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내 AI 가속기 개발팀 스핀아웃키로… 5월 'AIX(가칭)' 세워
SK하이닉스도 참여… 인텔-알테라 및 엔비디아 등 제칠 수 있을지 주목

SK텔레콤·SK하이닉스·AMD·자일링스 등 반도체 업계 2인자들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AI) 가속기 스타트업을 세운다.

SK텔레콤의 AI 가속기 하드웨어 개발팀을 주축으로 설립되는 스타트업 ‘AIX(가칭)’는 범용 서버에 들어가는 AI 가속기를 개발한다. SK하이닉스는 서버용 D램을 제공, 시장 입지를 다진다. 자일링스·AMD는 경쟁사인 인텔-알테라 진영과 엔비디아에 도전할 무기를 마련하게 됐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 2인자들, AI 가속기로 뭉쳤다

SKT는 컴파일러부터 런타임까지 AIX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모두 개발했다./SKT
SKT는 컴파일러부터 런타임까지 AIX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모두 개발했다./SKT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SK하이닉스·AMD·자일링스 등은 오는 5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범용 서버에 들어가는 AI 추론 가속기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AIX’를 세운다. AIX는 SK텔레콤의 AI 가속기 ‘AIX’에서 따왔다.

SK텔레콤이 추산한 AIX의 기업가치는 6000억원으로, 초기 자본금은 600억원이다. SK텔레콤이 약 19%의 지분 투자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나머지 업체들도 지분 투자를 할 계획이다.

AIX는 3분기 28나노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기반의 AI 가속기를 출시하고 이를 전용 반도체(ASIC)로 전환, 연내 삼성전자의 7나노 공정에서 샘플을 양산할 계획이다. 올해 예상 매출만 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당초 TSMC의 공정을 검토했지만 삼성전자의 7나노 공정을 활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삼성전자의 디자인하우스 협력사 1곳이 AIX 설립에 참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AI 가속기에 들어갈 메모리를 공급한다. AI 가속기에는 통상 그래픽D램(GDDR) 혹은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들어간다. 서버용 D램 시장에서 삼성에 밀리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시장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금까지 AI 가속기로 SK텔레콤과 협력해온 FPGA 업체 자일링스도 AIX의 초기 투자자로 참여한다. 자일링스는 FPGA 기반의 AI 가속기를 만들어왔지만, FPGA만으로는 AI 가속기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후 출시한 적응형 컴퓨팅 플랫폼(ACAP)도 결국은 FPGA를 바탕에 두고 있다.

AMD는 AIX의 가세로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게 된다. AMD는 그동안 라데온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AI 가속기를 공급해왔고, 자일링스와 FPGA 기반 AI 가속기 분야에서 협력해왔다. 

여기에 AIX의 ASIC 기반 AI 가속기까지 생태계로 들어오면 인텔처럼 여러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SK텔레콤 ‘스타게이트’의 3번째 주자, AIX

AIX는 SK텔레콤의 AI 가속기 개발 팀을 사실상 스핀아웃해 세우는 스타트업이다. 스핀오프가 기업에서 사업부나 팀을 따로 떼내 완전히 독립시키는 것이라면, 스핀아웃은 모기업과 분사된 기업이 주식을 교차 보유하는 등 헌신도와 긴밀도를 높인다는 차이가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3월 사내 유망 ICT 기술을 독립시켜 육성하는 스핀아웃 프로그램 ‘스타게이트’를 시작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올해까지 3개 기술을 스핀아웃,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AIX는 이 목표의 3번째 주자가 됐다.

 

SK텔레콤의 스타게이트 프로그램 개요./SK텔레콤
SK텔레콤의 스타게이트 프로그램 개요./SK텔레콤

스타게이트는 ▲기술 상용화 가능성 검증 ▲거점 시장 검토 ▲기술 스핀아웃(사업화) ▲성장 지원 등의 단계로 진행된다. 

AIX는 이미 2세대 제품까지 상용화됐다.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를 썼지만 웬만한 팹리스 업체들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가용성을 높여 업계에선 실력을 인정 받았다. SK텔레콤의 AI 음성인식 비서 누구(NUGU)는 물론 5세대(5G) 이동통신 인프라 내 모바일 엣지 컴퓨팅(MEC)에도 들어가는 등 거점 시장도 다양하다. 

상용화 가능성과 거점 시장 검토의 두 단계를 모두 통과한 셈이다.

사업화를 위한 준비도 해왔다. 최근 SK텔레콤은 AI 가속기에 들어갈 ASIC 개발을 시작했다. 기존에는 FPGA를 썼는데, FPGA에서 ASIC으로 전환하게 되면 인건비를 포함한 설계 비용과 마스크 등 개발비(NRE)가 차원이 다르게 증가한다. 

비용이 증가하면 수익은 그보다 많이 늘어야 한다. 아무리 성능이 좋더라도 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의 그늘 아래서 AI 가속기 사업을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차라리 스핀아웃해 독립시키는 게 사업 확장 측면에서는 이치에 맞다. (참고 KIPOST 2020년 1월 9일자 <SK텔레콤, AI 가속기(AIX) 본격 사업화... ASIC 개발 시작>)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작년 초부터 SK텔레콤은 스타게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AI 가속기 스핀아웃을 준비해왔다”며 “초기 투자 자금을 약 500억~600억원 선으로 보고 여러 업체들과 접촉했다”고 설명했다.

 

클라우드부터 엣지까지… AI 가속기,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격전장

무엇보다 중요한 건 AI 가속기의 시장성이다. AI 가속기는 3~4년 전부터 반도체 업계의 격전장이 됐다. 

초기 시장을 거머쥔 건 엔비디아다. GPU의 병렬처리 아키텍처가 가진 장점을 통해 엔비디아는 학습부터 추론에 이르기까지 AI 가속기 시장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AI 학습은 지금도 엔비디아를 대체할 만한 주자가 없다. 

AI 추론 시장은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수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 알고리즘을 만드는 단계인 학습과 달리, 추론은 주어진 알고리즘으로 특정 데이터를 분석해 서비스한다.

GPU로 AI 추론을 하기엔 배보다 배꼽이 크다. GPU 자체의 가격도 지나치게 비쌌고, 데이터센터 리모델링이나 신규 투자가 필요했다. GPU의 특성상 이미지 및 그래픽 처리에 최적화됐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이같은 이유로 FPGA나 ASIC을 기반으로 한 AI 가속기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텔은 발빠르게 알테라를 인수해 FPGA 기반 AI 가속기를 자사 CPU에 최적화해 판매하기 시작했고, 작년 말에는 ASIC AI 가속기 업체 하바나랩스까지 인수했다. 이외 자이어팔콘테크놀로지(GTI), 캠브리콘, 퓨리오사AI 등 스타트업들도 가세한 상태다.

 

구글의 ASIC 기반 AI 칩 'TPU'가 내장된 AI 가속기 카드./구글
구글의 ASIC 기반 AI 가속기 'TPU'./구글

글로벌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업체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구글은 지난 2016년 자체 ASIC ‘텐서프로세싱유닛(TPU)’을 개발해 서버에 선적용했다. 지난해에는 사물인터넷(IoT) 등 단말에 들어갈 수 있는 ‘엣지 TPU’까지 판매하기 시작했다.

바이두·알리바바·화웨이 등 중국 대형 IT 업체들도 각각 쿤룬(Kunlun), 한광(hanguang) 800, 어센드(Ascend)라는 이름의 ASIC 칩을 개발, AI 가속기를 만들었다.

AI 가속기가 단순히 IDC 업체 등 IT 기업들의 데이터센터에만 들어가는 건 아니다. 

5G 이동통신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엣지 컴퓨팅에도 AI 가속기가 도입된다. 이전까지 이동통신 기술이 모든 데이터를 중앙 기지국에서 처리하는 중앙집중형 컴퓨팅 구조를 채택했다면, 5G는 중요 데이터를 순차 처리하는 분산형 컴퓨팅 구조를 갖고 있다. 

엣지 컴퓨팅은 지역 기지국과 단말 사이, 혹은 지역 기지국과 중앙 기지국 사이에 구축돼 급한 데이터를 처리해 단말로 바로 보내거나 중앙 기지국으로 가는 데이터를 전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맥킨지는 데이터센터 내 AI 추론 하드웨어의 시장 규모는 2025년까지 90억달러(10조4265억원)로 성장, 그 해 AI 학습 하드웨어 시장 규모(50억달러)의 2배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엣지 기기까지 합치면 차이는 3배까지 벌어질 전망이다.

실리콘밸리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AI 가속기는 실리콘밸리에서도 가장 핫한 주제”라며 “구글 등 글로벌 IDC 업체들이 자체 ASIC을 개발하면서 열기가 식긴 했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ASIC을 할 수 있는 업체들은 제한적이라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AIX는 성공할 수 있을까

경쟁이 치열한 만큼 AIX의 성공 여부도 주목된다. 당장 AIX는 AI 추론 가속기 개발에 집중한다.

엔비디아는 지속적으로 GPU 기반 AI 가속기 제품군을 늘리고 있고, 인텔은 기존 서버 CPU 시장의 장악력을 발판 삼아 AI 가속기를 CPU에 최적화해 제공한다. 두 회사 모두 각각 GPU, CPU 시장에서는 부동의 1위다.

 

지난 2018년 개최된 '자일링스 개발자 포럼(XDF) 2018'에서 마크 페퍼마스터(Mark Papermaster) AMD 최고기술책임자(CTO, 왼쪽)와 빅터 펭(Victor Peng) 자일링스 최고경영자(CEO)가 AI 가속기 협력을 발표하고 있다./자일링스

이를 뒤따르는 게 AMD와 자일링스다. 

AMD는 자체 GPU 기반 AI 가속기와 자일링스의 FPGA 기반 AI 가속기를 제공하지만 좀처럼 이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그 와중에 인텔이 하바나랩스를 인수하면서 ASIC 기반 AI 가속기에 대한 니즈가 커졌다. AMD가 AIX 설립에 힘을 모으는 건 그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ASIC 기반 AI 가속기는 대부분 IDC 업체들이 자체 개발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스타트업이 개발하고 있다”며 “아무리 스타트업이라도 믿을만한 구석이 있어야 AMD가 손을 잡을 수 있는데, SK그룹이 배경에 있으니 AMD 입장에서는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라고 말했다.

자일링스는 FPGA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지만 인텔이 알테라를 인수하면서 알테라가 아닌 인텔이 경쟁사가 됐다. FPGA로만 떼놓고 보면 자일링스가 우위지만, 알테라가 가진 잠재력은 자일링스보다 한 단계 위다.

SK하이닉스와의 시너지도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단순히 부품 공급사를 넘어 R&D 파트너의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AI 하드웨어 기술 발전의 가장 큰 병목은 메모리 대역폭이기 때문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AMD는 지난 2014년 SK하이닉스와 협력, HBM을 개발했다. 

업계 관계자는 “AMD는 앞서 SK하이닉스와 서버용 GPU에 들어갈 HBM으로, 자일링스는 AMD 및 SK텔레콤과 AI 가속기로 힘을 합쳐왔다”며 “AIX는 이같은 협력의 연장선상으로 AMD와 자일링스는 물론 SK텔레콤, SK하이닉스 모두 윈윈하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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