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삼성 5나노 공정보다 EUV 적용 레이어도 많고 밀도도 높아
10나노에서 겪은 혼돈 교훈 삼아 '선택과 집중' 전략... CPU 외 외주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여전히 인텔의 입지는 공고하다. 7나노 양산 시점을 내년에서 내후년으로 미뤘음에도 이 회사의 CPU 자체 생산 전략에는 변화가 없다. 

일각에서는 인텔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섣부른 판단이다. 인텔의 7나노는 삼성전자와 TSMC의 5나노 공정과 비슷한 선폭을 가진 공정으로, 목표 밀도는 그 어떤 파운드리 업체들보다 높다. 

PC용 CPU 시장에서는 AMD에 점유율을 내줄 수 있지만, 부가가치가 더 높은 서버용 CPU 시장에서는 다르다. 인텔은 이미 PC가 아닌 서버 CPU에 비즈니스 방점을 찍고 있다.

 

‘7나노’라고 다 같지 않다

겉보기엔 인텔의 7나노가 삼성전자와 TSMC의 7나노와 같은 것처럼 보인다. 같은 ‘7나노’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인텔의 7나노 공정은 삼성전자와 TSMC의 5나노 공정과 동급 그 이상이다. 

초기 로직 반도체가 2차원(2D) 평면 구조일때까지만 해도 모든 업체들이 게이트 길이를 줄여 공정을 미세화했다.

 

평면 트랜지스터와 핀펫, GAA(나노시트 기반)./삼성전자
평면 트랜지스터와 핀펫, GAA(나노시트 기반)./삼성전자

하지만 10여년 전 금속 배선이 미세화 척도에 반영됐고, 이후 3차원(3D) 구조가 도입되면서 각 사마다 프로세스 노드명을 결정하는 요소가 달라졌다. 어떤 회사는 반도체 각 회로 중 가장 얇은 회로 선폭으로, 어떤 회사는 특정 회로들의 평균값으로 노드명을 결정했다. 노드명이 기술 특징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마케팅 용어화 됐다는 얘기다.

이 중 가장 보수적인 방식으로 노드명을 결정했던 게 인텔이다. 인텔은 게이트 간격, 최소 금속 회로 간격(MMP), 논리 셀 높이(T) 등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성능 지표 대신 표준 로직 셀과 가장 단순한 낸드 셀에 가중치를 둬 계산한 전체 트랜지스터 밀도를 해당 공정의 성능 지표로 제시했다. 회로 하나가 아니라, 칩 전체의 밀도를 두고 계산한 셈이다.

 

각 사의 7나노, 10나노 공정 밀도 비교./위키칩

이 방식대로 하면 다른 업체들은 인텔보다 밀도 측면에서 1~2세대 정도 뒤쳐진다. 

10나노 공정만 보더라도 그렇다. 인텔의 10나노 공정 밀도는 1㎟ 당 1억개 이상의 트랜지스터가 들어있지만, TSMC의 7나노(N7) 공정 밀도는 1㎟ 당 트랜지스터 9120만개, 삼성전자의 7나노 공정 밀도는 1㎟ 당 9508만개다. 인텔의 10나노 공정이 TSMC와 삼성전자의 7나노 공정보다 우위에 있는 셈이다. 

인텔의 7나노 공정도 마찬가지다. 인텔의 7나노 공정 밀도는 타사 10나노 공정 밀도의 2배다. 타사는 5나노 공정에 들어와서야 겨우 인텔의 10나노 공정 밀도를 넘어섰다.

이를 위해 인텔은 7나노 공정에 극자외선(EUV) 노광 기술을 도입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TSMC는 앞서 7나노 공정에서 각각 3~5개 레이어, 1~3개 레이어에 EUV를 도입했지만 인텔은 10여개 레이어에 EUV를 적용한다.

 

지난해 투자자 미팅에서 인텔이 발표한 슬라이드. 당초 계획대로라면 2021년 7나노 공정이 양산돼야한다./인텔
지난해 투자자 미팅에서 인텔이 발표한 슬라이드. 당초 계획대로라면 2021년 7나노 공정이 양산돼야한다./인텔

EUV는 기존 심자외선(DUV) 노광 기술 대비 공정 안정화에 걸리는 시간이 3배 이상 길다. 마스크 제조부터 시작해 목표치에 해당하는 결과값을 내는 레시피를 잡기도 어렵고, 광원 성격상 장비를 멈추고 대기해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타사의 3나노와 견줄 정도로 7나노 공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늦다고 보긴 어렵다”며 “인텔의 10나노 출시 지연으로 업계가 겪었던 혼돈을 생각하면 오히려 공정 지연을 인정하고 빨리 발표하는 게 회사의 입장에선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나노 공정에서 깨달은 교훈, 선택과 집중

어쨌거나 인텔은 10나노 공정에 이어 7나노 공정까지 뒤로 미뤘다. 공정 밀도 측면에서는 인텔의 7나노 공정이 가장 우위에 있다 해도 타사의 5나노와 비교하면 양산 시점에서 1년 이상 차이가 난다.

인텔이 10나노 공정에서 헤맬 동안 경쟁사인 AMD는 발빠르게 PC용 CPU 시장의 입지를 넓혔고, 서버 CPU 사업도 재개했다. 

앞서 인텔은 지난 2016년 10나노 공정 기반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2년 가량 양산 시점이 늦춰졌다. 인텔의 10나노 공정은 타사의 7나노 공정과 동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TSMC와 삼성전자의 7나노 공정 양산 시점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10나노 양산을 시작했다고 해서 공정이 안정화된 건 아니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나노 공정 수율이 14나노 공정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인텔은 10나노 공정에 차세대 배선 재료로 꼽히는 코발트를 적용했는데, 생각보다 배선 특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EUV 없이 고밀도를 구현하기도 어려웠다.

 

밥 스완 인텔 최고경영자(CEO)./인텔

10나노 양산 지연을 뒤늦게서야 발표하고, 수율 또한 이미 제품이 출시된 이후 설명했기 때문에 인텔의 10나노 공정 지연으로 인한 공급 부족 현상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공급망 내 인텔에 대한 이미지가 큰 손상을 입었다. 10나노 공정 제품 출시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이에 대비해 차세대 제품 출시를 준비했던 완성품 업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 국내 노트북PC제조사 L사는 지난해 인텔이 10나노 CPU를 내놓기 전 앞서 노트북PC용 CPU 구매 결정을 할 때 “이번에도 늦는 것 아니냐”며 14나노 CPU를 고집했다가 인텔의 설득으로 10나노 CPU 구매를 확정했다.

이 상황에서도 공급 부족 문제가 단 한 번도 없었던 건 서버용 CPU다. 한정된 생산 용량 내에서 이 회사는 PC용 CPU 대신 서버 CPU를 만드는 걸 택했다. 서버 CPU는 PC CPU와 달리 성능이 최우선이라 가격 경쟁에서 보다 자유롭고, 이익도 높다. 회사가 ‘데이터 센트릭(Data Centric)’으로 비전을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전체 CPU만 놓고 보면 AMD의 시장 점유율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인텔의 시장 점유율은 82%에 달했고, AMD는 18%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 AMD는 시장 점유율을 30%대로 끌어올렸다. 

 

AMD와 인텔의 데이터센터 그룹 매출 및 이익 비교(단위: 백만달러)/각 사, KIPOST

하지만 AMD가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가격 대비 성능이다. 가격 대비 성능은 서버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인텔이 서버용 CPU를 생산하느라 PC CPU 출하량을 줄인 것도 AMD의 점유율이 높아진 이유 중 하나다. AMD의 서버용 CPU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한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파는 제품은 단지 CPU가 아니다”며 “인텔은 이더넷 칩 등 서버에 들어가는 온갖 칩들을 판매하고, 각 칩이 모두 CPU와 밀접하게 연관돼 동작하기 때문에 AMD가 파고들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이 불러온 외주 생산 전략의 변화

인텔이 7나노 공정 지연을 발표한 이후 일각에서는 이 회사가 CPU를 외주 생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점친다. 하지만 인텔은 10나노 공정이 지연될 것이라고 뒤늦게 발표할 때마저도 CPU 외주생산 카드는 꺼내들지 않았다. 

인텔이 외주 생산을 늘린 건 맞다. 하지만 CPU 자체 생산 전략에서는 한치 양보도 없다. 모든 제품군의 중심에 CPU가 있기 때문이다. 

CPU는 공정 기술이 다가 아니고, 다른 제품들과 어떻게 호환되는지가 중요하다. AMD가 CPU 시장에서 몰락했던 것도 다른 제품과의 호환성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텔이 CPU를 놓치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다. 애초에 공정 목표도 차기 CPU 사양에 맞춰 확정한다. 

외주로 나온 건 시스템온칩(SoC) 등 CPU 대비 비교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제품들이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의 7나노 공정에서 자사의 10나노 시스템온칩(SoC) ‘아톰’ 제품군을 외주 생산하기로 했고, TSMC의 6나노 공정에서도 마찬가지로 SoC 제품군을 만들기로 했다.

 

삼성전자 V1 라인(EUV 전용 라인) 전경./삼성전자
삼성전자 V1 라인(EUV 전용 라인) 전경./삼성전자

인텔은 7나노 공정 SoC도 역시 외주 생산을 맡긴다. TSMC와 삼성전자의 5나노 공정에서 별도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알려진 출시 일정은 내년이지만, 7나노 지연을 공식 발표한 만큼 7나노 양산을 시작하는 내후년 한꺼번에 제품을 출시할 가능성도 있다.

파운드리 업계 관계자는 “CPU 외주 생산의 경우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고,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못박고 있다”며 “대신 SoC 등 CPU 외 다른 제품들의 경우 일부 외주 생산을 한다”고 말했다.

CPU는 10나노 공정 지연 당시 14나노 플러스, 14나노 ++ 공정 등을 런칭한 것처럼 기존 10나노 공정을 업그레이드해 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역시 서버용 CPU를 우선 생산할 가능성이 크다. 

서버 업계 관계자는 “10나노 공정이 지연됐을 때도 기존 14나노 공정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인텔은 최종 고객사인 데이터센터 업계의 요구사항을 빈틈없이 맞췄다”며 “AMD가 PC CPU 시장에서는 인텔의 점유율을 갉아먹을 수 있어도, 서버 CPU 시장에서는 아직 인텔의 입지가 공고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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