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와 D램의 경우 3월 들어서도 가동률 떨어지지 않아... 완제품 업체들 위기감에 주문 늘려
문제는 하반기 생산 일정과 첨단 공정 구축... 신규 및 증설 라인 안정화 늦어질 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는 어디까지 미칠까. 전방 산업은 수요부터 줄어들고 있고, 공급 또한 여기저기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후방 산업인 반도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은 파급력이 크지 않지만 첨단 공정 투자 지연으로 인한 중장기적 타격이 우려된다. 

 

코로나-19에도 가열차게 돌아가는 반도체 생산라인, 하지만...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라인에 들어간 웨이퍼 천장 이송 설비(OHT) 시스템./삼성전자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라인에 들어간 웨이퍼 천장 이송 설비(OHT) 시스템./삼성전자

연초부터 파운드리를 포함한 로직 생산라인과 메모리 생산라인은 거의 100%의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서버 업계는 지난해 연말부터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여파에 대비, 재고를 쌓아두기 시작했고 중국 설인 춘절 전에는 모바일 업계도 재고 선점을 위해 주문량을 늘렸기 때문이다. 보통은 2월 중순 이후 재고 확보가 끝난 업체들이 주문량을 줄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지난달 코로나 바이러스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주문량이 좀처럼 감소하지 않았다.

메모리 업계 관계자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D램의 경우 3월 들어서도 100% 가동률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로 공급이 바쁜 상황”이라며 “반도체 생산까지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일면서 오히려 주문량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고 확보가 무색하게 전방 산업의 수요는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코로나-19가 중동·유럽·미국에까지 번지면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1일(현지 시각) 코로나-19를 세계적 대유행병(Pandemic)이라고 선언했다.

전염병으로 수요가 위축되면 당장 영향을 받는 건 모바일과 일반 소비자 가전 업계다. 일반 소비자들은 이같은 상황에서 가전보다는 기본 의·식·주에 대한 지출을 늘린다. 당장 국내만 해도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나서 음식 배달 업체의 매출이 급증했다. 

공급망 내에서도 물류 및 인적 자원에 드는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더군다나 코로나-19의 근원지인 중국은 세계 제조의 핵심이다. 아무리 반도체 재고를 확보한다 해도 중국에서 생산하는 부품이나 완제품은 생산 계획조차 맞추기 어렵다. 액츄에이터와 렌즈 같은 모바일용 카메라 부품, TV 내 커넥터, 자동차에 들어가는 하네스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트랜스포스에 따르면 1분기 스마트폰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12% 줄어들어 지난 5년간 가장 낮은 생산량을 기록했다. 자동차 역시 같은 기간 생산량이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하반기 생산 일정은 맞출 수 있을까

 

IT업계는 어느 산업보다 모델 교체 주기가 빠른다. 이 때문에 재고를 오랜 기간 쌓아놓을 수록 수익성이 떨어진다. /사진=애플
애플은 매해 9월 플래그십 스마트폰 시리즈를 출시한다. 출시 일정을 맞추려면 늦어도 3월 내에는 품질 및 양산 승인이 끝나야한다./애플

더 큰 문제는 하반기다. 업계는 상반기 수요가 주춤했으니 하반기 전자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며 전형적인 상저하고 모양새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하반기 플래그십 스마트폰과 가전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품질·양산 승인 절차는 늦어도 3월에 진행된다. 양산 승인에만 보통 1개월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1개월 간 협력사는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제품 사양을 개선하고 생산 시설을 확정한다. 생산 시설조차 고객사의 뜻에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아 보통은 고객사와 협력사 간 방문 출장이 가장 잦은 때다.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해 한 번 출장을 갈 때마다 거의 한달간은 일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객사는 물론 대부분의 협력사들도 해외 방문 직원에 대해 14일 격리조치를 취하고 있는터라 한 번 출장을 갔다오면 1달은 재택근무밖에 답이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고객사와 협력사는 거의 화상 통화로만 양산 승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애플 협력사 관계자는 “2월 내내 품질 및 양산 승인 절차를 진행하는데 보통은 고객사(애플)에서 엔지니어가 와서 그 기간 내내 머물다 간다”며 “지금은 그게 안되는 상황이다보니 의견 조율도 어렵고 생산시설을 보여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팹리스 및 전용반도체(ASIC) 서비스 업체들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글로벌 업체에서 외주를 받아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거의 클라우드에서 공용 작업으로만 일을 처리하고 있다. 하반기 개발 완료가 목적인 프로젝트의 경우 늦어도 3월에는 제품 사양을 고정해놓고 개발을 시작해야하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보통은 고객사와 의견을 조율하는 엔지니어들이 따로 있고, 개발 엔지니어들이 따로 있어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맞춰가면서도 빡빡한 개발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며 “지금은 이런 구분이 필요가 없어 그때그때 요구사항을 반영하는데, 그 바람에 오히려 개발이 더 늦어진다”고 말했다.

 

공정 업그레이드도 지연된다... 중장기 여파 우려

첨단 공정 도입 역시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직이건 메모리건 3개월마다 한번씩은 공정에 손을 댄다. 안정화된 공정이라도 노후 설비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레시피를 다소 변경해 수율을 끌어올리는 식으로 변화를 주는데, 이때 국내 지사 엔지니어는 물론 본사 엔지니어까지 달라붙어서 일을 함께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삼성전자는 EUV 공정을 적용해 7나노 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5나노 공정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사진은 1년 전 화성 EUV 캠퍼스./삼성전자

첨단 공정 양산을 위해 신규 투자를 할 때는 장비 업체 본사 엔지니어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TSMC와 삼성전자는 각각 올해 1분기와 4분기 내 5나노 양산을 시작하기 위해 장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신설 투자의 경우 본사 엔지니어가 장비 반입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입국, 생산라인에 들어가 거의 직접 장비를 설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국내 지사 인력이 많더라도 매니징을 본사 엔지니어가 하다보니 국내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외국계 장비 업체 관계자는 “국내 지사 인력은 사실상 장비 구축 이후 생산라인을 가동하면서 생긴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아예 영업에 치중돼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아무리 지사 규모가 큰 업체라도 신설 라인의 경우 웬만하면 본사 엔지니어가 들어와 작업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현재 TSMC와 인텔은 물론 삼성전자도 외국 협력사 방문객에 대해 14일간의 격리조치를 취한 이후 업무에 착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기간 장비는 설치되지 못하고 방치된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증착·식각 장비의 경우 단순히 작업 속도가 느려지겠지만, 노광 스캐너 같은 복잡한 시스템은 장비 구축 기간부터 레시피를 잡는 시간 모두 길기 때문에 제때 생산을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팹리스 업체나 다른 부품 공급업체들처럼 화상통화나 원격 진단을 하기도 어렵다. 보통 반도체 생산라인은 보안을 이유로 내부 네트워크에만 연결시켜놓고 인터넷 등 외부 네트워크는 활용하지 않게 돼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부터 5나노 장비 반입을 시작한 TSMC도 장비 설치 속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어 애를 먹고 있다”며 “늦어도 2분기 내로는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지만, 아직 구축이 되지 않은 장비가 여럿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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