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나노 SoC '아톰' 제품군, 삼성 7나노 LPP 공정에서 생산키로
차세대 제품도 협력 논의... 비용 탓에 외주 생산 비율 늘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인텔의 10나노 시스템온칩(SoC)을 외주 생산한다. 

인텔이 중앙처리장치(CPU)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이를 제외한 나머지 제품군의 외주를 늘리면서다. 해당 제품은 극자외선(EUV) 기반 7나노 LPP(Low power plus) 공정에서 생산된다. 양사는 차세대 제품에 대한 추가 협력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의 외주 전략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언젠가는 CPU까지 외주 생산하지 않을까.

 

표면적 이유는 CPU 공급부족, 그게 다는 아니다

지난해 11월 20일, 인텔은 대고객 서한을 통해 CPU를 제외한 다른 품목들의 위탁생산을 늘려 CPU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시작된 공급 부족 사이클이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설 및 신설 투자를 한다해도 당장 공급량을 늘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외주 생산 비율을 높이면 생산 적체 현상을 비교적 빠르게 해소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수주한 10나노 SoC ‘아톰’ 제품군도 외주 생산 품목 중 하나다. 이 제품은 인텔의 10나노 공정과 사양이 비슷한 삼성전자의 7나노 공정에서 생산된다. 아톰 제품군은 저가형 노트북PC부터 태블릿PC, 네트워크 기지국 등에 들어가는데 현재 인텔이 발표한 10나노 아톰 제품군은 기지국용 ‘아톰 P5900’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CPU 공급 부족이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단순히 수요 증가로 인한 공급 부족이었다면 서버 업계의 투자가 줄어들었던 지난해 공급 부족이 해소됐어야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인텔의 팹(Fab) 42. 이 곳에서는 차세대 7나노 CPU를 생산하게 된다./인텔

공급 부족보다 발목을 잡은 건 비용이다. 공정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설비투자, 양산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수 조원의 투자가 들어간다. 언제 CPU 공급 부족이 해소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수 조원을 투자하는 건 도박이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인텔은 10나노 공정 수율 확보에 2년이나 애를 먹었다. 같은 공정이라도 생산하는 제품이 달라지면 제조 레시피가 바뀌고, 이를 또다시 안정화해야한다. 서버용 CPU 만들기도 모자랄 판에 생산 라인을 또다시 바꾸고 안정화할 시간은 없었다. 

파운드리 업체에 맡기면 이같은 부담이 없었다. IP 라이선스를 내주면, 파운드리 업체에서 그에 적합한 공정 레시피를 만들기 때문이다. CPU가 아닌 SoC였기 때문에 파운드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IP 라이브러리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인텔의 외주 생산은 철저히 비용 문제

인텔이 비용을 이유로 외주 생산 업체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9년 당시 IT 업계는 금융위기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인텔도 그 중 하나다. 인텔의 매출은 2008년 4분기에만 전년 대비 90% 이상 대폭 줄었다. 결국 회사는 구조조정을 거쳐 여러 공장을 폐쇄했다.

인텔이 찾아간 건 TSMC다. 인텔은 TSMC와 아톰(Atom) 프로세서 내 CPU 코어 IP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인텔이 파운드리 업체에 IP 라이선스를 준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 계약으로 TSMC는 아톰 프로세서나 이에 기반한 SoC ‘무어스톤(Moorestone)’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수요 부족으로 양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지난 2014년 인텔은 TSMC의 공정에서 만들어진 SoC ‘아톰 x3(코드명 SoFIA)’를 출시했다. ‘아톰 x3’ 제품군은 64비트 코어를 첫 적용한 저가형 저전력 AP로, 보급형 스마트폰 및 태블릿PC용으로 설계됐다.

금융위기로 인한 타격이 어느 정도 회복된 시점에서 ‘아톰’을 외주화한 건 AP에 모뎀을 결합해 원칩(MoDAP)을 내놓는 게 대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텔은 모뎀 등 무선통신(RF) 관련 IP 라이브러리가 부족했고, 이를 자체 개발하는 것보다 파운드리에 맡기는 게 비용 측면에서 유리했다. 인텔은 이 제품 이후 28나노 모뎀 등도 TSMC에 맡겼다.

 

인텔이 2014년 출시한 SoFIA 모답(ModAP) 칩은 TSMC의 공정에서 생산됐다./인텔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서버용 CPU는 지난 2018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급 부족 상황에 놓인 적이 없었다. 인텔은 한정된 생산용량에서 수익성이 낮은 PC용 CPU보다 고부가 서버용 CPU를 생산하는 방안을 택했다. 그 편이 투자자본수익률(ROI)이 높았기 때문이다.

인텔은 CPU 외에도 SoC, 칩셋(Chipset), 모뎀, 와이파이 칩, 이더넷 칩 등을 판매한다. CPU를 제외한 이들 제품군은 PC용 CPU보다도 수익성이 떨어진다. CPU와 달리 경쟁사도 많기 때문에 자체 생산보다 파운드리가 제공하는 공정을 활용하는 게 더 저렴하다.

업계 관계자는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면 설비투자를 최소화하면서 생산량을 늘려야한다”며 “예전에는 공정 기술 개발로 이를 커버할 수 있었지만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현재는 자체 생산보다는 외주 생산 비율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텔의 외주 전략에 CPU는 ‘아직’ 없다

 

AMD의 x86 CPU 시장 점유율. 아직 인텔을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다./Mercury Research

인텔이 CPU까지 외주화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인텔의 힘이 가장 강력히 발휘하는 영역이 CPU이기 때문이다. 인텔이 가지고 있는 다른 제품군도 대부분 CPU와 최적화돼 시너지를 내는 것이라, 핵심인 CPU를 놓치긴 어렵다. 더군다나 시장 1위다. 

PC용 CPU 공급 부족에 대한 원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인텔이 CPU 외주를 주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CPU만 자체 생산한다 해도 설비투자 규모는 부담스러울 정도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인텔의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설비투자 규모는 약 430억달러(52조3310억원)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투자를 했다. 지난해 연매출이 720억달러(87조5952억원)였으니 한 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설비 투자에 쓴 셈이다.

1등은 삼성전자(658억달러)지만,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모두 합친 규모라는 걸 감안하면 로직(Logic) 투자만으로는 인텔이 세계 1위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공급 부족 사태에 놓인 건 CPU 다이(die) 크기가 웬만한 반도체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메모리와 비슷한 규모의 설비투자를 한대도 메모리처럼 출하량을 급증시키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7나노부터 인텔 또한 극자외선(EUV) 공정을 쓰게 되니 설비 투자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면 CPU를 생산할 만큼만 설비투자를 하고 나머지를 외주생산하는 게 낫다. 인텔이 지금부터 차세대 제품 개발로 파운드리 업체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다. 경쟁사인 AMD가 ‘가성비’를 앞세워 CPU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아직은 수%대지만 인텔 입장에서는 1% 점유율을 빼앗기는 것도 타격이 크다. AMD는 외주 생산을 활용하지만 인텔은 CPU를 전부 자체 생산하기 때문이다. 세계 1위라는 브랜드 이미지도 손상을 입는다.

지난해 AMD의 CPU ‘라이젠’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자 인텔이 CPU 가격을 반값으로 내려버린 것도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파운드리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라이젠과의 격차가 커서 CPU를 외주생산할 확률은 낮지만, AMD의 점유율이 20~30%대로 올라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며 “공정 개발에 한번 크게 데인 상황이다보니 인텔도 자체 생산만 고집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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