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반도체 제조사들도 중고 장비로 300㎜ 웨이퍼 생산 라인 구성해
공급부족 200㎜ 웨이퍼 장비도 신규 생산 돌입... 300㎜ 장비 리퍼비시도

작업자가 반도체 다이(die)가 새겨진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SEMI
작업자가 반도체 다이(die)가 새겨진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SEMI

반도체 중고 장비와 리퍼비시(Refurbish)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조 단위 투자가 들어가면서 300㎜ 웨이퍼 생산 라인을 중고 장비로 채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고, 직전 세대인 200㎜ 장비는 없어서 못 산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반도체 제조사들도 투자 부담에 신규 장비 대신 리퍼비시한 중고 장비를 채택하면서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ASML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도 리퍼비시(Refurbish) 사업에 나섰다.

 

웨이퍼의 직경 발전은 300㎜에서 멈췄다

반도체 업계가 200㎜ 웨이퍼 생산라인을 300㎜ 웨이퍼 생산라인으로 바꾸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부터다. 

웨이퍼의 면적을 늘린 이유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300㎜ 웨이퍼는 200㎜ 웨이퍼 대비 다이(die) 생산량이 최대 2.5배 많다. 

같은 이유로 2010년께 450㎜ 웨이퍼 연구개발(R&D)이 시작됐다. 인텔과 TSMC,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현 파운드리 사업부) 등도 450㎜ 웨이퍼 전환을 위해 공동 R&D 컨소시엄 ‘G450C’을 발족하는 한편,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도 표준화 작업을 시작했다.

 

반도체 시장 규모(파란 선) 및 증감율(빨간 선) 추이. 지난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고, 그 다음 2008년에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움츠러들었다./SEMI

하지만 300㎜ 웨이퍼 때만큼 적극적인 업체들은 없었다. 닷컴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제조사들은 2000년대 초 300㎜ 웨이퍼 생산라인에 대거 투자를 했지만 2001년 9⋅11 테러에 2008년 세계금융위기까지 터졌다. 시장은 위축됐고, 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450㎜ 웨이퍼 투자는 부담스러웠다.

300㎜ 웨이퍼로도 수요를 만족하기에 충분했다. 450㎜ 웨이퍼는 300㎜ 웨이퍼 대비 2배 이상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그만큼 생산 시간도 절감되는데, 300㎜ 웨이퍼 생산라인도 가동률 100%를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굳이 450㎜ 생산라인을 구축해 놀릴 필요는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가장 큰 문제는 투자에 대한 부담감이었다”며 “450㎜ 웨이퍼로 전환할만큼 수요가 많지도 않았고 300㎜ 웨이퍼로도 무어의 법칙을 현실화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인텔과 TSMC, 삼성 등이 진행한 450㎜ 웨이퍼 공동 R&D 컨소시엄 ‘G450C’도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지난 2016년 마무리됐다. 원래대로라면 이후 두 번째 목표로 450㎜ 팹을 건설해야했지만 300㎜ 웨이퍼 기술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제조사들은 G450C에서 손을 뗐다.

 

300㎜ 장비는 넘치고, 200㎜ 장비는 없어서 못 쓰고

450㎜ 웨이퍼 R&D가 흐지부지되면서 업계는 300㎜ 웨이퍼 공정 개선에 집중했다. 반도체 회로 선폭은 지난 2012년 20나노대에서 2020년 현재 5나노까지 줄어들었고 300㎜ 웨이퍼 생산라인은 지난 2002년 15개에서 지난 2018년 112개까지 증가했다.

장비 업체들도 매번 신공정이 나올 때마다 그에 맞춰 장비를 내놨다. 장비 가격이 오르면서 중고 장비 시장이 커졌다. 신설·증설 투자는 물론 장벽(Bottleneck) 공정 장비를 바꿀 때마다 구 공정에 쓰이던 장비가 중고 장비 매물로 나왔다. 

수요도 늘었다. 기존에는 투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중소규모 업체들만 중고 장비를 찾았다. 대기업들은 소프트웨어(SW) 라이선스를 따로 받아야하고 현직 엔지니어들도 레시피를 직접 맞춰야해 번거롭다는 이유로 중고 장비를 채택하지 않았었다.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삼성전자

최근에는 움직임이 바뀌었다. 신규 생산라인 구축 비용이 조 단위를 넘어서면서 대기업들도 유휴 장비를 자체적으로 리퍼비시해 사용하는 것은 물론 중고 장비까지 구매하는 추세다. 

회로 선폭을 결정하는 핵심인 노광 장비의 경우 신규 장비가 나올때마다 장비를 바꿔야 하지만 화학적기계연마(CMP) 장비나 일부 증착 장비는 2~3세대 이전 장비로도 최신 공정에 대응할 수 있다.

매물도, 수요도 많은 300㎜ 웨이퍼 장비 시장과 달리 200㎜ 웨이퍼 장비는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이다. 일부 업체들은 200㎜ 장비를 구하지 못해 300㎜ 장비를 200㎜ 장비로 리퍼비시해 쓰기도 한다. 

2000년대만 하더라도 200㎜ 장비 매물이 전체 매물의 다수를 차지했지만 로직 반도체 업계가 300㎜ 웨이퍼 생산라인으로 거의 전환한 2010년대 이후에는 대량으로 매물이 풀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장비 업체들이 신규 200㎜ 장비를 내놓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지난 2016년 이후 아날로그,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무선통신(RF) 등의 시장이  커지고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업계도 150㎜ 웨이퍼 생산라인에서 200㎜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서플러스글로벌에 따르면 업계의 현재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2000~3000대의 200㎜ 생산 장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매물로 올라와있는 200㎜ 장비는 500대도 채 되지 않는다. 현재 구축된 200㎜ 생산라인의 가동률은 평균 90% 이상이다. 

 

리퍼비시·중고 장비 시장 진입한 글로벌 장비 업계

램리서치는 지난 2018년부터 300㎜ 웨이퍼 장비의 200㎜ 장비를 지속 출시하고 있다./램리서치

이에 300㎜ 웨이퍼 장비에만 집중해오던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등 글로벌 장비 업체들도 중고 장비를 매입해 리퍼비시(Refurbish) 사업을 시작하는 한편 신규 장비 개발에 돌입했다.

300㎜ 장비의 경우 중고 장비 업체들보다 물량이 없어 미리 고객사로부터 선주문을 받은 뒤 중고 장비 매물이 나올 때마다 넘기는 구조지만, 워낙 공급량 자체가 많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다.

글로벌 장비 업체를 통해 중고 장비를 구매하면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계약을 별도로 맺어야하는 불편함이 없고 보증도 받을 수 있다. 보통 반도체 제조사는 중고 장비를 판매할 때 하드디스크를 빼고 판매하는데, 때문에 장비를 사들인 업체는 따로 하드디스크를 구매하면서 동시에 소프트웨어 라이선스까지 얻어야한다. 

200㎜ 웨이퍼 장비는 이미 서플러스글로벌 등 중고 장비 업체들이 물량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고 엔지니어들을 별도 교육해야해 쉽사리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리퍼비시 대신 신규 장비를 개발하는 건 이 때문이다. 

300㎜ 웨이퍼 장비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듯, 200㎜ 웨이퍼 장비도 공정 기술의 발전으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리퍼비시로도 충분히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어 대체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이미 시중에 나온 신규 200㎜ 웨이퍼 장비도 최신 기능을 갖췄지만 가격이 워낙 높아 리퍼비시 수요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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