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도마 위에 오른 건 TSMC... 5나노 공정에 문제가 있다?

애플이 아이폰12 출시 지연을 공식화하면서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건 애플의 5나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독점 생산하는 대만 TSMC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TSMC의 생산 일정에 차질이 생겼고, 수율도 엉망이라는 게 요지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가능성 1. TSMC의 5나노 양산 수율에 문제가 있다? (X)

TSMC가 5나노 양산을 시작한 건 지난 4월이다. 당초 3월에 양산을 시작하기로 하고 2월까지 라인 셋업(Set-up)을 끝냈다. 다만 코로나19 탓에 소재⋅부품 조달이 늦어지면서 보름 가량 양산이 미뤄졌다.

일각에서는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와 사이머(Cymer)가 공급하는 EUV 광원 반입이 지체됐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라인 셋업 자체가 지연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장비 업계에 따르면 EUV 장비는 이미 지난해 4분기 구축이 끝났고 EUV 광원 역시 비슷한 시기에 들어갔다. 코로나19로 일부 노광 장비 반입 일정에 차질이 빚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건 5나노가 아닌 3나노 생산라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EUV 장비는 주기적으로 세척해야하긴 하는데, 그게 전체 양산 일정이나 수율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며 “모든 제조사들이 이를 염두에 두고 양산 스케줄을 짠다”고 설명했다.

 

작업자가 반도체 다이(die)가 새겨진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SEMI
작업자가 반도체 다이(die)가 새겨진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SEMI

실제 현재 TSMC의 5나노 수율은 80%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설령 TSMC의 수율에 문제가 있다해도 웨이퍼 투입량을 일시적으로 늘려 정해진 기간 내에 계약한 물량을 공급하기만 하면 된다. 

TSMC는 7나노 때도 목표 수율에 미달한 상황에서 양산을 시작했었다. 주문량을 적게 받는 대신 가동률을 100%로 돌려 이에 대응하고, 동시에 수율을 높여나갔다. 초기 수율이 낮아 수익성은 떨어졌지만 시장 선점 효과는 확실했다. 

5나노도 마찬가지다. 수율이 낮으면 그만큼 가동률을 높이면 된다. TSMC의 경우 통상 전체 생산용량의 80%만 주문을 받고, 나머지 20%는 긴급하게 들어오는 주문을 해소하는 데 활용한다. 5나노 수율이 부족했다면 이 20%는 긴급 주문이 아닌 기존 업체들의 물량으로 채웠을 것이다.

글로벌 장비 업계 관계자는 “애플의 아이폰 출시 지연에 TSMC의 5나노 수율이 거론된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며 “이미 장비 반입도 끝났고, 수율도 안정적으로 80%대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능성 2. TSMC의 애플 AP 생산이 화웨이에 밀렸다? (X)

두 번째로 제기되는 가능성 TSMC의 애플 AP 생산이 중국 화웨이의 팹리스 자회사 하이실리콘 AP에 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개발한 칩/하이실리콘 제공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개발한 칩/하이실리콘 제공

지난해 말 하이실리콘은 TSMC에 6개월치 물량을 한 번에 주문했다. 통상 팹리스 업체는 파운드리 업체의 공정 개선(Revision)과 시황을 감안해 짧으면 한달, 길면 석달마다 주문을 넣는다. AP처럼 물량이 많은 제품을 6개월치 주문하는 건 이례적이다.

당시 하이실리콘이 주문했던 물량은 5나노와 7나노 제품이다. 하이실리콘은 보통 월에 300㎜ 웨이퍼 출하량 기준 2만장 정도의 AP를 주문하니 6개월치면 총 12만장 분량이다. 주문한 제품 중 5나노만 떼어놓고 보면 약 10만장 정도다.

TSMC는 지난 4월 5나노 생산라인을 양산 가동하면서 하이실리콘의 제품부터 먼저 생산하기 시작했다. 미⋅중 무역 분쟁이 좀처럼 잦아들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TSMC의 5나노 생산용량(Capacity)은 300㎜ 웨이퍼 투입량 기준 월 3만장 정도였다.

지난 5월 미국의 추가 제재까지 나오면서 TSMC에게 하이실리콘의 5나노 AP는 긴급 주문이 됐다. TSMC는 이때 애플의 AP 생산도 시작했지만, 비중은 하이실리콘이 더 많았다. 동시에 TSMC는 5나노 생산용량을 늘렸다. 현재 이 회사의 5나노 생산용량은 5만장 정도로 추정된다.

기존 아이폰 출시 일정인 9월을 맞추려면 늦어도 석달 전인 6월부터 AP 생산을 시작해야한다. TSMC는 5월부터 애플의 AP 생산을 시작했다. 초기 양산 물량이 적었다 한들 6월부터 생산용량을 회복했기 때문에 출시 일정에 영향을 줬다고 보긴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실리콘이 주문한 물량에 대한 생산은 지난달 얼추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는 애플의 물량이 TSMC 5나노 생산용량의 3분의 2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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