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형 데이터 처리 구조 도입으로 마이크로 데이터센터 투자 증가
기존 데이터센터도 메모리 장벽 난제 해결 박차... 메모리·로직 모두 수혜

역사적으로 반도체 시장은 데이터가 생성·분석되는 기기가 바뀌고, 데이터 처리 흐름이 변할 때마다 급격히 성장했다. PC가 그랬고, 스마트폰이 그랬으며, 이제 데이터센터가 그 바통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는 PC·스마트폰보다 물량이 적고, 투자 주기 역시 길다. 5세대 이동통신(5G)과 함께 등장한 엣지 컴퓨팅, 그리고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의 아키텍처 변화 등으로 반도체 업계가 어떤 실익을 얻을 수 있을까.

 

다음 먹거리는 데이터센터

PC와 스마트폰이 데이터를 생성한다면, 데이터센터는 이 기기들이 만든 데이터를 처리한다. 현재 수많은 IT 단말로부터 들어오는 신호는 각 단말이 아닌 해당 기기와 연결된 중앙 데이터센터에서 처리된다. 

처리해야하는 데이터의 양이 많지 않았을 때는 이같은 중앙집중형 구조가 더 나았다. 하지만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하고 실시간 대응해야하는 적용처가 늘어나면서 중앙집중형 데이터 처리 방식은 한계에 부딪혔다. 데이터 전송 거리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처리 속도를 높이기가 어려웠고, 중앙 데이터센터의 성능 개선 속도는 트래픽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느렸다.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업계는 분산형 데이터 처리 방식을 도입하는 한편 중앙 데이터센터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게 아키텍처를 바꾸고 나섰다.

분산형 데이터 처리 방식은 데이터가 생성되는 곳과 중앙 데이터센터 사이에 엣지 컴퓨팅 장치를 배치, 데이터를 1차로 처리하게 하거나 실시간 대응이 필요한 데이터를 우선적으로 처리한다. 데이터 전송 거리가 짧아져 결과적으로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중앙 데이터센터의 컴퓨팅 부담도 줄어든다. (참고 KIPOST 2020년 7월 30일자 <스마트폰 그 다음은 엣지... 다시 맞붙는 Arm과 인텔>) 

이와 함께 대형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업계를 중심으로 한 기존 생태계에서도 아키텍처를 바꾸고, 광학 연결을 도입하는 등 중앙 데이터센터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 엣지 컴퓨팅 열풍에 대응하고 있다. 

 

엣지 컴퓨팅, 마이크로 데이터센터로 얻는 이득

엣지 컴퓨팅 장치는 대부분 마이크로 데이터센터 형태다. 중앙 데이터센터만큼 컴퓨팅 성능이 높을 필요는 없지만, 엣지 컴퓨팅 장치 역시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할 수 있어야한다. 고속 상호 연결 장치도 필요하며 보안 허점 역시 증가하기 때문에 보안 관련 솔루션들에 대한 수요도 증가한다. 여기에 일부 업체들은 인공지능(AI)까지 접목할 계획이다.

엣지 컴퓨팅 장치는 어떻게 구성돼있을까.

 

SKT는 컴파일러부터 런타임까지 AIX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모두 개발했다./SKT

SK텔레콤의 경우 5G 기지국의 디지털 처리부(DU)에 자체 개발한 AI 가속기 카드 ‘AIX’를 적용, 5G 모바일 엣지 컴퓨팅(MEC)을 구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각 DU 서버마다 AIX 카드가 20개씩 장착되는데, AIX 카드 당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기반 AIX 시스템온칩(SoC)이 2개씩 들어간다.

AIX SoC는 자일링스의 FPGA를 기반으로 하며, D램을 8개 쌓은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적용돼있다. SK텔레콤의 5G 기지국 수는 지난 1월 기준 2만8000여개고, 각 DU 서버에 삼성전자의 4세대 256Gb 낸드 기반 8TB의 SSD가 내장된다고 가정하면 FPGA 112만개, D램 44만8000개, 512GB 낸드 패키지 44만8000개가 들어가는 셈이다.

SK텔레콤의 망은 국내만 커버하고, 아직 5G 인프라 투자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총 가용시장(TAM)은 더 커진다.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4G 기지국의 수는 약 700만개로 추정된다. 주파수 특성상 5G 기지국은 4G 기지국보다 3~4배 정도 더 촘촘히 구축돼야하기 때문에 단순 계산해도 약 2100만개다. 

통신사들이 단순히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B2C 서비스 외에도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등 5G 기반 B2B 통신 서비스까지 제공할 계획인만큼 엣지 컴퓨팅 장치의 실질적 수요는 이보다 크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엣지 컴퓨팅 시장 규모는 매년 37.4% 성장, 2027년 434억달러(약 51조5158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서버 업계 관계자는 “물량으로 따지자면 스마트폰 시장보다 작지만, 서버당 들어가는 칩 수가 많고 수익성이 높다”며 “5G에 따른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헬스케어 등 B2B 서비스의 성패 또한 시장을 키우는 데 한몫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 데이터센터의 변화·발전으로 얻는 이득

중앙 데이터센터 업계 역시 대응에 나섰다. 데이터센터 성능 개선의 발목을 잡는 ‘메모리 장벽’을 아키텍처를 수정, 해결하려는 움직임이다. 메모리 장벽은 프로세서의 성능 개선 속도를 메모리가 따라잡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성능 병목 현상을 뜻한다.

 

IBM의 파워 프로세서 로드맵./IBM

최근 개최된 ‘핫칩스(Hotchips) 2020’에서 IBM은 이전 파워9(Power9) 프로세서 대비 에너지 효율성과 용량, 성능을 최대 3배 개선한 파워10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파워 10 프로세서는 ‘메모리 인셉션’ 및 ‘메모리 클러스터’ 기능을 지원한다. 

현재 각 프로세서는 해당 시스템에 내장된 메모리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시스템에 연결된 메모리를 쓰려면 추가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메모리 인셉션’은 물리적으로 다른 IBM 파워 시스템에 연결돼있는 메모리를 별도 하드웨어 없이 쓸 수 있는 기능이다. ‘메모리 클러스터’ 기능은 전체 시스템의 메모리를 묶어 마치 하나의 시스템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 두 기능을 활용하면 단일 시스템 당 가용 메모리의 용량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단일 시스템 당 메모리 채용량을 현격하게 줄일 수 있고, 메모리를 바꾸지 않은 채 프로세서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IBM만이 아니다. 앞서 인텔은 기존 메모리 계층에서 벗어나 D램의 속도와 낸드의 저장성을 겸비한 메모리 ‘옵테인(Optane)’ 제품군을 출시했다. 초기 옵테인은 이도 저도 아닌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업체들의 채택이 줄을 잇고 있다.(KIPOST 2019년 9월 26일자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에 옵테인이 필요한 이유>)

 

반도체 다이의 크기와 수율, 생산량 사이의 상관관계./Integrated Circuit Engineering Corporation
반도체 다이의 크기와 수율, 생산량 사이의 상관관계./Integrated Circuit Engineering Corporation

이같은 변화·발전은 특히 로직 업계에 호재다. ▲프로세서가 쓸 수 있는 메모리 가용량이 늘어나고 ▲줄어든 메모리 대신 프로세서의 크기를 키워 연산 능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랜지스터 밀도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연산 성능을 높이려면 로직 반도체의 크기가 커질수밖에 없다. 이는 곧 파운드리 업체와 로직 반도체 설계 업체의 수익성 증가로 이어진다.

로직 반도체가 커지면 웨이퍼 당 생산량과 수율이 낮아진다. 특히나 극자외선(EUV) 기술을 쓰는 첨단 공정의 경우 한 번에 패터닝할 수 있는 영역이 작기 때문에 수율 개선이 힘들다. 필요한 물량을 생산하기 위해 들어가는 웨이퍼 투입량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얘기다.

파운드리 업계 관계자는 “첨단 공정을 제공하는 파운드리 업체가 TSMC와 삼성전자 2개사로 좁혀지면서 수익성도 이전보다 크게 개선된 상황”이라며 “독자 반도체를 개발하는 IDC 업체들도 늘어나고 있어 전용 반도체(ASIC) 서비스 시장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IDC 업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광 기반 연결 솔루션 역시 특수 로직 공정을 기반으로 한다. 광학을 활용하면 기존 전기적 연결보다 훨씬 더 작은 에너지를 쓰면서도 넓은 대역폭으로 더 빠르게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고, 서로 트레이드오프 관계인 거리와 대역폭 사이의 균형도 신경쓸 필요가 없다.

 

아야랩스의 테라파이. 글로벌파운드리(GF)의 45나노 RF SOI 공정에서 생산되며, 올해 상반기 상용화됐다./아야랩스
아야랩스의 테라파이. 글로벌파운드리(GF)의 45나노 RF SOI 공정에서 생산되며, 올해 상반기 상용화됐다./아야랩스

인텔의 광학 솔루션 협력 업체인 아야 랩스(Ayar Labs TeraPHY)에서는 반도체 칩 간 대역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섬유 기반 입출력(I/O) 솔루션 ‘테라파이(TeraPHY)’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글로벌파운드리(GF)의 45나노 RF SOI 공정에서 생산된다.

메모리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또한 채용량은 줄어들어도 고대역폭메모리(HBM)처럼 기존 메모리 장벽을 넘어설 제품에 대한 수요가 클 것”이라며 “엣지 컴퓨팅과 중앙 데이터센터의 변화 발전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향이 됐든 데이터센터가 스마트폰을 이은 새로운 시장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