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 떨어진 미국 장비 업계... 푸젠진화처럼 즉각 철수할 수도
200㎜ 웨이퍼 생산라인 공급부족 심화... 그 어느곳도 물량 감당 못해

미국의 SMIC 제재가 현실화된다면 정도와 무관하게 반도체 업계가 받을 영향은 화웨이 때보다 더 크다. 화웨이가 잃어버릴 시장점유율은 다른 업체들이 상당부분 승계하지만, SMIC의 공백은 업계 전반적인 생산능력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당장 영향을 받는 건 장비 업체들이다. SMIC의 신규 생산라인(Fab)에 장비를 납품한 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고객사들도 급하게 다른 파운드리 협력사를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 SMIC의 메인 공정은 가뜩이나 공급 부족인 200㎜ 웨이퍼 생산라인이다. 현재 200㎜ 웨이퍼 생산용량에 여유가 있는 파운드리 업체는 없다.  

 

SMIC 제재가 현실화되면

SMIC 상하이 본사 전경/출처 SMIC.
SMIC 상하이 본사 전경/출처 SMIC.

최악의 경우 SMIC는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차세대 공정 개발과 기존 공정 업그레이드는 물론,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고객들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도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SMIC는 지난해 14나노 대량 양산을 시작하고, 올해 2세대 공정을 거쳐 연말 7나노 공정 시생산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약 3조원의 금액을 들여 상하이에 300㎜ 웨이퍼 기준 월 3만5000장 규모의 SN1 생산라인(Fab)을 지었고, SN2 라인도 증설하고 있다. 추가 자금을 모으려고 올해 초 홍콩 증시에 상장, 중국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도 진행했다.

하지만 제재가 발표되면 라이선스를 얻기 전까지 장비 업체들을 포함, 미국 기술을 쓰는 SMIC의 협력사들은 SMIC에 그 어떤 서비스도 제공할 수 없다. 

중국 외 지역의 반도체 제조사들은 장비 구매 시 장비 비용과 설치 및 유지보수 비용을 함께 묶어 계약을 진행한다. 제재 조치가 현실화되더라도 보통 유예기간을 주고, 제재 발표 전 맺은 계약은 라이선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이전 맺은 계약을 이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장비 계약과 설치 및 유지보수 계약을 별도로 맺는다. 설치 및 유지보수 계약은 기간별로 진행되기 때문에 제재가 발표되면 다음 계약부터는 라이선스를 받아야한다. 미 상무부가 라이선스를 내주지 않으면 설치와 유지보수가 중단된다.

 

푸젠진화 공장 이미지. /푸젠진화 제공
푸젠진화 공장 이미지. /푸젠진화 제공

비슷한 사례가 푸젠진화반도체(JHICC)다. 지난 2018년 JHICC가 수출제한 리스트에 오르자 미국 장비 업체들은 불과 24시간도 되지 않아 JHICC의 D램 생산라인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태가 장기화되면 차세대 공정 개발이나 기존 공정 업그레이드 모두 할 수 없게 되고, 도태된 SMIC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공정 기술은 장비 업체, 설계자산(IP) 업체 등 협력사들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미국 업체와 기술을 완전히 배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수혜 예단하긴 아직... 구 공정 공급 부족 심화

구 공정 시장의 공급 부족도 예상된다. 

전체 반도체 업계에서 절대 다수는 최신 공정이 아닌 구 공정을 쓴다. SMIC의 메인 공정 역시 40㎚~0.18㎛ 공정이다. 지난 2분기 기준 SMIC의 전체 매출에서 40~65㎚, 0.15 및 0.18㎛ 공정이 각각 약 30%씩을 차지했다. 최신 14·28나노 공정의 매출 비중은 같은 기간 10% 미만에 그쳤다. 

지난 1분기 기준 SMIC의 지역별 생산라인(Fab)과 생산량 현황./SMIC

이 중 0.35㎛에서 90㎚ 공정까지가 200㎜ 생산라인에서 진행된다.

지난 1분기 기준 SMIC의 200㎜ 생산라인의 생산용량은 월 웨이퍼 투입량 기준 약 23만3000장이다. 

200㎜ 생산라인에서는 아날로그 반도체,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전력 반도체, 무선통신(RF) 반도체 등이 생산된다. 마이크로제어장치(MUC), 일부 RF 스위치, 전력관리반도체(PMIC)는 300㎜ 웨이퍼 공정으로 넘어가는 추세지만 나머지는 굳이 300㎜ 웨이퍼 공정을 쓸 필요가 없다. 

중장기적으로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파운드리는 구 공정의 생산용량(Capacity)을 잘 늘리지 않는다. 제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파운드리 업체가 생산용량을 늘릴 리는 없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줄어들면 공급 부족 현상이 초래되는 건 당연하다. 

SMIC의 200㎜ 웨이퍼 생산라인은 최근까지도 가동률이 100%에 가까웠다. 

다른 파운드리 업체들 역시 200㎜ 웨이퍼 생산라인의 여유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얘기다.

TSMC·UMC 등 상위권 파운드리 업체들의 가동률 역시 같은 기간 100%에 육박했다. 그나마 타워재즈·뱅가드인터내셔널세미컨덕터(VIS) 등의 200㎜ 생산라인에 월 2~3만장 정도의 여유가 있긴 하지만, SMIC 고객사들의 수요를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200㎜ 웨이퍼 생산라인의 가동률은 현재 90% 중반대로, 전체 생산용량은 월 25만장 정도다. DB하이텍의 가동률 역시 같은 기간 100%에 가까웠다. 

파운드리 업계 관계자는 “일단 상황을 관망해 추가 투자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이나, 대단위 투자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며 “제재가 얼마나 길어질 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금 상황이 유지된다면 길어도 3년 내 SMIC의 고객사들이 빠져나올 것으로 보고는 있다”고 말했다.

 

발칵 뒤집힌 미국 반도체 장비 업계

▲식각 장비 위 반도체 웨이퍼./램리서치
▲식각 장비 위 반도체 웨이퍼./램리서치

SMIC가 받은 타격은 고스란히 협력사들로 이어진다. 하이실리콘 제재 당시 파운드리 업체들은 하이실리콘의 물량을 다른 반도체 업체들의 물량으로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파운드리는 하이실리콘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차원이 다른 얘기다.

특히 미국 장비 업체들의 손해가 막심하다. 

반도체 생산 라인의 투자 규모는 최소 수천억 원에서 최대 수조원에 달한다. SMIC의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파운드리 업체들의 투자 없이 즉각 손해를 메울 길이 없다. SMIC 제재로 인한 여파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파운드리 업체가 대규모 투자를 집행할 이유는 없다.

장비는 만들었는데 납품할 곳이 사라지면 손해는 온전히 장비 업체들의 몫이다. 그나마 재료 업체들은 수요가 꾸준하지만, 장비 업체들은 당장 팔 곳이 없다. 장비를 이미 납품했어도 계약금은 장비 선적, 구축, 가동 등 단계별로 주는데다, 앞서 설명했듯 설치 및 구축은 아예 계약조차 맺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적이 아닌 외국 업체들에게도 여파가 미친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200여개의 장비로 구성되기 때문에, 미국 장비 업체가 빠지면 전체 공정을 진행할 수 없게 된다. 대금 지급을 언제 끝낼 수 있을 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료 역시 사용기한이 있으니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수백억원 어치의 장비들을 SMIC에 납품하기로 했던 장비 업체들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국내 장비 업체들 중에선 SMIC의 신규 생산라인에 장비를 공급하는 곳이 없어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깊어지는 미-중 갈등... 중국 내 ‘국산화’ 열풍에 불지펴

미국 위스콘신주 디스플레이 단지 기공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궈타이밍 회장이 첫 삽을 뜨는 모습. /사진=백악관 트위터
미국 위스콘신주 디스플레이 단지 기공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궈타이밍 회장이 첫 삽을 뜨는 모습. /사진=백악관 트위터

중국 반도체 업계 역시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상 이번 제재가 겨냥하는 건 SMIC가 아니라 중국 반도체 업계이기 때문이다.

SMIC는 중국 반도체 업계의 자존심이다. 비록 선도 업체들보다 기술력은 떨어졌지만,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발표하기 전부터 성장해온 SMIC는 그 자체로 중국 반도체 산업계의 대들보였다. 

SMIC의 매출 중 60% 가량이 중국 반도체 업체들로부터 나온다. SMIC에 제재가 가해지면 SMIC가 확보해둔 IP들로 제품을 생산하는 이들 고객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설계를 뒤집어 파운드리 업체를 바꾸기도 쉽지 않다. 업계가 중국의 거센 보복을 예상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그랬듯 중국도 수출 혹은 수입 제한 기업 목록 명단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중국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중국 반도체 굴기’를 내건 자신감 뒤에는 뛰어난 역량을 갖춘 반도체 설계 업체들과 상대적으로 열악한 여건에서도 제조 기술을 개발해온 SMIC가 있다”며 “그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양국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중국 반도체 굴기에는 더욱 힘이 실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 상무부가 생산 기술을 무기로 파운드리 업체들이 하이실리콘의 제품을 만드는 걸 막았을 때도 업계는 이같은 우려를 했었다.(참고 2020년 8월 13일자 <반도체 장비 업계가 중국의 10월을 두려워하는 이유>)

업계 관계자는 “SMIC를 제재하면 중국은 SMIC를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할 것”이라며 “IP, EDA툴, 장비 등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국산화 작업이 빨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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