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넘나든 학술 교류

이평래 ‘몽골제국과 동서문명의 교류’에서는 몽골제국 시절에는 동서간 학술과 과학교류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특히 카안 울루스(원나라)와 훌레구 울루스의 교류가 활발했다. 대원의 수도 대도에는 이란과 이슬람권 학자들이 상주하고, 훌레구 울루스의 수도 타브리즈에서도 다수의 중국학자들이 활동했다. 유라시아 전역의 몽골의 칸 국들은 대군과 대량의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서 서로 역법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여러 장소에서 활동을 조정하고 사회생활을 규제해야 했다. 몽골제국은 새로운 지역을 정복할 때마다 행성과 별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측정할 관측소부터 세웠다. 1271년 대도에 건설된 회회사천대(回回司天臺)에서 이란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자말 앗딘(札馬兒丁)의 주도로 천문을 관측하고 역서(曆書)가 편찬됐다. 회회사천대의 관측기기는 모두 이란에서 제작된 것이고, 도서관에는 페르시아어 서적이 갖추어져 있었다.

자말 앗딘 등 이란과 이슬람권 학자들이 소개한 서아시아의 우수한 천문학은 그 후 중국 천문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대표적 사례가 수시력(授時曆) 편찬이다. 1276년 곽수경(郭守敬) 등은 우수한 서아시아의 관측기기와 천문학을 응용하여 새로운 역서인 수시력을 편찬했다. 이는 1281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명나라 시대의 대통력(大統曆)도 기본적으로 여기에 의거하고 있다. 수시력은 중국 역사상 제일 긴 350여 년에 걸쳐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훌레구 울루스에서도 나시르 앗딘 투시에 의하여 설계된 천문대가 마라가(타브리즈 남쪽의 작은 마을)에 건설되었는데, 1271년에는 중국학자들까지 참여한 천문관측에 기초하여 작성된 ‘일 칸 천문표’가 봉정되었다.

제국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사람, 동물, 건물의 통계조사와 관련된 엄청난 양의 숫자정보를 처리하고 기록해야 했다. 계산할 양이 늘어남에 따라 복잡한 도표들을 정리하고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는 숫자체계의 조정을 통하여 정보를 보존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몽골의 관리들은 유럽과 중국의 수학이 너무 단순하고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아랍과 인도의 수학으로부터 혁신적 방법을 여럿 채택했다. 특히 호라즘 제국의 여러 도시는 수학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몽골제국은 아라비아 숫자의 유용성을 파악해서 도입하였고, 중국에 0과 음수, 대수학을 소개하였다.

농학과 의학 분야의 교류도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졌다. 훌레구 울루스에서 편찬된 농서(農書)는 중국의 농서 내용이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중국과 페르시아 지역의 농업작물도 서로에게 이식하였다. 차나 쌀 같은 중국의 전통적인 작물은 페르시아, 중동으로 이식되었다. 동남아의 삼각형 쟁기가 중국에 도입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페르시아의 생산성 낮은 토양에 중국으로부터 종자를 다양하게 수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한 지역에서 혁신이 이루어질 때마다 다른 변화도 뒤따랐다. 새로운 작물이 나타나면 새로운 방법으로 땅을 갈고, 씨를 심고, 관개를 하고, 가지를 치고, 추수를 하고, 베고, 도리깨질을 하고, 찢고, 운송하고, 보존하고, 양조하고, 증류하고, 조리해야 한다. 훌레구 울루스에는 많은 중국의사들이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당시 이란에서는 중국 의술 중 특히 진맥(診脈)이 인기가 있었다. 카안울루스 원나라도 페르시아와 아랍의 의사를 수입했다. 1292년 대도와 상도에 회회약물원(回回藥物院)을 세워 이슬람의학을 관리하도록 했으며, 1273년에는 이븐시나 (980-1037)의 의학전범(Al-Qanun fi al-Tibb))이 의경(醫經)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몽골의 유산, 대항해시대를 열다

몽골제국이 정복한 나라의 주민들은 처음에는 야만적인 파괴와 정복때문에 충격을 받았지만 곧 유례없는 문화교류, 무역 확대, 생활수준 개선의 혜택을 보게 되었다.

14 세기 몽골 제국의 몰락은 실크로드를 따라 이루어졌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통합의 붕괴를 초래했다. 몽골제국에 이어 중국대륙에 등장한 명나라는 극단적인 폐쇄정책을 썼으며 시장경제를 쇠퇴시켰다. 몽골제국시대에 건조했던 대형선박도 모조리 파괴하였다. 농업기반의 명나라 경제와 주자학 사상은 이를 답습한 조선에 경제적 사상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몽골제국의 뒤를 이은 유라시아의 강국 명, 청, 오스만투르크 제국 등은 국가의 존망이 내륙으로부터의 위협을 지켜내는 것이어서, 해양진출에 대한 인식도 의지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13세기 칭기즈칸이 뿌린 씨앗은 15세기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연다. 유럽인들이 시작한 대항해시대는 중앙유라시아의 위상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증기기관 선박의 수송능력은 낙타에 화물을 싣고 사막을 오가던 무역을 원시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상징되는 대항해시대의 개막은 유럽의 우위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유라시아 무역의 패턴을 확 바꿔버린 역사적 사건이다. 내륙국가 번영의 시대가 해양국가 패권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유럽인들이 바다로 진출하여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보다 앞서 몽골제국이 유라시아 경제권을 하나로 통합하고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대시킨 몽골제국의 유산을 고스란히 상속했기 때문이다.

종교적 관용 정책을 펴고, 보편적인 알파벳을 고안하고, 역참을 유지하고, 놀이를 하고, 연감이나 돈이나 천문학 표를 인쇄하는 과정에서 몽골제국의 통치자들은 일관적인 보편주의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강요할 제도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도처에서 제도를 들여와 결합했다. 몽골은 이런 영역에서 뿌리 깊은 문화적 프레임이 없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인 해법보다는 실용적인 해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새로 도입하려는 천문학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글을 쓰는 기준이 중국관리의 전통적 원칙을 따르고 있는지, 무슬림 이맘이 자신의 인쇄와 회화를 승인하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몽골제국은 어떤 하나의 문명의 편견이나 프레임을 누르고 과학기술, 농업, 국제적 지식 시스템을 새로 편성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 엘리트의 사상 독점을 무너뜨렸다. 몽골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하면서 혁명적인 전쟁기술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 문화로 세계의 시스템을 개편하였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몽골제국이 망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근대 세계체제의 기반이 되었다. 이 시스템에는 몽골제국이 강조했던 자유무역, 자유로운 교통, 지식 공유, 여러 종교의 공존, 국제법, 치외법권 등이 21세기까지 고스란히 살아있다.

칭기즈칸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우리는 현대에 이렇게 개방적인 네트워크 세상에서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살지 못했을 것이다. 칭기즈칸은 잔혹한 정복자이기도 했지만 세계적 문명통합을 이루어 근대문명을 촉발시킨 영웅이기도 하다.

 

승자독식의 세상

필자가 약 30년 동안 세계시장을 관찰하면서 보았던 가장 큰 흐름은 전세계적인 승자독식이다. 90년대 초반만해도 그렇게 많았던 자동차 회사들이 이제 몇 개만 남아 시장을 지배한다. 2000년 닷컴 거품 때 수만개에 달했던 인터넷 기업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바이두, 알리바바, 네이버, 카카오 같은 소수의 기업들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 휴대폰 제조회사가 수십개에 달했는데 모두 망하고 삼성과 LG 두 개 만 남았다. 스마트폰의 출현은 2등 그룹의 텃밭인 게임기, MP3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내비게이션 등을 하나하나 집어삼키며 애플과 삼성 등 선두업체들의 독식구도를 만들었다.

회사 쿠팡이 수조원씩 적자를 내면서 계속 투자를 하는 것은 승자가 되어 독식을 하기 위해서다. 필자가 속한 반도체 업계도 선두 5개 업체가 시장전체의 60% 넘게 투자하고 있다. 우리회사에서 장비를 구매하는 회사들이 왜 사는지 알아보면 애플, 삼성, LG, 화웨이 등 소수의 수요자가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을 여러차례 확인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두 회사의 2019년 이익이 코스피 제조사 439개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전세계 수십개에 달하던 메모리 생산회사들이 치킨게임으로 서너개로 줄어들면서 승자독식의 과점체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첨단공정으로 갈 수록 수조원, 수십조원의 투자와 축적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독주가 깨지기는 쉽지 않다.

80:20의 파레토 법칙의 사회를 넘어 1%의 승자들이 99%의 부를 차지하는, 승리한 1등에게만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고 뛰어난 2등마저 패배자로 만드는 승자독식의 사회로 가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은 ‘승자독식사회’이라는 책에서 유례없는 양극화와 승자독식현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로 인한 무한경쟁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운 꼴찌는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인간적인 표현이지만, 숨가쁘게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 경쟁체제에서는 가슴 답답한 소리다. 생존을 향한 불꽃 튀는 자본주의 경쟁대열에서 꼴찌란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원래 승자독식은 스포츠계나 연예계에서 통용되던 논리였는데, 이제는 일반 소비자 상품, 법률, 의료, 교육 등 거의 모든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골목상권 문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승자독식현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시장의 이익이 모두에게 적절하게 배분되지 않고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사회적인 재앙이자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낭비를 초래한다. 한국사회 갈등의 대다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승자독식으로 일어나지만, 마땅한 대책도 없다.

세계시장의 단일화가 점점 가속화되면서 소수의 회사가 독식을 하는 현상이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전세계에 걸쳐서 벌어지고 있다. 백화점식으로 사업을 벌이는 한국의 대기업들은 앞으로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사업 덩치를 더 키우고 고객가치를 강화해 전세계 선두권에 진입하든지, 작은 규모로 다른 경쟁사가 쫓아올 수 없는 특화된 서비스를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일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회사도 니치 시장에서 경쟁사들이 고객들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세계 시장을 선도해 나가야만 생존할 수 있다. 800년전 칭기즈칸이 팍스 몽골리카로 승자독식을 구현했듯이 한국의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승자가 되어야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반도체 산업의 선배들이 20여년전에 반도체 개발할 때는 여관방, 야전침대에서 자면서 몇 달씩 집에 못 들어가 부인들이 내의를 갖다 주곤 했다. 그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독하게 일한 결과로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세계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인텔부터 키몬다, 엘피다까지 수많은 메모리 회사들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밀려 시장에서 사라져갔다.

총알이 빗발치는 비지니스 현장에서 뛰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워라밸’이나 주52시간제는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지금의 시들어가는 유럽 경제처럼 되고 싶으면 유럽의 워라밸을 따라하면 된다. 한국 바로 옆에는 중국, 일본 같은 세계 2,3위의 경제강국이 있다. 농업적 근면성으로 무장한 중국과 일본 바로 옆에서 유럽의 워라밸은 사치이다. 모든 산업에서 공급과잉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Winner Takes All’하는 시장에서는 일단 살아남고 승자가 되어야 한다. 약소국 한국에서 돈 많은 미국, 일본 대기업, 국가적 지원을 받는 중국 경쟁사들과 힘겹게 싸우는 것도 힘든데, 국민들 낸 세금으로 공무원 머릿 수 늘려서 고비마다 탁상공론 인허가, 규제로 기업들을 옥죄면 이 나라 먹여 살릴 신성장산업은 누가 만들어갈 것인가?

지금은 승자독식의 세상이다. 한국의 기업들이 나가 싸워서 이기게 돕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법전 달달 외워서 고시 붙은 머리 좋은 관료들이, 자기손으로 돈 벌어본 적 없는 정치인들이 일손 놓고 조그만 가게 창업해서 한달만 경영해보라고 시켰으면 좋겠다. 그러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승자독식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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