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필두로 18년만에 대폭 꺾인 반도체 시장 성장세... 내년엔 소폭 성장
5G 등 호재는 많지만 작년만 못해... 중국 업계 시장 진입, 대외 변수가 발목

올해, 반도체 시장은 18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축소됐다. 

세계반도체무역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12.8% 역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3분기 예측치(-15%)보다는 소폭 개선됐지만, 지난해 시장 성장률이 13.7%였다는 걸 감안하면 지난 2017년 수준으로 시장 규모가 돌아간 셈이다.

지난해 시장을 이끈 것도, 올해 시장 위축을 야기한 것도 메모리다. 지난해 메모리 시장은 전년 대비 27.4% 성장했지만 올해 33.3% 역성장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지난해만한 호황은 누리기 어렵다. 당장 시장을 일으킬 수 있는 동력이 없는 상황에서 정체 요인과 위축 요인만 확실하기 때문이다.

 

내년이 올해보다 나은 이유

당장 메모리 업계가 주목하는 성장 요인은 5세대 이동통신(5G)이다. 5G가 등장하면서 잠잠했던 스마트폰 시장에 교체 수요가 생겨났고, 서버를 포함한 인프라 투자도 진행되고 있다. 짧은 지연시간으로 다른 산업에도 활용도가 높아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게티 이미지 뱅크
게티 이미지 뱅크

그렇다고 내년 메모리 시장이 작년만큼 호황기를 누릴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기기 보급 속도는 빠르지만 전체 메모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고, 기대를 모았던 망 투자는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내년 5G 스마트폰 출하량은 올해보다 10배 정도 늘어난 2억대로 추정된다. 5G 스마트폰의 모바일D램 용량은 4G 대비 1.5배 늘어나는데,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10% 정도라 모바일D램 출하량은 5% 증가하는데 그친다.

저장장치는 8K 동영상 촬영 기능의 도입과 맞물려 256GB와 512GB가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망 투자 속도는 4G와 비슷한 수준이다. 5G는 특성상 LTE보다 기지국을 최소 3배는 촘촘히 구축해야한다. 4G까지는 초기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한 다음 유지보수를 했는데, 5G 때는 규모가 크고 수요에 맞춰 기지국과 서버를 구축해야해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다. (참고 KIPOST 11월 15일자 <2020년, 5G로 반도체 시장이 반등할 수 있을까>)

인텔 관계자는 “짧고 굵게 투자했던 이전과 달리 5G는 천천히, 수요를 감안해가며 진행된다”며 “기지국 투자 비용에 부담을 느낀 업체들이 스몰셀 등으로 인프라를 다변화하고 있고, 서버는 스마트폰 외 엣지컴퓨팅 수요가 있다면 구축한다는 입장이라 메모리 업체들이 체감하기엔 성장 속도가 느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텔의 제품 출시 로드맵./인텔
인텔의 제품 출시 로드맵. 인텔은 내년 아이스레이크 기반 중앙처리장치(CPU)를 내놓는다. 쿠퍼레이크는 10나노 아이스레이크 프로세서와 호환된다./인텔

상반기 거의 없다시피했던 서버 메모리 수요는 하반기부터 차츰 증가하고 있다. 알리바바 등 중화권 대형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업계가 재고 확보에 나섰고, 내년 초 인텔이 신규 서버 플랫폼을 내놓으면 교체 및 신설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시 작년만큼 호황을 누리기는 힘들다. 시장 점유율 경쟁도 끝났고 미-중 무역전쟁까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IDC 업계가 쉽사리 투자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인공지능(AI)도 신설 투자 대신 보완 투자 방식이 대세가 됐다. 

후공정 업체 관계자는 “이미 작년 IDC 업체들이 점유율 싸움을 하면서 데이터센터를 충분히 지어놓은 상태고, 가동률도 60% 정도라 신설 투자 수요가 많지 않다”며 “재고는 정상화됐고 중화권 IDC 업체들 중심으로 투자가 이미 시작돼 내년은 올해보단 살만하다”고 말했다.

 

경쟁자는 늘어나고 대체재까지 등장했다

느리지만 시장이 커지는 건 명확하다. 하지만 이 수혜를 온전히 기존 업체들만 받는 건 아니다. 미약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양산을 시작했고, 상변화메모리(PCM), 자성램(MRAM), 저항램(ReRAM) 등 대체재까지 상용화됐다. 

 

CXMT 공장 이미지. /CXMT 제공<br>
CXMT 공장 이미지. /CXMT 제공

중국 허페이창신(CXMT, 구 이노트론)은 최근 19나노 공정으로 DDR4 메모리 양산을 시작했다. 출시는 내년 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보다는 각각 2세대, 1세대 뒤쳐졌고 생산량도 300㎜ 웨이퍼 처리량 기준 월 2만장 정도에 불과하지만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크다. 

칭화유니그룹의 계열사인 양쯔강메모리(YMTC)도 최근 64단 3차원(3D) 낸드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내년 엔터프라이즈 서버, PC, 모바일 기기를 위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와 유니버셜플래시스토리지(UFS) 등을 출시할 계획이다. 경쟁사보다는 2~3세대 뒤쳐졌지만, 마찬가지로 영향이 없을 수 없다.

중국은 자국 기업이 생산한 반도체를 또다른 자국 기업이 사면 구매액의 일부를 보전해준다. 당장 중국 내수 기업들이 만드는 완성품에 이들 업체의 메모리가 내장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허페이창신은 수요를 감안, 내년 2분기까지 생산능력을 2배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단일 지역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중국 시장부터 차츰 점유율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성능은 나와봐야 알 것”이라면서도 “중국 업체들의 메모리 생산이 ‘말’뿐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준 셈이라 메모리 업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메모리도 모두 상용화됐다. 기존 메모리인 D램과 낸드를 대체할 정도로 가격이 싼 것도, 성능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기존 메모리들을 느린 속도로 밀어내고 있다.

일례로 PCM의 일종인 인텔의 ‘옵테인’은 이미 2세대까지 출시됐다. 인텔은 옵테인을 자사의 강점인 클라이언트 및 서버 플랫폼의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며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옵테인은 비휘발성 메모리지만 속도가 낸드보다 수백배 빠르고, 가격은 낸드보다는 비싸지만 D램보다 저렴하다. D램을 완전히 대체하진 않지만, 일부를 옵테인으로 바꿔 성능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서버 업계에서부터 채택이 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작년 이맘 때 KIPOST는 ‘네버 엔딩 메모리’ 연재물로 올해 메모리 시장이 이전처럼 급격히 침체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하는 기사를 냈다.(관련 기사 참고)

그때까지만 해도 메모리 업계에선 올해 낙폭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분기까지 동결한 투자를 예상보다 빠르게 재개하는 계획도 검토했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올해는 물론 내년 투자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공장 설립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할 것으로 보이나, 장비 반입 속도를 늦추고 초기 생산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보수적 투자를 진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열기가 급격히 식어버린 건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 폭탄을 주거니받거니 하는 와중에 메모리를 포함한 반도체와 가전, 전자기기 등 ICT 제품들이 대거 대상 품목으로 선정되면서 전·후방 시장 모두 타격을 입었다.

산업연구원(KIET)은 보고서를 통해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대미수출과 미국의 대중수출이 모두 줄어들면서 국내 정보통신 및 가전 산업이 집중적으로 악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13일(현지 시간) 양국이 발표한 ‘1단계 무역합의’에 따라 전쟁은 잠시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종전이 아닌 휴전일 뿐이다. 여전히 미국은 2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했던 25% 관세를 유지하고 있고, 화웨이에 대한 칼날도 거두지 않고 있다. 

양국의 무역전쟁은 세계 경제의 패권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기 때문에 쉽게 끝날 리 없다. 모건스탠리도 내년 10대 시장 위험 중 하나로 미-중의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을 꼽았다. 무역전쟁은 끝날지언정 정권과 상관 없이 양측이 대립하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끝도 없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그 누가 대통령이 됐어도 미-중 무역전쟁은 벌어졌을 것"이라며 “내년에도 그 무엇보다 큰 변수는 미-중 무역전쟁을 포함한 대외 불확실성”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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