ASP가 추가 상승하면 기존 8인치 고객 중 일부가 12인치 라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 역시 발목을 잡는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8인치 생산 용량을 당시 월 웨이퍼 투입량 기준 25만장에서 30만장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장비들이 입고되기 시작했고, 연말이면 30만장 수준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현재의 수요를 만족할 수는 없다. 

SMIC 제재 이후 삼성전자 내부적으로 8인치 추가 투자에 대한 것도 검토했지만, 실제 투자를 하긴 어렵다고 업체들은 입을 모은다. 이번 투자로 라인의 남은 공간을 모두 채웠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 평택 2라인에 파운드리 생산라인이 구축되는데 거기에 8인치를 굳이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삼성전자는 지금 12인치에 집중해도 모자른 상황”이라고 전했다.

 

DB하이텍 직원들이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DB하이텍
DB하이텍 직원들이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DB하이텍

DB하이텍도 추가 투자를 검토 중이다. 

8인치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이 회사는 지난해 4월 이후 지금까지 거의 100%에 가까운 공장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월 12만2000장 수준이었던 생산능력을 보완 투자로 올해 13만장까지 늘렸지만, 수주잔량(수주한 물량 중 생산하지 못한 물량)이 지난해 9만장에 달한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남은 공간이 없어 추가 투자시 라인을 증설해야한다.

업계 관계자는 “DB하이텍은 12인치 투자와 8인치 투자를 두고 고민했었는데, SMIC 제재 이후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8인치 투자로 방향이 기울어지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 투자를 한다 해도 생산라인 착공부터 가동까지 1~2년이 소요될텐데 그때까지 이 수요가 이어질지가 문제라 아직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비 업계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는 정부 주도로 외국 업체들의 중국 내 구 생산라인을 인수하거나  중소 파운드리 업체들의 구공정 라인의 생산용량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SMIC 제재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팹리스 업계가 중국 업체의 생산라인을 활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자국 내 수요를 해소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8인치의 단가가 올라가면 팹리스 업체들 중 12인치 생산라인을 활용할 수 있는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12인치로 넘어갈 것이고, 그럼 수요도 안정화될 것”이라며 “파운드리 업체 입장에서는 증설까지 해가면서 생산용량을 늘리기 애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