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TSMC 미국 공장을 바라보는 두 갈래 시선
[칼럼] TSMC 미국 공장을 바라보는 두 갈래 시선
  • 안석현 기자
  • 승인 2020.05.17 1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7년 12조원 투자 약속한 폭스콘은 발 빼
TSMC의 계획은 현실화 될까
LCD 팹과 파운드리, 투자 논리 달라
미국 위스콘신주 디스플레이 단지 기공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궈타이밍 회장이 첫 삽을 뜨는 모습. /사진=백악관 트위터
미국 위스콘신주 디스플레이 단지 기공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궈타이밍 회장이 첫 삽을 뜨는 모습. /사진=백악관 트위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종사자라면, 최근 TSMC의 미국 애리조나 파운드리 공장 투자 발표를 보고 기시감(旣視感)이 들 것이다. 다소 전격적인 의사결정과 이를 압도하는 투자 액수는 지난 2017년 대만 폭스콘의 ‘플라잉 이글’ 프로젝트를 연상시킨다. 

당시 폭스콘은 100억달러(약 12조3000억원)를 들여 미국 위스콘신주에 10.5세대(2940㎜ X 3370㎜)급 LCD 라인을 짓겠노라 공언했다. 이 프로젝트는 해외 제조업을 국내로 불러들이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에 힘입어 탄력을 받았다.

3년여가 지난 현재, 플라잉 이글은 이름처럼 훨훨 날아 올랐을까. 

실상은 정반대다. 당초 목표인 10.5세대 LCD 라인은 간데 없고 6세대(1500㎜ X 1850㎜)급 라인으로 생산품이 격하됐다. 그나마도 생산능력은 최소한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올해 안에 설비를 반입하고, 대통령 선거 전에 샘플을 출하한다는 스케쥴도 물건너 갔다. 폭스콘은 LCD 생산을 위해 쌓아올린 클린룸 공간에서 임시로 마스크를 제조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독수리를 그리려 붓을 들고는 참새조차 완성하지 못한 모양새다.

이 때문에 이번 TSMC의 애리조나 파운드리 팹 역시 현실화 여부를 두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TSMC의 결정이 비즈니스 논리보다는 정치⋅외교적 외풍에 등떠밀린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TSMC의 파운드리 공장 건설 계획은 앞선 폭스콘의 플라잉 이글 프로젝트와는 여러 면에서 결이 다르다. 

우선 무주공산에 공장을 세우기는 LCD 보다는 반도체 파운드리가 비교적 수월하다. 가로⋅세로 3m 크기의 기판이 통째로 이동해야 하는 LCD 공정은 물류 의존도가 큰 산업이다. LCD 모듈 안에 들어가는 수많은 필름류⋅유리기판⋅광학부품 모두 협력사가 LCD 팹 지척에 위치해야 한다. 디스플레이 회사 단독으로 위스콘신처럼 인프라 없는 지역에 진출하는 게 불가능하다. 

LCD 후공정은 여전히 사람 손을 많이 타는 노동집약 산업이다. 중국 광저우조차 10.5세대 LCD 팹 운영 효율이 나오지 않는데 미국에서야 오죽할까.

LCD 팹에 비하면 파운드리 팹은 물류 의존도가 낮다. 기껏해야 지름 12인치 웨이퍼가 가장 큰 완제품이다. 어차피 스마트폰⋅TV 등 세트 제조 공장이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손을 많이 타는 후공정은 비행기로 태평양을 건너가 처리할 수도 있다. 플라잉 이글 프로젝트 대비 애리조나 파운드리가 비즈니스 측면에서 현실성이 크게 떨어지는 계획은 아니라는 뜻이다.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여기에 TSMC로 하여금 미국에 투자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더 큰 유인은 지난 15일에 나온 상무부의 해외 파운드리 규제안이다. 미 상무부는 수출관리규정(EAR)을 들어 해외 반도체 업체가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했더라도, 거기에 미국 기술이 활용됐다면 이를 제재할 방침이다. 미국 상품의 ‘재수출’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도 미국 기술이 25% 이상 가미된 제품을 화웨이에 판매할 경우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그 기준을 더 까다롭게 개정할 예정이다. 사실상 하이실리콘(화웨이 자회사) 반도체를 위탁생산 해주는 TSMC를 콕 찝어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이 규제안이 가동되면 TSMC는 매출의 10~15% 정도를 잃게 된다. TSMC로서는 120일로 명시된 규제 유예기간을 추가로 늘리거나, 상무부 산업안보국(BIS) 수출허가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수 밖에 없다. 플라잉 이글 프로젝트가 궈타이밍 회장의 정치적 야욕 때문에 시작된 일이라면 TSMC의 사례는 어떻게든 미국,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한 절박함의 발로인 셈이다. 

인프라⋅노동조건⋅물류⋅규모의 경제 등 어느 하나 이점이 없지만, TSMC의 애리조나 공장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