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유해물질 배출 규제 강화로 황산 등 사용량 저감 기술 수요 증가
배엽식 장비도 소재 사용량 줄이고 배치 타입 장비까지 다시 주목

최근 반도체 세정 장비 업계를 이끄는 키워드는 ‘친환경’이다.

각국이 유해물질 배출 규제를 강화하고 제조사도 원가 절감을 목적으로 소재 사용량 줄이기에 돌입하면서 유해물질 사용량을 저감할 수 있는 기술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에 근 20년간 매엽식(Single) 장비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배치(Bench) 타입 장비가 다시금 주목받는 모양새다.

 

수율과 신뢰성은 세정에 달려있다

세정은 웨이퍼 표면에 있는 화학적·물리적 잔여물을 제거하는 공정으로 전체 공정의 15%에서 많게는 30%를 차지한다./삼성반도체이야기

반도체는 밑그림을 그려(노광) 물질을 바르고(증착), 깎아내고(식각), 닦는(세정) 단위 공정을 500~600번 거쳐 만들어진다. 세정은 웨이퍼 표면에 있는 화학적·물리적 잔여물을 제거하는 공정으로 전체 공정의 15%에서 많게는 30%를 차지한다.

노광·식각보다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회로 선폭이 좁아질수록 중요한 공정이다. 아무리 노광·식각을 잘했어도 세정 공정에서 웨이퍼에 남은 잔여물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거나 웨이퍼 표면이 손상을 입으면 수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제품의 신뢰성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8인치 웨이퍼 시대, 세정 장비는 대부분 배치 타입 습식(wet) 장비였다. 배치 타입 장비는 수 장에서 수십 장에 이르는 웨이퍼를 한 번에 처리해 무엇보다 처리량이 좋았다.

12인치 웨이퍼 시대로 접어들면서 매엽식 장비가 이를 대체했다. 

회로 선폭이 줄어들고 웨이퍼가 커지면서 기존 배치식 장비로는 가운데에서부터 가장자리(Edge)에 이르기까지 웨이퍼를 균일하게 닦아내기 어려웠다. 반면 매엽식은 한 번에 하나의 웨이퍼를 처리한다. 배치 타입보다 처리량은 적지만 균일도와 정밀도가 높았다. 

수 개의 그릇을 한꺼번에 씻어내는 식기세척기에서 일일이 그릇을 설거지하는 방식으로 바뀐 셈이다.

 

세정 업계의 새로운 목표, 유해물질 사용량을 줄여라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매엽식 장비는 보통 한 번에 4장의 웨이퍼가 들어가고, 4의 배수 개만큼 챔버를 넣어 각 챔버에서 웨이퍼를 독립적으로 처리하는 구조다. 최대 50장의 웨이퍼를 한 번에 처리하는 배치 타입보다 처리량이 크게 떨어진다. 

업계는 처리량을 높이기 위해 매엽식 장비를 수 대씩 사서 단일 세정 공정을 수행한다. 전체 생산라인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유해물질 사용량도 늘었다. 손으로 설거지를 하면 식기세척기로 그릇을 닦았을 때보다 더 많은 양의 물과 세제를 쓰는 것처럼, 매엽식 세정 장비는 배치식보다 재료 사용량이 수 배 이상 많다.

어떤 물질을 제거할 것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세정에는 대부분 황산·불산·인산 같은 (강)산성 재료가 쓰인다. 초음파·레이저·자외선 등 세정력을 강화하는 기술이 도입됐지만, 세정 재료의 사용량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장비에 따라 다르지만 배엽식 장비는 배치식 장비보다 최대 10배 많은 재료를 쓴다”며 “처리량을 늘리기 위해 단위 공정 당 여러 대를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재료 소모량은 급격히 커진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방진복을 입고 일하고 있다./삼성전자

최근 각국에서 유해물질 배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국은 연도별로 각 사업장에 유해물질 대기 배출허용총량을 할당하고 할당량 이내로 오염물질을 배출하도록 했는데, 그 기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중국 또한 오염물 배출 기업에 대해 지난 2018년부터 특수 환경 보호세를 부과하고 있다. 

특히 황산은 반도체 제조업체가 주로 활용하는 세정 물질 중 하나다. 과산화수소와 함께 웨이퍼 표면의 유기물과 금속 잔여물을 제거하는 SPM(Sulfuric acid peroxide mixture) 세정 공정에 쓰인다. 대만에서는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황산의 양이 대만 전체 황산 소비량 중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미국처럼 국토가 넓은 곳에선 매립으로 대응 가능하지만 한국·대만·상하이 등 좁은 곳에서는 매립을 할 수 없어 고온 정화 처리 방법을 쓴다. 하지만 이 방식 또한 대량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온실 가스를 추가로 배출하는 문제가 있다.

이에 반도체 제조사들 사이에서 유해물질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소재 사용량을 줄이면 환경 규제에도 벗어날 수 있고 원가 절감에도 도움이 됐다.

 

배엽식으로는 부족하다

이에 유해물질 사용량을 줄인 배엽식 세정 장비가 잇따라 출시됐다.

세정 장비 업계 1위 업체인 일본 스크린이 유해물질 사용량을 최대 50% 줄인 7세대 배엽식 세정 장비 ‘SU-3300’을 가장 먼저 내놨다. 이 장비에는 화학물질의 온도와 유량, 분배 지점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나노 제어 노즐 기술이 적용됐다.

세정 장비 시장에서 25%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도쿄일렉트론(TEL)도 지난해 황산(SPM) 사용량을 50% 절감할 수 있는 ‘셀레스타(CELLESTA) 프로 SPM’ 장비를 내놨다. 

하지만 배엽식 장비는 구조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배치식 장비만큼 화학물질 사용량을 낮추기 어렵다. 다시 배치식 장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이 때문이다. 

ACM리서치는 지난해 국내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의 요청으로 배치 타입과 배엽식을 결합한 세정 장비를 개발하기 시작, 1월 2호기를 납품했다. 연구개발(R&D)은 지속적으로 돼왔지만 배치 타입과 배엽식을 결합한 장비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본사가 미국인 이 회사는 국내 고객사의 요청이 있었던 만큼 지난 2018년 말 한국에 지사와 연구소를 세워 해당 장비 개발을 도맡게 했다. 현대전자 출신 김영율 대표가 이끄는 ACM리서치코리아는 지난해 5월부터 장비 생산에도 돌입했다.

 

ACM리서치가 개발한 '울트라 C 태호(Ultra C Tahoe)’ 장비(사진)는 배치 타입과 배엽식을 결합한 제품이다./ACM리서치
ACM리서치가 개발한 '울트라 C 태호(Ultra C Tahoe)’ 장비(사진)는 배치 타입과 배엽식을 결합한 제품이다./ACM리서치

ACM리서치는 메가소닉(Megasonic) 기술을 가진 세정 장비 업체로, 8인치 웨이퍼용 세정 장비 시장에서는 자리를 잡은 업체다. 하지만 배엽식 장비 기술 개발에 늦어 이 시장에서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메가소닉 기술은 높은 주파수로 움직이는 메가소닉 장치(Megasonic Device)로 웨이퍼 위에 균일한 기포(cavitation)을 만들어 기포가 터지면 그 여파로 불순물이 떨어져나오는 것을 이용해 입자를 제거한다. 28나노 아래로 내려오면서 웨이퍼에 손상이 가해지는 문제가 있었는데, 현재는 이를 해결한 메가파이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ACM리서치가 개발한 ‘울트라 C 태호(Ultra C Tahoe)’ 장비는 배치 타입 모듈에서 SPM 처리를 하고 이후 싱글 타입 모듈에서 각 웨이퍼에 남은 잔여물을 씻어내는 이중 세정 장비다. 배치 타입에서 배엽식으로 넘어갈 때 웨이퍼가 젖은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김영율 ACM리서치코리아 대표는 “울트라 C 태호는 SPM 처리를 배치 타입에서 하기 때문에 배엽식 장비보다 화학물질 사용량을 80%까지 줄일 수 있다”며 “친환경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만큼 화학물질 사용량을 절감하는 기술은 지속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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