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회사 합병시 모바일부터 서버까지 모두 쥐고 있는 GPU 업체 탄생
갖은 우려에도 손을 잡으려는 건 AI 때문... 인텔·AMD 장기적 타격

앞서 업계의 우려는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시작됐다. 이같은 우려를 엔비디아도, Arm도 모를리 없다. 미-중 갈등이 끝나지 않은데다 Arm차이나의 항명 사태까지 겹치면서 중국의 독과점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넘어야할 가장 큰 벽, 독과점 규제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할 수 있었던 까닭 중 하나는 소프트뱅크가 반도체 사업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독과점 규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Arm의 고객사들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소프트뱅크와 달리 엔비디아는 반도체 업체다. 엔비디아는 Arm과 자사가 서로 비즈니스 모델도, 주력하는 시장도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설계자산(IP)과 하드웨어 명령어집합(ISA) 차원에서 보면 겹치는 부분이 없지않다. 각국의 독과점 규제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사진=ARM
/사진=ARM

Arm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 세계에 출하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의 95% 가량에 이 회사의 IP가 들어있다. 이 중 GPU IP 점유율은 지난 2분기 기준 43%로 시장 점유율 1위다. 그 뒤를 퀄컴(36%)과 애플(12%)이 뒤따르고 있다. 

서버·PC 시장에서는 Arm의 영향력이 미미하지만, 반대로 이 시장은 엔비디아가 활약하고 있다. 애초에 GPU를 만들어 판매하는 업체가 엔비디아·AMD·인텔 뿐이다. 엔비디아와 AMD가 독립 GPU 제품군을 판다면, 인텔은 시스템온칩(SoC)에 내장 GPU(eGPU)를 넣는다. 지난 2분기 기준 PC용 GPU 점유율은 인텔(64%), 엔비디아(19%), AMD(18%) 순이었다. 

서버용 GPU는 AMD와 엔비디아 두 회사만 공급하는데, 엔비디아의 서버용 GPU 매출이 AMD의 서버용 GPU 매출 대비 3배 가량 크다. 이를 감안하면 엔비디아의 서버용 GPU 시장 점유율은 75% 가량으로 추정된다.

두 회사가 서로 다른 영역에서의 독과점 업체지만, 양사가 합병된다면 엔비디아의 GPU 점유율은 모바일 영역까지 넘어간다. 더군다나 엔비디아는 Arm 생태계에 있는 업체들이 자사의 그래픽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자체 GPU IP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독과점 논란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비슷했던 경우가 NXP반도체와 퀄컴의 합병이다. 지난 2016년 두 회사가 합병을 준비할 당시 퀄컴은 모바일 AP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였고, NXP반도체는 차량용 반도체 1위 업체였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던 이들 업체는 결국 중국의 독과점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고, 합병은 무산됐다.

 

중국과 미국, 그리고 영국

▲화웨이의 기린(Kirin) 프로세서. /화웨이 제공
▲화웨이의 기린(Kirin) 프로세서. /화웨이 제공

가뜩이나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갈등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갈등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Arm의 유력한 인수 대상자로 엔비디아가 거론된다는 이야기가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Arm차이나의 항명 사태가 벌어졌다는 건 Arm 역시 이 영향권 안에 있다는 얘기라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의 제재 이후에도 중국 반도체 업체들 중 Arm의 IP를 쓰는 업체가 많다”며 “양국간 갈등의 핵심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인데, 미국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을 중국이 손 놓고 볼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IT 기업 자체가 손에 꼽히는 영국에서는 국가 핵심 기술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rm의 공동 설립자인 헤르만 하우저(Hermann Hauser)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Arm의 재매각에 영국 정부가 개입해야하며, 엔비디아에 Arm을 넘기는 건 비참한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엔비디아는 이에 세계적인 수준의 인공지능(AI) 연구 및 개발 센터를 영국에 세우는 한편 Arm 본사 역시 영국에 유지할 것이라 밝혔다. Arm의 IP 역시 영국에 등록된 상태로 유지된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엔비디아는 최근 영국 정부와의 논의를 시작했다.

이에 대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인수는 AI 컴퓨팅 분야에서 강한 리더십을 가진 두 업체를 결합해 모든 종류의 컴퓨팅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라며 “이같은 기회가 온 건 내 일생의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고, 플랜A(인수 성공)가 실현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려는 이유

이같은 우려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게 엔비디아와 Arm이다. 그럼에도 양사가 힘을 합치려는 이유는 결국 AI다. 

엔비디아는 Arm 인수를 발표하면서 그 무엇보다 AI를 강조했다. AI는 데이터센터부터 엣지(Edge)까지 모든 종류의 컴퓨팅 기기에 장착되는 추세다. 현재는 각 기기마다 원하는 사양이 다르기 때문에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최적화도 어렵다. 

결국 AI 시대에는 여러 계층의 기기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과 확장성을 갖춘 컴퓨팅 아키텍처를 가진 업체가 승기를 잡게 된다. 

엔비디아와 Arm이 노리는 건 이 점이다.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 고성능컴퓨팅(HPC) 등 성능·전력소모량·면적 중 성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시장에 강하다. 반면 Arm이 주력하고 있는 모바일 시장은 상대적으로 성능보다 전력소모량과 면적을 먼저 따진다. 

게다가 엔비디아는 GPU 기술을, Arm은 CPU 기술을 가지고 있다. GPU는 CPU 없이 단독으로 작동하지 못하며, CPU는 그래픽·AI처럼 많은 데이터를 한 번에 처리해야하는 프로그램을 구동하기 어렵다. 

사이먼 세자르 Arm 최고경영자(CEO)는 14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제 우리 앞에 있는 세상은 AI에 의해 정의된다”며 “Arm과 엔비디아의 결합을 통해 과거 30여년간 그랬던 것처럼, 또다른 여정을 떠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의 실시간 대화형 인공지능(AI) 플랫폼./엔비디아
엔비디아의 실시간 대화형 인공지능(AI) 플랫폼./엔비디아

두 회사의 주장대로 인수가 성공하면 엔비디아는 AI 시대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업체가 된다. 서버 CPU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인텔은 GPU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엔비디아와 마찬가지로 엣지 시장에서는 힘을 못 쓰고 있다.

CPU와 GPU 기술을 모두 가진 AMD 역시 아직 서버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와 인텔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고, 엣지 시장에서도 역시 실적이 전무하다. 고성능 GPU로는 아무래도 엔비디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수 후에 가장 타격을 받는 건 인텔과 AMD”라며 “엔비디아와 Arm의 결합은 인텔와 AMD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엣지 시장을 한번에 확보할 수 있으면서도 AI 기술력을 가진 업체가 탄생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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