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3·V5 등 V시리즈는 물론 A시리즈 개발 로드맵 폐기... 해체설까지 나와
부가가치는 높지만 물량 적어 ROI 측면에선 계륵... 아직 손 떼긴 어려워

자동차 반도체 사업을 관장하는 삼성전자 부품플랫폼사업팀이 또다시 해체설에 휩싸였다.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출시된 V9 프로세서에 이어 차세대 제품이 나와야할 시기지만 로드맵 자체가 모두 잘리면서 개발조차 착수하지 못한 상황이다.

업계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수요가 악화된 탓도 있지만,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 대한 그룹 내 회의적인 시각을 좀처럼 이겨내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해체설 휩싸인 부품플랫폼사업팀

삼성 부품플랫폼사업팀은 지난 2017년 말 신설된 DS부문 직속 부서다. 전장사업팀이 하만 등 계열사 및 관계사와 함께 솔루션을 개발한다면, 부품플랫폼사업팀은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차량용 프로세서를 주력 제품으로 한다. 

 

삼성전자 차량용 반도체 '엑시노스 오토 V9'.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차량용 반도체 '엑시노스 오토 V9'. /사진=삼성전자

부품플랫폼사업팀은 지난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프로세서 ‘엑시노스 오토 V9’을 출시, 시장에 진출했다. 모바일보다 장벽도 높고 요구사항도 많은 까다로운 시장이지만, 첫 제품부터 아우디의 2019년형 A4에 채용되는 쾌거를 올렸다.

부품플랫폼사업팀은 당시 차량용 반도체를 IVI,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텔레매틱스 시스템 등 각 용도별로 구분해 각각 V 시리즈, A 시리즈, T 시리즈 프로세서를 지속 출시한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계획대로라면 V9 프로세서의 뒤를 이어 올해 중상급 프로세서 V7, 중저가형 IVI용 프로세서 V3, V5 등이 출시돼야 하지만 V3와 V5은 개발조차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세워놨던 로드맵이 전부 폐기됐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첫 제품인 V9 프로세서가 프리미엄급이었고, 그 다음 V7, V5, V5 등 중저가형 인포테인먼트 프로세서 제품군 출시가 계획돼있었다”며 “올해 V7까지만 하고 그 다음은 아예 로드맵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부품플랫폼사업팀이 또다시 해체설에 휩싸였다./하만

A 시리즈와 T 시리즈 역시 로드맵에서 사라졌다. A 시리즈를 하지 않기로 결정난 건 지난해 연말로, 당시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계륵’ 같던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서 결국 손을 떼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애초에 차량용 프로세서 사업의 목적은 ADAS에서 시작, 미래 자율주행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중장기적으로 부품플랫폼사업팀의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로드맵을 없앤 다음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게 보통 사업 해체수순인지라,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후공정 업계 관계자는 “부품플랫폼사업팀이 해체될 것이라는 얘기가 돈 건 지난해 말부터”라며 “올해 상황도 좋지 않고 워낙 내부 시선이 회의적이라 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화려한 데뷔... 내부 시선은 ‘계륵’

부품플랫폼사업팀 해체설이 돌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부터다. V9 프로세서가 아우디에 채택되는 성과를 올렸지만 이후 새로운 고객사를 잡는 데 실패하면서 김기남 부회장이 직접 부품플랫폼사업팀 해체를 입에 올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출발은 좋았지만 실적이 그때 뿐이라 윗선의 평가가 좋지 않았다”며 “그나마 장벽이 낮은 중국 자동차 반도체 업계에도 영업을 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시대, 자동차는 스마트폰처럼 온갖 애플리케이션(앱)이 들어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IT기기가 된다./현대엠앤소프트
▲자율주행 시대, 자동차는 스마트폰처럼 온갖 애플리케이션(앱)이 들어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IT기기가 된다./현대엠앤소프트

하지만 삼성전자가 지나치게 빨리 차량용 반도체 사업의 성과를 판단한 측면도 없지 않다. 차량용 반도체는 개발에만 통상 3년여의 시간이 걸리는 데다 품질과 기술 등을 검증하는 데만 1~2년이 소요된다. 매출로 잡히는 데까지 5년여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후년께 사업의 성패를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처럼 빨리 구조조정에 돌입한 건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계륵’으로 보는 내부 시선 때문일 것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차량용 반도체 사업은 부가가치가 높지만 매출을 내는 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다 물량도 많지 않다. 소프트웨어와 묶어 솔루션으로 제공해야하고 범용으로 개발을 할 순 있지만 완성차(OEM) 업체의 요구를 반영해 칩을 일일이 커스터마이징해야한다는 부담도 있다. 

메모리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개발 주기가 6개월~1년으로 짧고 수천만개 단위로 거래되는 제품만 하던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사업의 투자대비효율성(ROI)을 낮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실제 현대차·LG전자 등이 삼성전자의 V9 프로세서 기술검증(POC)을 하려고 했지만 부품플랫폼사업팀이 POC를 진행할 예산을 받지 못해 사업 기회를 잃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V9 프로세서가 하나에 25달러(약 3만원) 정도로 모바일 AP보다 6~10배 이상 비싸지만, 물량을 감안하면 전체 매출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다”며 “내부적으로는 돈과 시간만 많이 잡아먹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삼성, 車 반도체 사업 완전히 접을까

하지만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서 아예 손을 뗄 가능성은 아직까지 낮다. 

물론 최종 완성차 업체의 인증이 필요하지만, 어쨌거나 하만이라는 든든한 계열사가 있고 자동차가 점점 IT 기기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그 핵심 부품인 반도체에도 손을 대고 있는 게 장기적으로는 사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사업을 아예 접는 것보다 사업 방향을 인포테인먼트·커넥티비티 등 삼성전자의 기존 사업들과 연계할 수 있는 제품군으로 바꾸는 방안이 유력하다. 

 

삼성전자 모델들이 개인에게 최적화된 환경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제공하는 차량용 ‘디지털 콕핏 2020’를 시연하고 있다./삼성전자
삼성전자 모델들이 개인에게 최적화된 환경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제공하는 차량용 ‘디지털 콕핏 2020’를 시연하고 있다./삼성전자

인포테인먼트는 디스플레이 등 다른 사업과도 연결고리가 있어 시너지가 크고, 커넥티비티는 차량을 스마트폰·가전 등 IT 기기나 인프라로 연결해주는 핵심 부품인만큼 역시 손을 떼기 어렵다.

ADAS 프로세서 시장은 이미 모빌아이 천하고, 나아가 자율주행 프로세서도 인텔(모빌아이)과 엔비디아로 양분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도전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평가다.

하만도 ADAS 시장에서는 별 존재감이 없지만 인포테인먼트와 커넥티비티 시장에서는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 사업과 하만과의 관계는 모바일AP 사업-스마트폰 사업과의 관계와 비슷하다”며 “하만이 스마트폰 같은 완성품이 아닌 부품 솔루션 사업을 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거나 각 완성차 업체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는 프로세서부터 커스터마이징해야하니 반도체 기술이 필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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