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00억달러 규모로 사상 최대... 인공지능(AI) 시대 걸맞은 회사로
국내 반도체 업계는 발칵 뒤집혀... 협력사에서 경쟁사로 바뀔까 우려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공식화했다. 총 400억달러(약 47조3270억원) 규모의 이번 거래는 지금까지 발표된 반도체 업계 인수합병(M&A) 사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각국의 독과점 심사라는 장벽이 아직 남아있지만 고객사인 팹리스 업계는 향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엔비디아, Arm 인수 공식화

엔비디아는 13일(현지 시간) 소프트뱅크비전펀드로부터 Arm을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거래 규모는 총 400억 달러로, 엔비디아는 자사 보통주 215억달러(25조4538억원)와 현금 120억달러(14조2068억원)를 소프트뱅크에 지불하고 Arm이 특정 재무 성과 목표를 충족하는 경우 최대 50억달러의 현금 또는 보통주를 추가로 주기로 했다. Arm 직원들에게는 약 15억달러 어치의 엔비디아 지분이 발행된다. 

인수 후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 지분의 10% 미만을 갖게 된다.

엔비디아는 보도자료를 통해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컴퓨팅 기능과 Arm 생태계를 결합하면 훗날 AI 시대에 걸맞은 입지를 갖춘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 조합은 회사, 고객 및 업계 모두에게 엄청난 이점을 제공한다”며 “Arm의 생태계를 위해이 조합은 Arm의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고 엔비디아의 세계 최고의 GPU 및 AI 기술로 IP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거래 완료 시점은 18개월 후인 내후년 3월로 예측된다. 아직 Arm은 지난 2016년 소프트뱅크에 인수된 후 시작한 사업들도 마무리짓지 못했다. Arm은 엔비디아에 인수된 후에도 지금까지의 오픈 라이선싱 모델은 물론 사명과 브랜드 정체성도 유지할 계획이다. 

 

‘적과의 동침’ 우려하는 반도체 업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Arm 차이나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프트뱅크의 Arm 매각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사진=소프트뱅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Arm 차이나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프트뱅크의 Arm 매각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사진=소프트뱅크

소식을 접한 국내 반도체 업계는 아침부터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소자 업체부터 팹리스·디자인하우스에 이르기까지 Arm의 영향이 닿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Arm은 반도체를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레시피인 IP와 이 IP의 기반이 되는 하드웨어 명령어 집합(ISA)을 가진 업체다. ISA와 IP를 모두 라이선스하기 때문에 삼성전자처럼 Arm의 중앙처리장치(CPU) 코어 IP를 그대로 가져다쓰는 고객도 있고, 애플·퀄컴처럼 ISA 자체를 라이선스해 자체 코어 IP를 개발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ISA를 가진 다른 업체들 중 오픈소스 ISA를 제외하고 Arm처럼 모든 ISA와 IP를 라이선스할 수 있게끔 공개하는 업체는 없다. 인텔은 IP 일부를 라이선스 모델로 제공하고 있지만, ISA 자체는 라이선스를 내주지 않고 있다. AMD도, Arm을 인수한 엔비디아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의 브랜드 '엑시노스'./삼성전자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의 브랜드 '엑시노스'. 엑시노스 역시 Arm의 IP를 쓴다./삼성전자

게다가 Arm의 IP는 CPU부터 GPU, 신경망처리장치(NPU), 마이크로제어장치(MCU)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컨트롤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사물인터넷(IoT) 시스템온칩(SoC) 등 국내 업체들의 대부분의 제품에 Arm IP가 쓰인다는 얘기다.

엔비디아가 보도자료에서 밝혔듯, Arm 코리아에서는 국내 고객사에 인수 후에도 Arm의 오픈 플랫폼 정책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 중장기 대응책을 세우는 모습이다.

RISC-V와 IBM의 파워(Power), MIPS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ISA가 오픈소스로 전환된 상태에서 Arm이 당장 라이선스 정책을 오픈 플랫폼이 아닌 클로즈드 플랫폼으로 바꿀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오픈 플랫폼을 유지한다고 해도 연구개발(R&D) 방향이나 제품 포트폴리오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엔비디아만 하더라도 고성능 GPU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다, 상대적으로 저가형 GPU 제품군은 출시 주기가 길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NPU나 코어텍스 A처럼 엔비디아와 접점이 있는 제품군은 기술 개발이 활발해지겠지만, 코어텍스 M이나 코어텍스 R처럼 코어텍스 A 대비 수익성이 낮은 IP 제품군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수도 있다”며 “그럼 고객사들은 코어텍스 A로 옮기는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픽 제공=인텔.=
그래픽 제공=인텔.

Arm의 주인이 반도체 완제품 업체가 되는 것도 부담이다. 특히 Arm에 GPU IP 라이선스를 받는 고객사 입장에서는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되는 셈이다. 엔비디아가 스마트폰용 GPU 개발을 포기했다지만 스마트폰이 점점 더 대화면으로 가고 있어 노트북PC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제 다시 사업에 뛰어들지 모른다.

같은 이유로 Arm의 IP로 서버용 제품 개발을 하던 업체들도 당혹감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Arm의 컴퓨팅 기술과 자사의 GPU 기술을 더해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그 슈퍼컴퓨터가 상용화될 경우 나머지 업체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미 모바일 AP에서 GPU는 2/3 가량을 차지하고, 갈수록 고화질 스트리밍 및 게이밍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GPU 기술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삼성전자처럼)자체 GPU 기술이 없는 회사는 Arm의 GPU IP를 라이선스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제품 개발 사양이나 개발 로드맵 등 기밀 사항이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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