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 시장 선점 위해 발빠르게 도입했지만 활용도 0에 가까워
갤럭시노트20 전면 제외까지 검토 중

갤럭시S20 울트라에 적용된 쿼트 카메라./삼성전자
갤럭시S20 울트라에 적용된 쿼트 카메라./삼성전자

삼성전자가 하반기 출시될 ‘갤럭시노트 20(가칭)’에 비행시간차(ToF) 센서를 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당초 플래그십을 포함한 전 제품군으로 ToF 센서 도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예상 외로 활용도가 극히 낮기 때문이다. ToF 센서로 구동되는 기능들을 일반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고, 증강현실(AR)와 가상현실(VR) 또한 아직 킬러 애플리케이션(앱)이 없다.

하지만 경쟁사인 애플이 올해 출시되는 아이폰에 ToF 센서를 도입할 계획인데다 당장 ToF를 대신할 ‘신기술’을 찾기 어려워 무작정 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삼성, ‘갤럭시노트20’에 ToF 센서 제외 검토

모듈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20’에 ToF 센서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올해 초 출시된 ‘갤럭시S20’ 시리즈의 기본 모델인 ‘갤럭시S20’에서도 ToF 센서를 뺀 데 이어 아예 전 모델에서 이를 제외하는 것을 고민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갤럭시S10 5G’ 모델에 처음으로 ToF 센서를 도입할 때까지만 해도 ToF 센서 적용 모델을 갤럭시노트 시리즈 등 플래그십 모델에서 시작, 5세대 이동통신(5G)을 지원하는 모든 스마트폰으로 순차 확대할 계획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 ‘갤럭시S’ 시리즈 검토 당시 때도 그런 얘기가 나왔는데, 그래도 5G 모델에는 넣어야한다는 분위기였다”며 “최근에는 ‘갤럭시노트’에서 아예 빼는 방안을 검토 중으로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삼성 TV 트루 핏(Samsung TV True Fit) 앱./삼성전자

삼성전자가 ToF 장착 여부를 놓고 크게 고민하는 건, ToF 센서의 활용도가 극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소비자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온 삼성전자는 ToF 센서 기반의 기능을 일반 소비자들이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야심차게 준비한 AR 관련 앱(App)의 활용도가 수 퍼센트에 불과하고 이를 대체할 킬러 앱도 없어 기능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 상황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ToF 센서를 기반으로 간편 측정, AR 이모지 카메라, AR 이모지 스튜디오, 3D 스캐너 기능 등의 앱을 제공 중이다.

또다른 업계 소식통은 “쓰인다 해도 간편 측정, 3D 스캐너 기능, 홈 데코 기능 등이 전부인데 그마저도 극소수의 소비자들만 쓴다고 한다”며 “AR 시장 선점을 위해 ToF 센서를 넣었다고 봐도 무방한데 활용이 거의 되지 않으니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AR 시장 선점을 위한 도구, ToF

삼성전자는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S10 5G’ 모델의 전·후면에 처음으로 ToF 센서를 적용했다. 

ToF는 피사체를 향해 발사한 빛(주로 적외선)이 물체에 부딪혀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으로 거리를 계산, 깊이 정보를 인식한다. ‘갤럭시S10 5G’ 모델에서 ToF 센서는 피사체만 또렷하게 하고 배경은 흐리게 하는 ‘라이브포커스’ 실시간 동영상 촬영과 AR 기능 등을 구현하는 데 활용됐다. 

 

페데리코 카살레뇨(Federico Casalegno) 삼성 북미 디자인혁신센터 센터장이 CES 2020 기조연설에서 웨어러블 보행보조 로봇 GEMS와 AR 글래스를 기반으로 한 'AR 피트니스'를 선보이고 있다./삼성전자
페데리코 카살레뇨(Federico Casalegno) 삼성 북미 디자인혁신센터 센터장이 CES 2020 기조연설에서 웨어러블 보행보조 로봇 GEMS와 AR 글래스를 기반으로 한 'AR 피트니스'를 선보이고 있다./삼성전자

특히 중점을 둔건 AR이었다. 지난 2017년 ‘포켓몬고’ 열풍으로 A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삼성전자 또한 AR을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선정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개발자대회의 워크숍 20% 가량도 AR와 VR 관련 내용으로 채워졌다.

VR이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처럼 보여주는 기술이라면, AR은 현실 위에 가상 이미지를 덧입혀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 슈트를 입으면 눈 앞에 온갖 정보가 펼쳐지는 것처럼, AR을 1인칭 슈팅게임(FPS)에 적용하면 스마트폰 하나로 내가 서 있는 곳 자체를 전장으로 만들 수 있다.

AR의 몰입도를 높이려면 주위 건물이나 물체, 사람 등의 위치와 모양을 정확히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ToF처럼 깊이 정보를 인식하는 뎁스 센서(Depth Sensor)다.

삼성이 애플의 구조광(SL) 센서가 아닌 ToF를 도입한 건 이 때문이다. SL 센서는 10m 이내 거리에서는 인식률이 높지만 이를 벗어나면 인식률이 확 떨어진다. 반면 ToF 센서는 10m 이내 거리에서는 인식률이 낮지만, 10m 밖 사물의 인식률은 높다.(2018년 7월 10일자 <[애플 ToF 카메라가 온다] ②구글은 실패한 ToF, 애플은 어떻게 살릴까> 참고>

ToF를 넣으면서 기술 토대는 마련했지만 시장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마인크래프트 개발사인 모장이 모바일 AR 게임 ‘마인크래프트 어스(Minecratf Earth)’를 내놨고, 포켓몬고로 성공신화를 쓴 나이언틱도 신규 AR 게임 ‘해리포터 마법사연합(Harry Potter: Wizards Unite)’을 선보였지만 그 어느 게임 타이틀도 ‘포켓몬고’만한 명성을 얻지 못했다. 

차가운 시장 반응에 게임 업체의 투자 및 개발 열기도 식었다.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 국내 게임 업체들이 손을 뗐다. 

AR 기능을 활용, 화장품·옷을 미리 대보는 기능 등도 주목받았지만 이제야 시장 첫 단추를 꿰고 있다. 아직까지는 실제 제품을 사용했을 때와 단순하게 AR로 이미지를 덧입힌 것의 차이가 커 도입이 쉽지 않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만약 화장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해당 기능을 이용하고 실제 제품을 사용했을 때의 차이가 커서 환불을 요구하면 환불을 해줄 수 밖에 없다”며 “그나마도 유통업체나 화장품 제조사 등 각 업체가 저마다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만큼 실사용률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아예 놓을 순 없다

하지만 ToF를 내장한 아이폰 출시 소식이 무성한 와중에 무턱대고 ToF 센서를 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애플은 이미 지난달 ToF 기반 라이다(LiDAR) 센서를 넣은 ‘신형 아이패드 프로’를 출시했다. 애플까지 생태계 확장에 힘을 보탠다면 삼성 입장에서는 굳이 ToF 센서를 뺄 이유가 없다. 

 

애플은 자사의 AR 서비스를 소개하는 별도 홈페이지를 운영 중이다./애플

애플은 그동안 자체 AR 생태계를 키워오면서 시장 저변을 다졌다. 지난 2017년 개발자들이 아이폰 및 아이패드용 AR 앱을 빠르게 제작할 수 있는 개발 도구 ‘AR키트(ARKit)’를 처음으로 내놓은 이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고 있다.

뿐만 아니다. iOS 및 iPadOS에 AR 지원이 자체 내장돼있기 때문에 앱이 아닌 사파리(Safari), 메일, 메시지 등에서도 AR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알리는 전용 홈페이지도 마련돼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구글 안드로이드 10 운영체제(OS) 베타 버전(One UI 2.1)이 업데이트된 11월 이후에야 ‘갤럭시S20 5G’의 ToF 기반 안면 인식 기능을 지원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 전까지 ‘갤럭시S20 5G’의 안면인식 기능은 2D 이미지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사진’만 있으면 보안이 뚫릴 우려가 있었다.

이에 삼성은 ‘갤럭시노트20’의 기본 모델을 제외한 일부 모델에만 ToF 센서를 넣거나 ‘갤럭시노트20’ 이후 시황을 감안해 차기작에 다시 ToF 센서를 적용하는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킬러 앱이 만들어지려면 일단 개발 생태계가 충분히 갖춰져 있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투자도 계속돼야 한다”며 “아직 AR과 VR 관련 투자가 경색돼있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비대면 교육 등이 늘어나면서 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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